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얼마 전 한 기업인이 연락해 와 불쑥 한덕수 국무총리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질문 의도를 몰라 우물쭈물했더니 한 총리의 내공(內功)이 궁금하단 것이었다. 말인즉슨 혹시라도 탄핵 국면이 오더라도 큰 혼란 없도록 국정을 잘 관리할 수 있는 ‘권한대행’ 역량을 갖췄느냐는 질문이었다. 쪼그라든 경제를 걱정하면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국무조정실장이었다는 등 두서없이 답변을 하는 한편으로 “큰돈 들여 기업을 하는 분들은 이런 걱정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돈은 권력의 향배에 그토록 민감하다. 필자는 다만 대통령 탄핵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실망을 넘어 절망”이란 보수층이 늘고 있지만, 아직 박근혜 탄핵 때와 같은 국정농단 물증은 딱히 없다. ‘윤-한 갈등’이란 뇌관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지만 이번에 당선된 108명은 비례 의원을 포함해 대부분 지역구가 안정적인 여당 텃밭 출신들이다. 정치생명을 걸고 그 위험한 ‘탄핵의 강’에 몸을 던질 이들은 현재로선 장담컨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최근 “징치(懲治·징계해 다스림)해도 안 되면 끌어내려야 한다”면서도 “탄핵 얘기를 한 적 없다”고 발을 빼는 것도 이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섣불리 가속 페달을 밟다간 불확실한 게임에 휘말리다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물론 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1심 판결 등 ‘운명의 11월’이 다가오고 있어 내심 초조하고 갑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지층의 탄핵 분위기는 부추기면서도 직접 발은 담그지 않으려는 고도의 줄타기인 셈이다. 대통령 탄핵은 정치적으론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선택도 같이 탄핵되는 것이다. 그만큼 엄격한 근거에 따라야 한다.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다수의 보편적 이익에 부합할 때라야 가능하단 얘기다. ‘방탄용’ 탄핵은 그래서 위험하고 야권 내 지지를 얻기도 힘들다. 한데 요즘 용산 돌아가는 걸 보면 윤 대통령과 측근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큰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탄핵 공세의 칼끝은 주지하다시피 김건희 여사를 정조준하고 있다. 탄핵은 극도로 신중하게 접근할 사안이지만, 대통령도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불안 요소들을 해소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 때와는 다를 것이란 믿음 때문인지, 11월이 지나면 전세가 역전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지, 극우 유튜버들의 정권 옹호 논리에 취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시중의 끌끌 차는 목소리엔 귀를 차단한 듯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용산은 김 여사 방어망이 뚫리면 마치 정권도 무너질 수 있다는 듯 전전긍긍하고 야당은 그런 여권의 난맥상을 즐기는 양상이 집권 전반기 내내 이어지고 있다. 김 여사는 그 숱한 논란에도 ‘언터처블’이다. 급기야 검찰이 명품백에 이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도 곧 무혐의 처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특검에 대한 여권 균열은 물론 촛불 결집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땐 뭔 사과를 한들 일반 사람들은 코웃음 칠 것이다. 게다가 웬 음습한 정치 기술자인지 협잡꾼인지 하는 사람과 대선 이후까지 소통을 이어온 흔적까지 나왔다. 만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부인이 기소된다면 대통령 부부는 물론 국민도 참담하고 치욕스럽긴 마찬가지다. 간단치 않은 일이지만 최고 권력자에겐 남다른 사생관이 요구된다. 검찰 출신 대통령인 만큼 더 무거운 책임감과 엄정한 잣대 적용이 필요했다. 이제라도 여론재판이 아닌 사법재판을 받도록 하는 게 ‘대통령 부하’로 전락한 검찰 신뢰를 회복하고 당사자들도 후환을 더는 길이다. 시중에서 “간신” “여사라인” 등 권력의 무게추에 의문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김 여사의 활동을 제어하고 온전히 국정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 용산은 어떤 길을 갈까. 극적 반전이 이뤄질 수 있을까. 대부분 아닐 거라고 한다. 권력의 레지티머시(Legitimacy·정당성)는 선출 과정의 합법적 정당성뿐 아니라 권력 행사 과정의 실질적 정당성까지 포함한다. 어쩌면 실질적 정당성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 실질적 정당성이 임계점을 넘나들고 있다. 나라 경제는 점점 껍데기가 되고 있다는 우려와 한탄이 쏟아진다. 김 여사 장벽을 넘지 않고는 만사휴의(萬事休矣)다. 