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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간지러운 말[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30〉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02-16 03:00업데이트 2022-02-1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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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가족 사이에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세계적인 법의인류학자 수 블랙이 쓴 죽음에 관한 명저 ‘남아 있는 모든 것’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딸의 사연이 나온다. 자기 얘기다.

어머니는 죽어가고 있었다. 모르핀을 맞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는 두 딸을 데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찾았다. 그는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마지막에 사라지는 감각이 청각이라는 연구 결과를 알고, 열 살과 열두 살인 딸들과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가족처럼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도 부르고 스코틀랜드 민요도 불렀다. 의사와 간호사는 세 사람이 화음도 맞지 않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웃었다. 그들의 노래로 어둡고 우울한 병실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다.

세 사람은 지칠 정도로 노래를 불렀다. 더 이상 부를 노래가 없었다. 이제는 작별할 시간이었다. 그들은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입술을 축여주고 머리를 빗겨주었다.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딸들에게 할머니와 둘이 있게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둘이 있게 되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간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보고 싶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그런 간지러운 말을 입에 올려본 적이 없었다.” 사랑이라는 말이 범람하는 세상이지만 그들 스코틀랜드인에게는 그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이 “외계인을 만난 것만큼이나 기이”한 것이었다. 묘하게도 그들은 표현에 인색한 우리 한국인들을 닮았다. 그런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이어서 그랬다. 자신의 곁을 영원히 떠나는 어머니를 향해 딸이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도 담아낼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언어의 한계다. 우리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는 언어가 가진 한계. 우리는 종종 그걸 잊는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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