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건은 왜 목숨 걸고 탈옥했나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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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6시 중국 지린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탈북민 주현건 씨가 가건물을 기어오르는 장면과 중국 당국이 수배한 주 씨의 사진. 사진 출처 바이두
18일 오후 6시 중국 지린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탈북민 주현건 씨가 가건물을 기어오르는 장면과 중국 당국이 수배한 주 씨의 사진. 사진 출처 바이두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열흘 전 중국 지린(吉林)교도소에 수감됐던 탈북민의 탈옥 소식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주현건이란 이름의 39세 탈북민은 교도소 내 가건물을 능숙하게 타고 오른 뒤 전기철조망까지 손상시키고 담장 밖으로 사라졌다. 단신에 그쳤을 수도 있는 뉴스지만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탈옥 장면이 담긴 영상이 올라와 22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미국 CNN방송과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도 사건을 보도했다. 중국 당국은 현상금 15만 위안(약 2752만 원)을 내걸고 체포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주 씨가 체포됐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주 씨의 탈옥 사건은 올 들어 가장 화제가 된 탈북민 관련 뉴스가 아닐까 싶다. 지난해 2월부터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탈북민 뉴스를 수면 아래로 깊숙이 끌어내렸다.

사실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이 중국 내 탈북민들이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서 경유하던 동남아 국가들이 국경을 폐쇄하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새로 입국하는 탈북민이 거의 없어 탈북민 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은 텅텅 빈 지 오래다. 중국에서 마냥 숨어 살기도 어렵다. 지역 간 이동이 통제되고 단속이 강화되면서 돈을 벌기도, 은신처를 옮겨 다니기도 매우 힘들게 됐다.

체포되는 탈북민도 늘어나지만 북한이 받지 않아 중국 내 감옥에 기약 없이 잡혀 있다. 최소 내년 6월까진 북한이 탈북민 북송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란 정보도 있다. 물론 올해 7월 북한은 비밀을 많이 아는 고위급이거나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탈북민 50여 명은 끌고 갔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 동북의 여러 감옥에는 수백 명의 탈북민이 잡혀 있다고 한다.

주 씨의 경우 2014년 강도 혐의로 11년 3개월형을 선고받았다. 2025년까지 수감돼 있어야 하지만 모범수로 감형이 돼 2023년 8월에 출소될 예정이었다. 형기가 1년 10개월 정도 남은 상황에서 그는 왜 목숨을 걸고 위험한 탈옥을 감행했을까.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남은 형기에 절망하고, 출소 날짜가 다가올수록 희망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탈북민은 반대다. 출소 날짜가 다가올수록 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다.

중국 감옥에서 출소된다는 것은 북한으로 끌려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북한에 끌려가면 최소 교화소행을 예약했다는 뜻이다. 북한 교화소는 중국 감옥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열악해 살아서 나오는 것이 기적이다. 이에 비하면 중국 감옥은 차라리 천국에 가깝다.

탈옥한 주 씨도 감옥에서 나갈 날짜를 손꼽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사형수가 사형집행일을 세듯 북에 끌려갈 날짜를 손꼽아 세어 봤을 것이다. 사람이 죽음이 가까워지면 없던 용기와 힘이 생겨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목숨 건 탈옥으로 이어진 것이다. 어쩌면 탈옥에 실패하더라도 형기가 더 늘어나면 나쁘지 않다고 계산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최악의 인생처럼 보이는 주 씨가 체포된 다른 탈북민들에겐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다. 죄를 짓지 않고 체포되면 곧바로 북송이지만, 강도 짓이라도 해서 형을 선고받으면 형기만큼 사는 날이 늘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 사태는 수감된 탈북민에게 강제로 형을 부여한 효과가 있다.

가령 작년 3월에 체포됐다면 바로 끌려가서 지금쯤 북한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혀 죽었을 수도 있지만 코로나 덕분에 1년 7개월이나 더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코로나가 영원히 종식되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이번 탈옥 사건으로 대규모 검거 선풍이 벌어지고, 탈북민 신고포상금이 올라가면 그런 희망을 품어야 하는 사람이 더 늘어날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국경을 무단 침범한 자가 저항하면 발포를 허가하는 조항을 담은 ‘육지국경법’을 25일 통과시켰다. 최근 중국은 북-중 국경지역에 뚫기 어려운 철조망을 만들고 폐쇄회로(CC)TV를 촘촘하게 설치했는데 이제는 총기 사용까지 허가한 것이다. 이렇게 탈북이 막히고, 중국을 경유하는 한국행 루트까지 봉쇄되면 앞으로 중국 내 탈북민 관련 소식은 뉴스에서 싹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것이 중국과 북한이 바라는 것일 것이다. 주 씨의 탈옥을 계기로 감옥에 오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 석방이 두려운 불행한 동포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세상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주현건#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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