정치에선 할 말이 없으면 지는 법이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얼마 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심우정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은 조용히 치러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환담장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한마디도 공개되지 않았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괜히 허튼소리 나올까 무척 조심했다”고 한다. 지극히 사적인 얘기만 오갔다는 후문이다. 5년여 전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식이 문득 떠올랐다. 많은 참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윤 총장을 낙점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며 ‘당부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사모님께 축하 말씀을 드린다”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 두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한 번은 임명장을 받는 위치에서, 한 번은 임명장을 주는 위치에 선 윤 대통령의 심정은 얼마나 복잡했을까 상상해 본다. 자신이 선택한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그 흔한 ‘정치 중립’ ‘엄정 수사’ 얘기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말조심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으니…. 계량화해 설명하긴 어렵지만 우리 국민 의식 저변엔 ‘권력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강하게 깔려 있다고 본다. 권력을 쥔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힘을 동원해 방벽을 치고 서로 보호하려 한다는 선입견이다. 이는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의 문제다. 최고 권력자는 옳든 그르든 그런 의심의 실체를 존중해야 한다. 자신이나 주변 문제에 대해선 내용이든 절차든 훨씬 더 엄중하게 접근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얘기다. 그게 정치의 영역이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은 실패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를 새삼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도 없겠지만, 심우정 검찰 체제가 막 출범한 시점이니 꼭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문제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실망, 민심 이반의 핵심 고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2020년 추미애 법무장관이 라임펀드 사기 사건과 함께 도이치 사건 등에 대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배제하는 지휘권을 발동하자 “검찰청법에 어긋나는 위법”이라고 반발했다.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란 말도 그때 나왔다. 검찰청법 위반이든 아니든 적어도 도이치 사건의 경우엔 총장의 부인이나 장모가 연루된 사건인 만큼 이해충돌 여지가 있긴 했다. 당시 윤 총장이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수사지휘권 박탈을 어쩔 수 없이 수용했던 이유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위법이 확실하다”고 했던 수사지휘권 배제를 원상 회복시키지 않고 2년 이상 끌어 왔다. 만약 집권 후 바로 도이치 사건 등에 대한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이 원상 회복됐으면 어땠을까. 검찰총장 지휘하에 김건희 여사 수사에 속도를 내고 그에 합당한 처분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명품백 같은 사건이 벌어졌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국민 앞에서 자신이 했던 말과 대통령이 된 뒤의 행동이 다르진 않았다는 당당함은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역린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요리조리 뭉개 온 한동훈 전 법무장관이나 박성재 법무장관도 ‘방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원석 전 총장은 ‘법불아귀(法不阿貴)’ 운운하다 퇴임 직전인 7월에야 구두로 박 장관에게 수사지휘권 복원을 요청했다는 레코드만 남겼다. 권력과 여론 사이에서 눈치를 본 건지, 말 못 할 고뇌를 한 건지 알 수 없지만 후임 총장에게 부담만 넘긴 꼴이 됐다. 이제 심 총장의 시간이다. 수사지휘권 박탈 무효를 선언하든, 지휘권 복원을 공개 요구하든 결국 애초에 꼬인 매듭을 상식에 맞게 풀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다. 