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용관]“바지 내릴까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영웅호색, 권력자의 주변엔 항상 여자가 있다.” 요즘 이런 말을 잘못 꺼냈다간 경을 칠 수 있지만 수십 년 전 요정정치가 성행하던 시절만 해도 ‘허리 아래 불문(不問)’을 금언처럼 떠들곤 했었다. 사형수 김재규에게 변호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자관계에 대해 물었더니 “남자의 허리띠 아래는 말 안 하는 겁니다. 그만 물으세요”라고 일축했다는 후일담도 전해진다. 세상은 바뀌었고, 성적 도덕성 문제는 정치인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시대가 됐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여배우 김부선 씨와의 스캔들’ 의혹을 놓고 5일 민주당 경선 후보 TV토론회에서 신경전이 벌어졌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명확한 해명을 요구하자 이 지사는 “제가 바지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맞받았다. 정 전 총리는 “그거하고는 다른…” 하며 어이없어했고, 이 지사도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라고 따졌다. 사회자가 다른 주제로 전환하면서 언쟁이 이어지지 않았을 뿐 양측 모두 불쾌한 기색이었다.

▷이 지사의 바지 발언이 돌발적으로 나온 것인지, 준비된 답변인지는 알 수 없다. 불륜 관계가 사실이 아니라면 여차여차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면 될 일인데, 너무 나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듣기 민망하다”는 의견도 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느냐는 반론도 있다. 이 지사는 6일에도 “‘당신 마녀지’라고 해서 ‘아닌데요’ 했더니 ‘아닌 거 증명해 봐’라고 한다”며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는 논리를 폈다.

▷이 지사의 바지 발언은 연원이 있다. 2018년 김부선 씨가 “특정 부위에 점을 봤다”고 주장하자 이 지사는 ‘신체 검증’으로 응수했다. 직접 아주대병원을 찾아가 “언급된 부위에 점이나 이를 제거한 흔적이 없다”는 의료진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김 씨는 의혹을 부인하는 이 지사를 검찰에 고소했고, 검찰은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앞서 김 씨는 바닷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고 했지만, 그의 딸이 사진을 다 폐기했다고 한 바 있다. 말뿐인 진실 공방이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2008년 여배우와의 풍문으로 곤욕을 치른 가수 나훈아 씨가 기자회견 도중 갑자기 테이블에 올라 허리띠를 풀고 “직접 5분간 보여주면 믿겠느냐, 아니면 내 말을 믿겠느냐”며 바지 지퍼를 내리려는 동작을 취했던 장면이 생생하다. 이 지사는 지난해 나훈아 콘서트를 본 뒤 “외로운 시간에 가황 나훈아님의 깊고 묵직한 노래가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저의 우상이다”고 했다. 이번 바지 발언이 ‘나훈아 패러디’라는 말도 있다. 난데없는 바지 공방에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희화화되고 있는 것 같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이재명#바지#여배우#스캔들 의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