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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천광암 칼럼]지역·세대·성별로 찢긴 정치에 학력·소득까지 소환한 이재명

입력 2022-08-01 03:00업데이트 2022-08-0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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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학력·저소득층 국힘 지지자 많다”
李 의원 발언에 안팎서 거센 비판
학력·소득과 정당 지지가 뭔 상관?
‘남 탓’ ‘언론 탓’ 잦아지면 病 돼
천광암 논설실장
지난해 12월 하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른다”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윤 후보는 “어려운 분들을 더 도와드려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명했지만 더불어민주당 등으로부터 ‘역대급 망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도 신경림 시인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를 인용해 “가난한 이가 어찌 자유를 모르겠는가”라고 일갈을 가했다.

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재명 의원이 지난달 29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한 말 때문에 논란에 휩싸였다. 여당은 물론 당내 대표 경선 후보들로부터도 “위험한 발상”, “이분법 정치”라는 지적을 받은 문제의 발언은 이런 내용이다. “고학력·고소득자들, 소위 부자라고 불리는 분들이 우리 지지자가 더 많습니다. 저학력에 저소득층이 국힘 지지자가 더 많아요. 안타까운 현실인데… 언론 때문에 그러지.”

이어지는 안팎의 비판에 대해 이 의원은 “발언의 취지와 맥락을 무시한, 왜곡된 정치공세”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3월 24일자 한 일간지 기사를 SNS에 링크했다. ‘월소득 200만 원 미만 10명 중 6명, 尹 뽑았다’는 제목이 붙은 이 기사는 동아시아연구원(EAI)이 대선이 끝난 직후 설문조사를 통해 분석한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이므로 자신의 발언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EAI의 조사가 설령 정확하다 하더라도 이것만을 근거로 ‘민주당은 고학력·고소득층 지지자가 많고, 국민의힘은 저학력·저소득층 지지자가 많다’고 일반화한 것은 너무 나간 것이다. 노동자계층이나 빈곤층이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해준다고 주장하는 진보정당이 아니라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정치학 용어로 ‘계급배반투표’라고 한다. 과거에도 이런 현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착시현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지금까지의 대체적인 연구결과다.

6·25를 직접 경험했거나 전후 이어진 첨예한 남북대치 상황에서 살아온 고령층은 보수성향이 강하다. 이들은 50대 이하 세대에 비해 성장과정에서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복지제도의 틀이 갖춰지기 전에 현역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빈곤율 또한 높다. 이런 요인을 기술적으로 제거하고 분석하면 학력이나 소득은 지지정당과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 의원의 발언 내용 중 더 문제가 있는 대목은 뒷부분의 ‘남 탓’, ‘언론 탓’이다. KBS MBC TBS 등 공영방송이 민주당에 여전히 유리한 지형을 이루고 있고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수천 개의 인터넷 매체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저학력·저소득층만 유독 민주당에 불리한 정보를 주입당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두 집단을 가르는 차별적인 인식이나 편견이 없고서는 나오기 힘든 발상이다.

EAI의 조사만 보더라도 ‘남 탓’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의원이 링크한 기사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블루칼라층에서도 이 후보가 42.2% 대 53.9%로 윤 후보에게 패배한 점을 지적하며 그 배경으로 두어 가지를 든다. 첫째는 이번 대선이 부동산 선거로 치러졌다는 점이다. 지지후보 결정 이유를 묻는 질문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꼽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두 번째 이유로 꼽은 것은 대장동 특혜 의혹과 배우자의 법인카드 논란 등이었다고 한다. 결국, 원인은 집권여당이었던 민주당과 대선 후보였던 이 후보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 후보는 지난해 12월 초 대선 과정에서 자신의 가족사가 논란이 됐을 때 “비천한 집안이라 더러운 게 많이 나온다. 저를 탓하지 말아 달라”고 말해 조카살인사건 변론이나 형수욕설까지 ‘출신 탓’이냐는 지적을 받았다. ‘남 탓’이 잦아지면 병이 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정치인들의 언어 속에 학력·소득 수준과 같은 비논리적이고 차별적인 잣대로 국민을 가르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에 더해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까지 ‘이대남’ ‘이대녀’로 갈라서게 만들고, 이제는 저학력·저소득층과 고학력·고소득층까지 갈라 친다면 국민통합은 더욱더 요원한 숙제가 될 것이다. 그새 잊었는지 모르지만 앞서 이 의원이 인용한 신경림 시인의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너와 헤어져 돌아오는/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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