총장을 패싱한 채 휴대폰까지 맡기고 경호처 부속 건물에서 방문 조사를 했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미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최근 항소심에서 주가조작 방조 혐의로 유죄를 받은 또 다른 ‘쩐주’ 손모 씨와 김 여사는 구체적 실체가 다르다며 아무리 그럴듯한 법적 논리를 들이대며 방어벽을 쳐봐야 고개를 끄덕일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제라도 검찰이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권력은 해석의 힘’이다. 신권 국가에선 신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하는 이들이, 법치국가에선 법률적 해석의 권한을 쥔 이들이 권력을 쥔다. 그 ‘해석 잣대’가 정권마다 제각각이니 공화정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총장의 수사지휘권 박탈 파동 때 라임펀드 사건을 담당했던 한 검사장은 “정치가 검찰을 덮어 버렸다”는 말을 남기고 검찰 조직을 떠났다. 그때와 지금은 뭐가 다른가. 새 총장이 얼마나 뱃심 있는 인물인지 모르겠다. 특검 여론이 60%를 넘는 현실을 직시하길 바랄 뿐이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꽉 막힌, 답이 안 보이는 난국(亂局)이다. 의료개혁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가,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국민도 답답하다. “의대 증원 마무리됐다”고 쐐기를 박은 대통령은 “개혁의 본질인 지역·필수 의료 살리기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정작 지역·필수 의료의 현장 주체가 돼야 할 의료계 반응은 싸늘하다. 의료개혁은 사실 정부로선 불리한 게임은 아니었다. 채 상병 문제나 명품백 이슈를 덮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는지는 모르나, 국민 지지는 꽤 높은 개혁 과제였다. 그런데 이젠 정부의 정책 역량 한계만 드러내는 형국이다. 왜 이리 꼬인 걸까.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일말의 해법은 없는 걸까. 모든 정책엔 제약 요소(constraint)가 있다. 그 제약 요소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건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다. 그런데 의료개혁의 방향은 무엇이고 제약 요소는 무엇인데, 이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의 전략과 로드맵 없이 거칠게 내지른 측면이 있음을 정부 쪽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마치 톱다운 방식으로 침대를 길게 짜놓고는 억지로 사람의 키를 늘여 맞추려 하는 식으로 비쳤다. 지금의 의료 상황에 대해 붕괴(崩壞), 대란(大亂) 등의 용어까지 쓰며 불안감을 조성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며 “의료 현장에 가보는 게 좋겠다”는 대통령의 말을 들었을 때는 뜨악했다. 대통령은 대체 누구에게 응급의료 현장 보고를 받는 건가. 우여곡절 끝에 응급실에 들어가도 수술할 의사가 있는지는 운에 맡겨야 하는 게 현실 아닌가. 아무리 준비를 많이 했더라도 정책의 일관성만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때도 있다. 흔들림 없이 밀고 가야 하는 것도 있고 현실을 직시해서 유연하게 방향을 조정하는 게 옳을 때도 있는 법이다. 어느 원로 법조인은 이를 참새에 비유했다. 어떤 참새는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방에 들어왔다가 투명한 유리창에 두어 차례 부딪힌 뒤 정신을 차리고 열린 문을 찾아 빠져나가지만, 어떤 참새는 계속 유리창에 부딪히다가 기진맥진해 죽기도 하는데, 지금 상황은 유리창만 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물론 대통령은 “기득권 카르텔과 타협하고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자신의 소명으로 느끼는 듯하다. 역대 정부에서 아무것도 추진하지 않아 의료 현장이 왜곡되고 곪아 터진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전체를 싸잡아 카르텔로 규정하고 일거에 수술하겠다는 식의 접근은 아니었는지, 의료계를 이참에 손을 보겠다는 식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의료 파동은 어쩌면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간 의료계에 누적된 모순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많은 국민들도 알게 됐다. 이는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공(功)’이다. 모처럼의 기회를 살려 가려면 대통령이 ‘불굴의 원칙’만 강조할 게 아니라 의료계의 마음을 달래고 개혁의 동반자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1년, 2년 못 버티고 의대생 전공의가 돌아온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전체적인 의료의 질이 떨어지면 이런 개혁이 무슨 소용이 있나. 의료개혁 문제는 정치의 문제이고 리더십의 문제다. 이 대목에서 드라마 ‘더 크라운’의 처칠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처칠은 런던을 덮친 그레이트스모그에 대해 처음엔 “안개일 뿐”이라며 무시했다. 내각 회의에선 날씨 문제 갖고 왜 그러느냐며 책상을 내리치고 격노도 했다. 