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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특파원칼럼/김기용]통제와 감시, 중국의 ‘만리방화벽’

입력 2021-11-23 03:00업데이트 2021-11-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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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인터넷선 ‘펑솨이’ 금지어, 관련 뉴스도 없어
통제·감시 시스템 사라져야 비로소 안전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펑솨이(彭帥)는 중국에서 ‘대스타’다. 그냥 ‘테니스 스타’라고만 부르기엔 부족하다. 중국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테니스 여자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테니스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여자 선수들이 잇달아 등장했고 펑솨이가 정점을 찍었다. 2013년 윔블던 여자복식에서 우승했고, 다음 해 프랑스 오픈 정상에도 오르면서 세계 랭킹 1위가 됐다. 그의 활약에 14억 중국인들이 환호했다.

펑솨이는 장가오리(張高麗) 전 중국 국무원 부총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을 2일 밤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올렸다. 장 전 부총리가 톈진시 당서기였고, 자신은 톈진시 소속 선수일 때 발생한 일이라고 했다. 펑솨이는 “부총리 지위까지 오른 분이라 이 사건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도, 화염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이 되더라도, 자멸을 재촉하는 길일지라도 진실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이 폭로 글은 게시된 지 20여 분 만에 삭제됐다. 웨이보는 곧바로 ‘펑솨이’ ‘장가오리’ 등의 단어를 금지어로 설정했다. 펑솨이 글은 중국 내에선 게시할 수 없게 됐다. 웨이보는 물론이고 위챗(중국판 카카오톡)도 이 이름이 들어간 내용은 상대방에게 전송조차 안 되도록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한국에서 카카오톡이 특정 이름이 들어간 글의 전송을 막는다고 해보자.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펑솨이의 글은 유튜브나 트위터 등을 타고 세계로 퍼져 나갔다. 세계 주요 언론들이 이 뉴스를 다루면서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알게 됐다. 중국인 대부분은 이 사건을 모르지만 중국의 일부 기자들은 알고 있다. 펑솨이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국제사회가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국 관영매체 기자들은 자신의 개인 트위터에 펑솨이의 이메일과 사진, 동영상 등을 올리면서 그가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을 기사로 쓰지 않고 트위터에만 올린 것이다. 일반 중국인들은 트위터에 접속할 수 없다는 걸 노린 것이다. 중국 정부는 ‘만리방화벽’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감시·검열 시스템을 가동해 중국인들의 트위터, 유튜브 등 접속을 막고 있다. ‘나팔수’ 역할을 하는 일부 기자들만 트위터 계정을 갖고 있다.

중국 기자들이 사진과 동영상을 올렸지만 되레 의혹만 커지자 결국 22일 펑솨이가 직접 등장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영상 통화를 하는 모습이 공개된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 펑솨이는 안전하지 않다. 중국에서 ‘펑솨이’는 여전히 금지어이고, 많은 중국인은 이 사건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중국 매체에 단 한 건의 기사도 없고, 성폭행 의혹에 대해 아무런 조치가 없다.

신장, 티베트 등 소수민족 인권탄압 의혹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원 논란 등 많은 부분에서 국제사회는 중국을 믿지 못한다. 중국이 철저한 통제와 감시 사회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국제사회에 영향력 있는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수다. 신뢰를 쌓으려면 먼저 ‘만리방화벽’부터 스스로 허물어야 한다. 중국인들이 세계인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을 때 중국에 대한 신뢰도 쌓일 것이다. 중국은 아직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펑솨이는 안전하지 않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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