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에 나설 때와 물러날 때[Monday DBR/김준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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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년(중종 15년) 9월에 열린 별시(別試)에서 임금은 이렇게 물었다. “출처(出處)는 중대한 일이므로 선비라면 마땅히 깊이 성찰하고 행동해야 한다. 옛날 장자방(張子房·장양)은 한(漢)고조를 도와 천하를 평정한 뒤 병을 핑계 대고 생식을 하며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노닐었다. 제갈공명은 선주(先主·유비)의 부탁으로 군대를 일으켰다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마쳤다. 도연명(陶淵明)은 이익과 영달을 구하지 않고 사직해 스스로를 맑고 깨끗하게 지켜냈다. 이 세 사람의 공명(功名)과 사업은 각기 아주 다른데도 선유들이 말하길 ‘고아한 풍모와 원대한 절개가 서로 같다’고 하였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출처란 벼슬에 나아간다는 뜻의 ‘출’과 자리에서 물러나 은거한다는 의미의 ‘처’를 합쳐 부르는 단어다. 옛날 선비들은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출과 처, 진과 퇴를 결정해왔다. 그런데 이에 대한 판단은 아무래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출’해야 할지, ‘처’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종이 언급한 장자방, 제갈공명, 도연명은 각기 다른 출처를 보여준 사람이다. 한고조 유방의 핵심 참모였던 장자방은 천하통일 대업을 이루자마자 정계에서 물러난 뒤 신선술(神仙術)에 몰두했다. 유비의 삼고초려로 세상에 나선 제갈공명은 한나라를 부흥하고 역적을 처단하기 위해 죽는 순간까지 온 힘을 기울였다. 도연명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관직을 내던지고 향리에 은거한다. 이처럼 세 사람의 선택과 행적은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왜 “고아한 풍모와 원대한 절개가 서로 같다”라고 평가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별시에서 장원급제한 송겸의 답안을 보자. 그는 “군자는 의리를 따르되 시대를 보아 행동하거나 멈추니 시종일관 적절하고 마땅함을 잃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갈 만한데도 나가지 않으면 의리가 아니고, 벼슬하지 않고 은거해야 하는데도 은거하지 않으면 역시 의리가 아닙니다. … 출처가 다른 것은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지, 그 의리는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송겸의 설명에 따르면 장자방이 한고조를 보좌해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항우를 죽인 것은 유방의 한(漢)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조국 한(韓)나라를 위해서다. 그는 복수를 위해 유방을 활용했을 따름이다. 다음으로 제갈공명이 자신을 모두 소진하면서까지 북벌의 대업에 매진한 것은 천하에 대의가 살아 있음을 천명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도연명이 사직하고 낙향한 까닭은 “유유(劉裕)의 찬탈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뻔뻔하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었고, 또한 힘이 미약하여 뜻을 함께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장자방은 여건이 마련됐지만 ‘처’한 경우, 제갈공명은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출’한 경우, 도연명은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처’한 경우에 해당한다. 얼핏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선택의 이유는 의리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동일하다. 출한 것도 의리로 하지 않음이 없었고 처한 것도 의리로 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이 의리를 지키는 길이냐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라는 것이다.

송겸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마주하여 어길 수 없는 것이 시대고 행하여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의리입니다. 군자가 진실로 그 시대를 살펴보고 의리를 행한다면 출처가 잘못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인물들의 출처는 모두 ‘그러한 시대에 맞춰’ 행해진 것이기 때문에 의리에 부합했고 올바름을 잃지 않았다.

이와 같은 출처의 도리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어떤 지위에 취임하고 퇴임할 때, 어떤 역할을 맡고 물러날 때, 상황과 역량, 올바름의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출’해야 할 때와 ‘처’해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시대에 맞게 의리를 행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도 중요하다. 세상의 흐름을 읽고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말고 능동적으로 변화에 대응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성공적으로 나아가고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이 송겸의 대책이 주는 메시지다.

원고는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32호(2021년 11월 1일자)에 실린 글 ‘出해야 할 때와 處해야 할 때를 정확히’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김준태 성균관대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akademie@skku.edu

정리=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관직#나설 때#물러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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