그러다 실각 위기까지 몰렸는데, 자신의 비서가 앞이 안 보이는 스모그 때문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조문한 병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즉석 기자회견을 갖고 “영국 대공습 이후 최악의 장면”이라며 의료인 확보와 공기오염 원인 독립 조사위 구성 등 대책을 발표했다. 언론은 ‘위기 속 진정한 정치인’ ‘전쟁 때의 그를 보는 듯’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고, 일거에 상황은 반전됐다. 대통령이 한발 물러서거나 돌아가는 지혜를 보이면 어떨까. 국민을 위해 의료개혁을 추진했는데, 실제 해보니 상황이 매우 복잡하고 오히려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상황이 벌어졌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카르텔 운운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는 것도 좋겠다. 의료 현장을 직접 찾아 “의대 증원은 각 의대 현실에 맞게 자율권을 주겠다” “의정이 함께 의료 발전 5개년 계획을 세워 보자” 등의 발표를 하는 건 어떨까. 그래도 의료계가 요지부동이면 그땐 여론이 등을 돌릴 것이다. 권력자의 물러섬은 때로 ‘굴복’이 아니라 궁극의 가치와 이익을 위한 ‘큰 용기’일 수 있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윤석열 정권의 특징 중 하나는 자초지종을 알 수 없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정책이든 인사든 일반인들 보기에 “갑자기 이건 뭐지?” 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충분한 설명이 없다. 뒤늦게 해명을 내놓기도 하지만 납득이 잘 가지 않을 때가 많다. 최근 국가안보실장과 국방장관 인사도 그랬다. 80일가량 남은 미국 대선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8·15 광복절 경축사의 ‘통일 독트린’ 발표에다 한미일 정상의 캠프 데이비드 회의 1주년 공동성명 발표 일정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장호진 전 국가안보실장은 12일 통보를 받기 전까지는 교체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래 인사라는 게 전격적으로 이뤄지는 것이고, 일일이 공개할 수 없는 숨은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개인 능력을 떠나 궁합의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상근 특보직을 주고 “헨리 키신저의 역할” 운운하는 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이러니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의 여름휴가 때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와 편안한 분위기에서 뭔가 대화가 오갔을 것이라는 얘기부터 4번째 안보실장을 모시게 된 김태효 1차장과 신원식 신임 안보실장이 MB정부 때부터 가까운 사이라느니 하는 등 갖가지 뒷담화도 나오는데, 이 글의 논지는 아니다. 진실도 알 수 없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번 인사가 대통령 혼자 내린 건지, 누구랑 협의했는지 하는 점이다. 이는 정책 결정, 인사 결정의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사 논란이 있을 때마다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다. 절차적 정당성뿐 아니라 실질적 정당성을 갖추려 노력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종 결심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만 총리든 참모든 전문가든 두루 의견을 들을 필요도 있다. 예컨대 “경호처장에서 국방장관으로 직행하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 “야당 반대로 국론이 분열되면 국방력 결집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안보실장까지 교체하는 건데 인사 메시지가 모호하다” 등의 우려도 함께 검토됐어야 했다. 그런 다각도의 논의 끝에 결정을 내린 건지, 그냥 뚝딱 이뤄진 건지 궁금한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현 정부에서 중요한 결정이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는 인상 때문이다. 의대 증원 2000명 결정 과정의 미스터리를 다시 꺼내지 않더라도 방향 설정과 장단점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 반대 여론에 대한 대응 등 정교한 실행 방안 없이 논란이 큰 의제를 툭 던지고 사후에 수습하느라 한정된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필자는 이런 문제가 보편적 절차나 관행보다는 대통령의 독특한 리더십이 부각되는 국정 운영 스타일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8·15 통일 독트린 TF’도 그런 점에서 현 정부의 국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번 인사를 통해 또 한번 실세임을 보여준 김태효 1차장이 TF를 주도한다는데, TF엔 통일부 장차관도 참여한다고 한다. 결국 신속하고 효율적인 이행을 위해선 내각이 아닌 용산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을 가까이 보좌하는 이들에게 힘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을지 모른다. 