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금상 수상자 이주영이 있었다. 실제 상을 받았지만 사인을 해주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는다고 가수의 길이 열리는 게 아니란 것도 알게 됐다. 어릴 때 막연히 생각했던, 좋은 곡을 만들면 누군가 나타나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 줄 거란 상상은 상상으로 끝났다. 앨범 계약을 하고 서류에 사인한 적은 있지만 그마저도 엎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음악의 꿈을 놓은 적이 없었다. 계속해서 노래를 만들었다. 매일 밤마다 노래를 만들었다. 어떤 바람도 없이 곡을 썼다.
25년의 시간이 지나 한 장의 앨범이 나왔다. ‘이주영’이란 앨범 제목 앞에 이제는 어떤 수식어도 없었다. 오랜 시간 음악의 꿈을 간직해 온 이주영이 발표한 첫 앨범이었다. 2019년 나온 앨범은 귀 밝은 음악 애호가와 관계자들 사이에서 자그마한 파문을 일으켰다. ‘파문’은 ‘수면에 이는 물결’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그 물결은 때론 마음에도 일었다. 그 안의 음악이 새롭거나 파격적인 건 아니었다. 그저 발라드라는 형식에 맞춰 건반을 치고 노래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듣고 ‘속수무책’이라는 표현을 썼다. 속수무책의 마음으로 음악을 듣고, 음악을 들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눈이 내린다’는 정규 앨범 발표 전 싱글로 먼저 공개했던 곡이다. 이 노래를 들은 많은 이의 마음이 무너졌다. 속수무책이란 표현에 가장 잘 부합하는 노래다. “지워버리고 미뤄두었던 마음” 앞에서 그저 노래를 들을 뿐이다. 2집 발표와 함께 ‘눈이 내린다’가 더 잘 어울리는 계절이 왔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발라드의 민족이다. 그렇다면 이 노래에, 이 목소리에 매혹되자.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