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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특파원칼럼/유재동]살해된 국민, 너무도 다른 두 나라

입력 2022-06-28 03:00업데이트 2022-06-2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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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비어 가해자에 끝까지 책임 묻는 美
北의 만행에 응분의 대가 치르게 해야
요즘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 인근 44번가에서는 도로명(名)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이곳 주(駐)유엔 북한 대표부 앞을 ‘오토 웜비어 길’로 만들자는 것이다. 21세 대학생이던 웜비어는 북한 여행을 갔다가 정치 선전물을 훔쳤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받고 2017년 숨졌다. 미국 정계는 원래 북한 인권 문제에 상당히 비판적인 분위기인 데다, 며칠 전 뉴욕시장도 도로명 변경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잔인무도한 정권을 상징하는 그 이름을 앞으로 뉴욕의 북한 외교관들은 명함에 새기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웜비어는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고교 졸업식에서 대표 연설을 한 그는 명문 주립대에 입학했고 월가 취업도 사실상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호기심에 위험을 무릅쓴 대가는 혹독했다. 1년 반 동안 북한에 억류됐다가 겨우 부모 품으로 빠져나온 웜비어의 몸은 거의 시체가 된 상태였다. 웜비어를 마주한 아버지 프레드 씨는 “아들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다가 몸을 격렬하게 떨더니 짐승 같은 소리를 질렀다. 아랫니는 누군가가 펜치로 재배열한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아들을 엿새 만에 떠나보낸 웜비어의 부모는 가해자에 대한 처절한 응징을 시작했다. 고문, 살해 혐의로 북한 정권을 제소한 부부는 워싱턴 법원에서 5억 달러가 넘는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판결 효력을 비웃는 북한에 대응해 이들은 손수 전 세계에 숨겨져 있는 북한 자산 추적에 나서 그 일부를 받아냈다. 또 김정은의 악행을 국제사회에 알리면서 대북제재 필요성을 호소했다. 웜비어의 어머니 신디 씨는 “북한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들이 무너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면서 김정은을 향해 “지옥에서 보자”고 일갈했다.

국가도 함께 나섰다. 연방정부는 웜비어가 사망한 2017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했고 매년 추모 성명을 내며 그를 기억했다. 의회도 북한을 국제금융시스템에서 퇴출시키는 내용의 ‘오토 웜비어 법안’을 통과시켰고, 최근에는 북한 주민에 대한 정보 통제 가담자를 제재하는 법안도 웜비어 이름을 붙여 처리했다. 물론 이 사건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북-미 관계나 정치 논리에 종종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도 자국민이 북한에 잔혹하게 희생됐다는 사실, 또 이를 끝까지 기억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대원칙에는 모두가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2년 전 북한군에 총살당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 사건에 대응하는 우리 모습은 웜비어의 경우와 달랐다. 정부는 이 씨 상황을 알고도 구조 노력에 소홀했고, 그가 사망한 뒤에도 유족의 진실 규명 요구를 묵살했다. 또 가해자를 응징하기보다는 오히려 희생자의 안타까운 개인사를 들춰 가면서 ‘월북 프레임’으로 사건의 본질을 흐렸다. 원만한 대북 관계를 중시하던 당시 정부 여당에선 “북한 사과를 받았으니 됐다” “소송은 의미가 없다”면서 사건을 서둘러 봉합하려는 시도가 나왔다. 김정은을 지옥까지 쫓아가겠다는 웜비어 부모, 또 이들에게 적극 힘을 실어주는 미국의 행정 입법 사법 시스템과는 차이가 컸다.

웜비어는 국제사회에서 북한 정권의 잔혹함과 인권 유린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그의 죽음에 분노한 미국 전체가 똘똘 뭉쳐 가해자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은 결과다. 뒤늦은 면이 크지만 한국도 이런 모습을 보고 배웠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 국민의 생명을 부당하게 앗아갔을 때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북한 정권이 뼈저리게 깨닫게 되길 희망한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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