비단 이 정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당연시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면 내각의 존재 이유는 뭔가. 용산 참모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대통령 의중만 살피고, 그에 맞춰 일선 부처를 일일이 통제하는 일이 반복되면 관료들은 팔짱을 끼게 돼 있다. 굳이 제 역량을 한껏 발휘하려 노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러 정권을 거칠수록 대통령실이라는 머리는 큰데, 정작 손발은 잘 안 돌아가는 ‘가분수의 나라’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사든 정책이든 관료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뭔가 바삐 돌아가는 것 같은데 국정의 핵심 의제가 뭔지는 뚜렷하지 않다. 주요 의제와 곁가지 의제가 마구 뒤섞인 채 터져 나오기 일쑤고 그럴 때마다 공직사회든 여의도 정치권이든 일반 국민이든 모두 용산만 쳐다보고, 용산은 현안 대응하느라 허덕인다. 그러니 국정은 종잡을 수 없고 산만하다. 곧 임기 반환점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용산의 힘을 빼고 내각에 힘을 실어 관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 아닐까. 인사든 정책이든 ‘체계’부터 세워야 한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요즘 더불어민주당은 참 낯설다. 정치부 기자로 처음 출입했던 정당이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였다. 약 30년 전 일이다. 그 뒤로도 하도 이합집산을 많이 해서 역사를 읊기도 쉽진 않지만 민주당 계열 정당은 치열한 노선 싸움을 벌이며 그들 나름대로 ‘당내 민주화’의 길을 걸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친노 패권, 친문 패권 등 특정 계파의 당권 독점으로 분란이 끊이질 않았지만, 그 또한 30% 안팎의 비주류는 늘 존재했기에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다. 그걸 알기에 아무리 비명들이 횡사했어도 이번 전당대회에서 2위 후보가 30%까진 아니라도 20% 안팎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예측도 했다. 순진한 착각이었다. 민주당은 ‘이재명 1인 옹위(擁衛) 정당’으로 완벽하게 변모하는 중이다. 올림픽 일정에 맞춰 전대 일정을 짰는지, 공교롭게 일정이 겹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소리 소문도 없다. 중간 결과는 85%를 넘는 득표율. ‘전체주의 정당’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이재명 후보도 께름칙한 구석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권리당원 투표율이 30% 정도에 그치고 있다. ‘당원 중심 정당’ ‘당원 주권 확대’ 등을 내세우며 권리당원 투표 비중을 확대했는데, 오히려 투표율이 떨어지는 역진(逆進)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투표율은 낮고 특정 1인의 득표율만 높은 ‘외화내빈’은 ‘일극(一極) 체제’의 정당성도 위협한다. 이 후보는 “일극은 맞지만 체제는 틀린 말”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일극’은 “다양한 국민들, 민주당 당원들이 선택한 결과”일 뿐 자신이 인위적으로 만든 ‘체제’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권리당원 10명 중 7명은 팔장을 끼고 있다는 사실은 뭘 의미할까. ‘다양성’이 지금 민주당에 있기는 한가. 지금 민주당은 오로지 윤석열 정권을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지의 권력 쟁취에만 혈안인 듯 보인다. 그런 광적인 분위기가 90% 득표율의 ‘이재명 옹위’로 발현되고 있다. “메뚜기떼” “전체주의 유령” “제왕적 1인 정당” 등의 비판은 내부 총질로 치부된다. 단일대오로 외부의 적에 맞서자는 논리다. 사실 전당대회는 당원들의 잔치, 집안 잔치다. ‘개딸 잔치’로 흐르건 말건 뭔 상관이냐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170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대표를 뽑는 선거가 그들만의 행사일 수는 없다. 매년 수백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지원받고 1명당 10억 원의 세금이 지원되는 국회의원을 170명이나 거느린 정당이어서만은 아니다. 돈 문제를 떠나 국가 시스템의 핵심적인 한 축인 입법부가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와 직결된 사안이기에 그렇단 얘기다. 그 점에서 볼 때 민주당은 낯설기만 한 게 아니라 한심하다. 불과 몇 달 전 윤석열 정권 심판론을 바탕으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도 국민의힘보다 정당 지지율이 낮고, 이 후보의 대선후보 지지율도 20%대에서 맴돌고 있다. 이유가 뭘까. “3년도 길다”던 윤석열 정권을 왜 빨리 끝장내지 못하냐는 불만 여론 때문일까. 민주당 주류가 그런 판단을 하고 있다면 국민을 우중(愚衆)으로 여기는 집단 착각이다. 필자가 보기엔 지금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덩치만 큰 못된 아이’ 같다. 