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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공부 그릇’ 만드는 유아기에 조바심은 금물[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입력 2021-11-03 03:00업데이트 2021-11-03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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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유아기 공부의 문제점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유아기 아이를 둔 부모들도 뭔가 공부에 대한 것을 준비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 목표가 내 아이의 능력과 관계없이 늘 크다는 것이다. 옆집 아이가 한글을 한 달 만에 뗐다고 하면 우리 아이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뒷집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똘똘하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 아이도 그랬으면 좋겠다. 부모는 아이의 능력을 확인하고도 싶고, 내 아이가 뛰어나다는 말도 듣고 싶고, ‘내가 이렇게 똑똑한 아이를 낳다니…’ 하는 뿌듯함을 느끼고도 싶다. 그러면서 아이가 잘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고, 아이를 잘 가르쳐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다. 본인조차 ‘공부도 아닌 공부’라고 생각하는 그 행위에 너무나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준이나 목표가 높아진다.

이 시기 부모는 내 아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부모로서의 역할 정립도 부족하다.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고 키워야 할지 중심을 잡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일관성도 없고 정리도 안 된 이중 삼중 사중의 메시지가 아이에게 마구 전달된다. 때로는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 건강하기만 하면 됐어’ 마음먹다가도 “이렇게 성의 없이 하면 어떻게 하니? 뭐든 열심히 해야지. 옆집 ○○이는 벌써 한글을 뗐대. 너는 어쩌려고 그러니?” 이런 식이다.

유아기 아이를 둔 부모는 ‘공부’라는 것을 앞에 두고 혼란 속에서 갖가지 감정에 시달린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열정은 어느 시기보다 강하다. 아이에 대한 어떤 평가를 받은 적이 없으며, 좌절한 적도 없다. 자신이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쏟아부으면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놀이처럼 가볍게 가르친다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에게 강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아이에게 부모의 지나친 에너지는 당연히 부담이 된다.

아이 입장에선 그 나름대로 열심히 하지만, 발달상 모든 것이 서툰 시기라 대부분 부모의 기대치에 다다르지 못한다. 부모는 그런 아이를 보며 가슴에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고 때로는 실망하기도 한다. ‘쟤가 왜 저러지?’ 하는 염려 섞인 의문도 든다. 하지만 이 시기 부모는 실망해도 실망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걱정으로 표현하기에는 아이가 너무 어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된다.

아이가 지나치게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것이 걱정인 부모는 아이에게 자꾸 “앉아! 좀 앉아 있어”라고 말한다. 자신이 걱정하는 부분의 문제 행동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아이가 글씨 쓰는 것을 싫어해서 걱정인 부모는 신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 옆에 가서 괜히 “△△아, 동그라미 한번 그려봐” 내지는 “직선 좀 그려봐” 하는 식으로 글자와 관련된 것으로 유도한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발표를 잘 못해 걱정인 부모는 아이와 있을 때면 수시로 ‘이렇게 말해봐. 저렇게 말해’ 하면서 앵무새처럼 부모 말을 따라하게 한다. 부모는 실망하면 걱정하고, 이를 줄이기 위해 개입하고 지적한다. 더불어 지시가 많아진다.

실망을 하면, 육아 태도도 미묘하게 달라진다. 똑같은 반응도 부드럽게 표현되지 않는다. “그래? 아빠 생각에는 아닌 것 같은데…”라고 할 말도,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라고 표현한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데도 점점 인색해진다. “그래, 그렇게 해”라고 할 말도, “안 돼. 그렇게 하기만 해봐. 너는 매일 네 맘대로 하면서 엄마는 네가 해달라는 거 다 해줘야 해?”라는 식으로 대응한다.

유아기는 아이가 학습을 하기 위한 그릇을 만드는 시기이다. 그릇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너무 많은 것을 담는 것에만 연연하면 그릇이 허술하게 만들어져, 본격적으로 뭔가를 담아야 할 때 쉽게 구멍이 생기고 금이 가 버린다. 그릇에 담을 내용물에만 집착하다가 그릇을 망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단단한 그릇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와의 애착이다. 유아기 ‘공부’에 지나치게 욕심을 내게 되면 이 애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유아기는 ‘안정적인 애착’에 집중했으면 한다. 그러려면 부모는 아이와 신나게 놀고 친해져야 한다. 부모가 하는 말이라면 솔깃해서 듣고 싶을 정도로 친해져야 한다.

유아기에 필요한 공부는 국어, 수학, 영어가 아니다.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것을 탐구하고 알아가는 것이다. 사물의 이름, 정의, 사용법, 놀이 방법을 배우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게 모두 공부다. 부모와 아주 깊고 친밀한 상호작용을 하고, 자연을 관찰하고 친구들과 땀나게 뛰어놀며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말과 감정을 배우는 게 가장 중요한 공부다. 그 공부를 부모와 신나게 열심히 했으면 한다. 그렇게 하면 다음 발달 시기에 해야 하는 공부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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