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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돌아가도 된다[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29〉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02-09 03:00업데이트 2022-02-09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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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부모에겐 늘 아이다. 어른이 되어도 품어줘야 하는 어른아이. 신경숙 작가의 ‘아빠에게 갔었어’는 그러한 아빠와 딸에 관한 소설이다. 표면적으로는 아버지의 희생적인 삶에 관한 감동적이면서 가슴 시린 이야기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화자이자 작가인 딸이 아버지에게서 위로를 받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두 층위로 나뉘는 것은 화자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화자는 교통사고로 딸을 잃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던 화자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딸이 좌우를 살피지 않고 달려오다가 그랬다. 그것은 카를 융이 트라우마를 정의하며 했던 말처럼 존재가 “바위에 내동댕이쳐지는” 경험이었다. “절망으로 등뼈가 갈라지는” 것 같았다. 화자는 지난 6년을 그러한 절망 속에 살았다.

아버지는 딸을 생각하는 마음에 말을 삼갔다. 그 사이에 그는 아프고 심각한 수면장애도 생겼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정신 줄을 놓고 아무 말도 못해줄 것만 같다. 그래서 어느 날 딸에게 말한다.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세상은 아픈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주문하지만, 그는 꼭 그럴 필요 없다며 과거가 더 좋았으면 그 기억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다만 불행한 순간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집착하게 되면 너도 힘들고 죽은 아이도 “갈 길을 못 가고 헤맬 것”이다.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놔둬라.”

그 말을 하는 아버지는 안으로 울고 딸은 밖으로 운다. 딸은 아버지의 말을 기록으로 남긴다. “매일이 죽을 것 같어두 다른 시간이 오더라.” 유언도 기록으로 남긴다. “니가 밤길을 걸을 때면 너의 왼쪽 어깨 위에 앉아 있겠다. 그러니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라.” 딸은 아버지의 말을 밑알 삼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절망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작가의 말대로 “모든 것이 끝난 자리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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