덩치 작은 아이의 발목을 잡고 오도 가도 못하게 해놓고는 뭘 어쩌자는 건지 시간만 질질 끌며 괴롭히고 있다는 얘기다. 고작 20%대 정당 지지율을 갖고 있으면서 대통령 탄핵 운운하며 군불을 땐다. 방통위원장이 얼마나 문제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과거 법카 내역을 싹 뒤진다며 부산을 떨더니 취임 이틀 만에 탄핵안을 통과시킨다. 듣기만 해도 진부한 ‘25만 원 지원’을 엄청난 민생 비책인 양 레코드처럼 틀어댄다. 이러니 국회가 지방의회 수준만도 못하다는 조롱까지 나오는 것이다. 민주당은 정국을 리드할 수도 있었다. 대통령 탄핵이니 25만 원이니 하며 귀한 시간을 허비할 게 아니라 국가경쟁력, 미래 등의 담론을 주도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연금, 저출산, 신성장 동력 등 굵직한 국가적 과제가 한둘인가. 그런데도 지엽적인 정파적 이슈에만 매몰돼 있다. 이는 무슨 거창한 국가 비전을 떠나 기본적인 공적 책무(責務)와 관련된 문제다. 더 선명해질 ‘단색(單色)’ 조직이 어떻게 다양한 가치와 인적 역량을 담아낼 수 있을까. 민주당이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사법리스크 떼려다 더 큰 신뢰 위기, ‘무능(無能) 리스크’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국민의힘 새 대표 선출이 1차 투표에서 끝날지 결선 투표까지 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한동훈이냐 아니냐의 판세임은 분명하다. 이 추세에 변화가 없다면 51세의 한동훈이 쟁쟁한 선배 정치인들을 제치고 정당 생활 7개월 만에 집권 여당의 선출직 대표 자리에 오르는 장면을 볼 수도 있겠다. 보수 정당의 뿌리가 단단하지 못하고 정체성도 허약하니 내부에서 사람을 키우지 못하고 위기에 몰릴 때마다 늘 외부로 눈을 돌리는 게 체질화돼 있는 국민의힘 모습이 참 딱하지만 논외로 치자. 별의별 진흙탕 싸움이나 네거티브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 108명의 의원들도 한동훈 저지 그룹, 한동훈 쪽으로 발 빠르게 변신한 그룹, 대세 눈치 보기 그룹, 팔짱 그룹 등으로 나뉘어 각자 보신(保身)과 득세(得勢)의 기회를 탐색하느라 분주했을 뿐이다. 흥미로운 건 ‘어대한’ 기류는 시종일관 유지됐다는 점이다. 다른 3명의 당권 주자들도 각자의 스토리가 있고 나름의 존재감을 갖고 있는 중진들이지만 흐름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던 이유는 뭘까. TV토론을 지켜본 몇몇 정치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한동훈은 초보 정치인임에도 1 대 3의 불리한 구도에서 결코 주눅 들지 않는 모습, 속도감 있는 언변 등으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반면 국가 지도자감인가 하는 점에선 여전히 유보적 반응도 적지 않다.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듯한 ‘톤 앤드 매너’는 그렇다 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보수의 비전이 뭔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당원 대상이든 일반인 대상이든 5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는 건 한마디로 ‘한동훈 도구론’이 먹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성 정치인보다는 젊고 새로운 인물을 통해 당의 체질을 바꿔 보자는 변화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는 것이다. 아직 자질과 덕목이 검증되진 않았지만 ‘한동훈의 시간’을 한번 만들어 주자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당 일각에서 ‘어차피’ 한동훈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한동훈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이젠 ‘전대 그 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권력의 시간을 모래시계에 비유하곤 하는데, 시간의 흐름을 꽁꽁 묶을 방법은 없다. 정권마다 위 그릇에서 아래 그릇으로 흘러내리는 속도가 다를 뿐이다. 이 정권의 모래시계는 훨씬 빨리 돌아간다. 전대를 통해 확인된 사실 하나는 윤심(尹心)은 도통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니, 윤심은 이제 관심의 대상도 아닌 듯하다. 전대가 이대로 끝난다고 해서 모래시계의 아래 그릇은 한동훈 차지라고 단언할 순 없다. 오히려 당권을 쥔다면 정치력을 적나라하게 검증받는 혹독한 시기를 맞을 수 있다. 여전히 모래를 꽉 움켜쥐려는 용산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가 관건이다. 현재 권력은 아직 임기가 절반 이상 남아 있다. 극심한 내홍에 휘말리며 대통령 탈당, 분당, 탄핵 시나리오까지 나오지만 윤석열의 영역과 한동훈의 영역이 적당한 선에서 봉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월동주건 동상이몽이건 그게 양쪽이 다 사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의 세계는 때로 합리적 타산이나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격정적 ‘온난전선’과 한동훈의 차가운 ‘한랭전선’이 부딪치며 언제 어디서 폭우가 쏟아질지 모를 일이다. 특히 한 후보가 ‘여사 문자’ 공개 국면에서 국정농단, 당무개입 등의 용어까지 쓰며 저항한 건 윤-한 갈등의 본질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대통령 부인의 ‘농단’ ‘개입’ 논란은 치명적 이슈다. 