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병사 월급 포퓰리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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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병장 월급 200만원 약속, 부사관 장교 월급 동반 인상 불가피
국방비 중 인건비 급증 우려되고 단기복무 장교 충원 더 어려워져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병사들에게 월급 200만 원이 아니라 그 이상을 줘도 그 자체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대전현충원을 1980년대 중반 이후 거의 매해 찾는다. 사촌 형님이 20대에 군 복무 중 사망해 그곳에 묻혀 있다. 40년도 안 돼 100만 평 가까운 땅이 더 이상 묘비가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찼다. 나 역시 군 복무 중 수송트럭을 타고 이동하다가 트럭이 옆으로 굴러 죽을 뻔한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복무하는데 200만 원이 아니라 1000만 원인들 많겠는가.

그러나 최저시급에 맞춰 병사들에게 200만 원을 준다는 건 계산부터가 틀렸다. 병사들은 국가로부터 숙식을 제공받는다. 일반인의 최저시급에 맞춰 월 200만 원을 받는 것이라면 병사들은 국가로부터 숙식을 제공받는 비용을 빼고 받아야 한다.

국가로부터 숙식을 제공받는 병사들의 월급이 200만 원이라면 영외 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장교와 부사관은 최소한 300만 원 이상은 돼야 한다. 2021년 기준으로 육군 하사 1호봉 월급은 고작 166만 원이다. 원사나 돼야 비로소 1호봉이 300만 원을 넘는다. 육군 소위 1호봉은 170만 원이다. 소령 1호봉이 299만 원이다.

물론 장교와 부사관은 수당이 있어서 실제 받는 월급은 이보다 많다. 그럼에도 병사들의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리면 장교와 부사관의 월급도 함께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군이 병사 월급 200만 원이 문제가 많은 공약인 줄 알면서도 잠자코 있는 것은 병사 월급이 오르면 장교와 부사관의 월급이 덩달아 오르지 않을까 기대해서다.

병사들의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리는 데는 국방 예산 5조1000억 원이 더 필요하다. 올해 국방 예산의 9.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액수이다. 여기에다 장교와 부사관의 월급 인상분을 합치면 현재 40% 정도인 국방 인건비가 50%를 넘어 최대 60%까지 근접할 수 있다.

병사 월급 200만 원은 예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로 인해 초급 장교의 충원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병사들만이 아니라 장교들도 의무복무를 겸하는 단기복무 장교가 많다. 육군 초급 장교의 70%가 ROTC 등 단기복무 장교다. 이미 병사들의 복무 기간이 크게 단축되면서 군은 초급 장교 충원에 애를 먹고 있다. 병사들의 복무 기간은 노무현 정권 전까지만 해도 2년 2개월이었으나 문재인 정권에서 지난해부터 1년 6개월까지 내려온 반면 단기복무 장교의 의무복무 기간은 2년 4개월로 수십 년째 고정돼 있다. 복무 기간도 병사들보다 10개월이 긴 데다 병사로 근무해도 월급 200만 원을 받게 되면 굳이 장교로 가서 많은 책임을 지면서 근무할 이유가 없어진다.

전투력은 징병제 병사들이 모병제 병사들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그렇다고 의무 복무하는 병사들에게 직업군인 같은 자세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병사들의 월급 수준이 낮게 책정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전으로 올수록 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전투 훈련이 필요하다. 고작 1년 6개월 근무하고 제대하는 병사들에게 이런 훈련을 숙달시키긴 어렵다. 1년 6개월은 미리 정해진 작전·경계 지역에 병사들을 투입하고 퇴각시키는 기동 훈련만으로도 벅찬 시간이다. 그렇다면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병사들에게 200만 원을 지급하기보다는 돈을 좀 더 주더라도 모병을 늘려 정예화하는 게 전투력을 키우면서도 예산을 줄이는 길이다. 병사 월급 액수보다 먼저 그려야 할 큰 그림은 모병제로 언제, 어느 정도나 갈 것이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운동 당시 취임 첫해부터 200만 원을 약속했다. 그는 부동시(不同視) 판정을 받아 군 면제를 받았다. 군에서 총 한 번 안 쏴본 사람이다. 군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당장 눈앞의 20대 남성 유권자를 겨냥한 공약을 했다. 대통령직인수위는 어제 2025년 병장 월급 200만 원으로 목표를 하향했다. 병장 월급이 200만 원이면 이병 월급도 최소한 150만 원 이상이 돼야 한다. 하향이라기보다 공약의 실현 시기만 3년 늦춘 것이지만 그래도 과도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병사 월급이 많이 올라 올해 병장 월급이 67만 원이다. 2025년까지 병장 월급 100만 원 이상이 현실적인 목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병사 월급#최저시급#병사 월급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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