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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누나를 위한 협주곡[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40〉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04-27 03:00업데이트 2022-04-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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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다섯 살쯤 된 소년의 눈앞에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진다. 한 살 위인 누나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몸을 비틀고 숨을 헉헉거린다. 그는 옆에 누워 누나를 안심시키려고 말을 건다. 안쓰러운 마음이 그에게서 흘러나온다. 그는 누나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알지 못하고, 누나가 발작에서 깨어날 때까지 말을 걸며 몸을 쓸어준다.

소년은 알지 못하지만, 분만 예정일을 훌쩍 넘겨 태어난 과숙아인 누나는 예방접종으로 인한 뇌수막염으로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되었다. 누나는 보통 학교에 다닐 수도 없게 된다. 그는 아버지가 누나를 장애인 교육 시설에 데려다주고 계단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우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가 운다!

그런 기억들을 마음속에 담은 소년은 나중에 커서 첼리스트가 되었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누나를 극진히 보살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로는 더욱 그랬다. 결혼을 하고도 가능하면 같이 있으려고 했다. 초청받은 연주여행에도 늘 같이 갔다. 그럴 때면 첼리스트인 한국인 아내와 아이들이 방 하나를, 그와 누나가 별도의 더블 룸을 사용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누나는 그가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면 말했다. “너 정말 잘하더라. 진짜야.” 그 말이 그를 행복하게 했다. 누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먹고 마시는 일까지 열심이어서 말려야 할 지경이었다. 웃기도 잘하고 울기도 잘했다. 그는 그런 누나가 예순네 살에 불치의 병에 걸리자, 누나를 데리고 부모님 산소에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소풍도 갔다. 누나가 첼로 협주곡을 듣고 싶다고 하자 혼자서 연주도 했다. 협주곡이지만 첼로만으로 연주한들 뭐 어떠랴.

독일인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거의 자전 에세이집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한 연민과 사랑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의 글을 읽고 그의 첼로 연주를 들으면 묘한 온기가 느껴진다. 예술도, 연주도 인간적인 온기를 전제로 하는 것일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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