김 여사 문제는 한동훈으로선 피할 수 없는 ‘숙명적’ 과제가 될 것이다. 여사 문제가 보수 위기의 핵심 고리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위기의 전부는 아니다. 그 점에서 국민의힘의 차기 지도부는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일반 국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고 보수 정당의 본질적 가치를 새로 정립할지에 대한 묵직한 비전을 내놔야 한다. 한쪽은 미래 권력만 꿈꾸고 다른 쪽은 현재 권력 유지에만 급급하며 권력 투쟁만 벌이다간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용산은 별로 바뀔 기미가 없다. 당이 바뀔 때다. 한동훈이든, 막판 뒤집기로 다른 당권 주자가 당선이 되든 대권 야심이 아닌 보수 재건의 도구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우선돼야 한다. 궁금하다. 정작 ‘원톱’ 주인공의 삶을 살아온 한동훈은 ‘도구’가 될 자세가 돼 있을까.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요즘 언론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를 꼽는다면 ‘탄핵’이다.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검사 탄핵, 인권위원 탄핵…. 하도 많이 듣다 보니 “탄핵이 뭐 별건가” 하는 내성(耐性)이 생길 정도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년 동안 13번의 각종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탄핵은 본래 ‘일반적’ 절차로는 중대한 위법 행위를 저지른 고위 공직자에 대한 처벌이 어려울 때 취하는 ‘특수한’ 조치다. 그러나 극히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할 일이 일반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연루된 여러 의혹 사건을 수사한 현직 검사들에 대한 탄핵 발의는 실로 압권이었다. ‘만취 대변’ 등 탄핵 사유가 황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식의 ‘방탄 탄핵’으로 법치(法治) 자체를 희화화하고 국가 시스템을 흔드는 일까지 벌일 것이라곤 미처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친명 충성파들에겐 법치 파괴 우려와 같은 공적(公的) 인식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검사 탄핵 발의는 곧 이 전 대표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들에 대한 유무형의 겁박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사법리스크의 시간을 지체시키는 게 근본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올 초 이 전 대표에 대한 재판을 지연시키던 판사가 사표를 낸 적도 있다. 민주당의 다음 스텝은 뭘까. 탄핵의 궁극적 타깃은 윤석열 대통령일까.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 청원에 대한 동의가 100만 명을 넘어서자 민주당 내에서 “성난 민심의 들불” “지난 2년도 너무 길었다” “200만, 300만으로 이어질 기세” 등 으름장이 쏟아진다. 검사들에 대한 탄핵 시도는 결국 대통령 탄핵으로 넘어가기 위한 ‘여론 간보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 흐름을 보면 “박근혜 같은 최후를 맞을 것”이란 경고와 엄포가 단순한 레토릭으로 들리지만은 않지만, 여기서 한번쯤 생각해 볼 대목은 있다. 채 해병 사건 외압 의혹, 명품백 의혹, 전쟁 위기 조장, 일제 강제징용 친일 해법 강행,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방조 등을 쭉 열거한 해당 청원의 탄핵 요건이 허술하다거나 청원에 동의한 이들이 대부분 개딸 혹은 강성 당원일 것이라는 얘기는 논외로 치자. 이 전 대표는 왜 이 문제에 대해 입을 꽉 다물고 있을까. 탄핵 분위기를 한껏 띄우는 것과 이를 실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2016년 박근혜 탄핵 때와 얼핏 비슷한 상황 같지만 질적으로 다르다. 여야가 손잡았던 그때와 달리 보수 진영엔 ‘박근혜 학습효과’가 남아 있다. 요즘 유행하는 ‘배신 프레임’이다. 더욱이 이 전 대표는 170석 야당의 실질적 수장이다. ‘변방의 장수’로 앞장서 “박근혜를 끌어내리자”고 외쳐 댔던 그때와 달리 잃을 게 많다. 탄핵 궤도에 올라탔다가 일을 그르칠 경우 그 후폭풍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그런 무모한 도박에 섣불리 나서진 않을 거란 얘기다. 물론 이 전 대표는 갑갑한 상황이다. 내심 탄핵 시계를 앞당기고 싶겠지만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선거법 등 1심 판결 여부에 따라 내부 반란 세력이 준동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제1당 대표라는 철갑을 다시 챙겨 입고 탄핵 여론 추이를 살피며 집권 세력의 균열 가능성을 엿보는 게 그로선 합리적 선택이다. 그런데 용산 핵심부에선 이 전 대표가 대통령 탄핵 수순을 밟을 것으로 단정하고, 오히려 정국 반전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정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른바 노무현 탄핵 역풍 모델이다. 