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컬러스 케이지보다 유명해지면 어쩌나[카버의 한국 블로그]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입력 2021-09-03 03:00수정 2021-09-03 03:0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 점점 늘어가는 요즘도 여전히 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거의 같은 질문을 받는다. “어디서 오셨어요?”가 그 첫 번째고, “한국어를 정말 잘하시네요. 한국에서 몇 년 사셨나요?”가 두 번째, 그리고 조심스럽게 “혹시 니컬러스 케이지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들으시지 않나요?”까지. 순서도 별로 다르지 않다. 대화가 대본처럼 이루어지니 마치 영어학원 교과서 ‘제2장: 처음 만나는 외국인과 대화하기’ 같다. 하도 반복 연습해서 체화된 덕에 자동으로 말이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할 때 저런 문장들을 배웠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할 것 같다.

맨 마지막 질문, 한때 ‘케 서방’으로 유명했던 니컬러스 케이지 관련 질문에 대해서는 약간의 첨언이 필요할 듯하다. 잘생긴 얼굴을 인정해 주시니 기분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내 얼굴이 그렇게 늙어 보이나, 이젠 서운하기도 하다. 케이지는 나보다 열두 살 많은 형이다. 처음 한국에 와서부터 듣던 ‘칭찬’이라 당시 20대 시절 친구들과 클럽에서 VIP 우대를 받아보자고 ‘케 서방’인 척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요즘은 폴 카버로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 방송 출연을 많이 했고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지 오래돼서 그런지 길을 걸어가거나, 장 보러 가거나, 심지어 전철 안에서도 날 알아보는 분들이 계신다. 이런 인기라면 언젠가는 케이지가 카버 씨를 닮았네요 하고 질문을 받을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유명해진다는 건 신나고 우쭐한 일이기는 하지만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한국에 살기 시작한 초기에도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때는 그냥 내가 외국인이어서 그렇겠지 하고 별생각 없이 넘어갔는데 요즘 시선은 조금 부담스럽고 어색하다. 알아보고 다가와서 말을 거시는 분들이 있는데 기분은 좋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부터 당황스럽다. 보통은 응원해 주셔서 고맙다며 머리를 숙이고 도망치듯 재빨리 걸어간다. 소심한 A형이라 그렇기도 하고 내 스스로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유명세는 내 정체성을 고민하게 한다. 얼마 전 꽤 알려진 유명한 지인에게 상담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유명인이라 팬들의 관심으로 먹고살고 있으니 밖에 나가면 개인 생활이 어느 정도 없어지는 것을 참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팬들은 공손하고 친절하니까 불편을 조금 느끼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동감한다. 방송에 의존해서만 살 수 있는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내가 나오는 콘텐츠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밖에 나가거나 말할 때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이전엔 내가 공공장소에서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면서 공원 벤치에서 낮잠을 자거나 친구들과 말싸움하더라도 아무도 알아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누가 유튜브에라도 올릴까 봐 내 행동과 말에 더 신경 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명세는 기분 좋은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내 인생이 갑자기 모범생 모드로 강제 업그레이드된 느낌이 들기도 해서 당황스럽기도 하다.

주요기사
단지 외국인이라서 느끼는 부담감을 독자 여러분도 이해하실 것 같다. 해외여행이나 유학 등으로 타국에서 외국인이라는 타이틀로 잠시라도 살아본 경험들이 많으실 테니까 말이다. 유명한 외국인이 되니 부담감이 두 배가 되었다. 최근 ‘귀화시험 만점 받은 외국인’이라는 예전에 찍은 유튜브가 ‘짤’로 만들어져 퍼지는 바람에 더 많은 분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외국인으로서 순수한 재미로 했던 콘텐츠였지만 이젠 한국문화를 한국사람보다 더 잘 알아야 할 것 같은 부담감까지 추가로 생겼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유명세는 내 일상에 약간의 제약을 가져오긴 했지만 한국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방송에 나올 기회가 생긴 것은 나로서는 큰 행운이다. 한국말과 한국문화에 적응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외국인으로서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초짜 방송인으로서 경력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나 스스로도 궁금하다. 나에 대한 관심이 당장 오늘내일 끝날 것인지 오래오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외국인이라서 받는 관심이 아니라, 폴 카버라는 다소 ‘특이한’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오래오래 사랑받는 방송인이 되고 싶다.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니컬러스 케이지#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유명세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