어차피 손을 내밀어 봤자 결론은 탄핵 추진이니 해볼 테면 해보라는 것이다. 총선 참패 후 잠시 협치 탐색이 이뤄지는 듯하다가 다시 마이웨이의 강 대 강 기조로 돌아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한다. “이재명은 바보가 아니다.” 그를 직접 겪어 본 사람들의 얘기다. 상대를 얕잡아 보면 오판하게 된다. 대한민국엔 요즘 권력자들을 위한 두 개의 놀이공원이 있다. ‘용산랜드’와 ‘여의도랜드’다. 용산 권력은 그들만의 놀음이 한창이고 여의도 권력은 호시탐탐 진공 태세를 갖추고 있다. 태블릿PC 같은 휘발성 높은 사건이 터져 나오고 국정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고 대통령과 여당은 자중지란의 내부 쌈질만 벌이면 어찌 될까. 여당 전대 과정에서 불거진 난데없는 ‘여사 문자 소동’은 불길한 징후다. 탄핵 게임은 시작된 것도 끝난 것도 아니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진짜 게임은 누가 더 민심의 성채를 튼튼하게 하느냐다. 그 점에서 제2부속실 설치 등 민심을 다독이는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용산이 참 이해하기 어렵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소여(小與) 신세의 국민의힘 당대표가 한 달 뒤 선출된다. 흔히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고 하는데 양쪽의 균형은 심하게 깨졌다. 왜소해진 오른쪽 날개는 거대한 왼쪽 날개에 속절없이 끌려가는 형국이다. 이번 전대는 국민의힘이 제 궤도를 찾을지, 좌우 균형의 토대를 만들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이벤트다. 그런데 지난 총선 때 민심의 호된 회초리, 아니 몽둥이를 맞은 국민의힘은 참패의 기억을 벌써 잊은 듯 그들만의 당권 쟁투에 돌입한 모습이다. 당대표 선거는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한동훈(가나다순) 등 4파전 구도로 좁혀졌다. 이재명 대표를 다시 추대하는 식의 ‘체육관 선거’를 치르게 될지도 모를 민주당에 비해선 생동감이 돌게 됐다.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기류도 있지만 1차에서 끝날지, 결선 투표까지 갈지, 1, 2위 표차가 어느 정도일지, 3위가 캐스팅보트를 쥘지, 그 표는 어디로 갈지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일반 국민 여론조사 비율이 20% 반영되는 ‘8 대 2’ 경선룰이 어떤 마법을 부릴지 속단하긴 쉽지 않다. 친윤이냐 비윤이냐 반윤이냐, 당권에서 대권으로 직행할 것이냐, 그 경우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따라 1년 2개월 뒤 사퇴하는 것이냐 등 여러 구도와 변수가 얽히면서 경선 자체는 일단 흥행 요소를 갖추긴 했지만 뭔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 드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4명의 후보들이 저마다 내세우는 “보수 재집권의 성공” “당정 원팀” “대통령 견인” “이기는 여당” 등 외침의 공허함이다. 일반 국민이 보기엔 보수의 궤멸이란 말이 나올 정도의 위기 속에서 자신들이 왜 당대표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출사표인지 의문이란 얘기다. 이는 각 후보들의 학벌이나 판검사 출신 등 직업, 경제력 등이 갖는 계급성 때문만은 아니다. 망가진 보수의 가치, 보수의 앞날을 둘러싼 치열한 노선 투쟁을 예고하기보다는 당내 역학 구도에 따른 줄 세우기 양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4명의 후보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인물은 한 전 위원장일 것이다. 어대한 얘기가 나올 만큼 현재로선 당원이든 일반 국민이든 지지율이 앞서고 있지만 정치에 입문한 지 반년밖에 안 된 정치 초보다. 그의 당대표 도전은 그만큼 본인으로선 미지의 정글 속으로 뛰어드는 모험일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였으나 총선을 거치면서 반윤의 처지로 바뀐 한 전 위원장은 이번에 나서지 않으면 고사(枯死)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는지 모르겠다. 총선 실패의 아픈 기억을 대권 승리로 상쇄하고 싶다는 야심도 있을 것이다. 그의 도전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지만 “글쎄” 하며 긴가민가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은 우선 원내 경험이 없는 원외 대표로서 어떻게 국회의원들을 지휘할지, 한솥밥을 먹었던 윤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더 본질적으론 그의 준비다. 국가 지도자는 거칠게 말하면 3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는 비전, 둘째는 이를 실행할 경륜, 셋째는 국민 지지다. 비전과 경륜은 이성의 문제이고 국민 지지는 감성의 문제다. 그는 팬덤은 있지만 아직 어떤 보수의 비전을 갖고 있는지 보여준 적이 없다. 법무장관을 지냈지만 독자적으로 차곡차곡 쌓은 경륜이라고 하긴 어렵다. 변방이나 비주류 생활을 해본 경험도 일천하다. 정치 리더가 되겠다는 야망을 갖는 건 자유지만 그에 걸맞은 내면적 성찰이 동반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대 도전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딱 한 번의 승부가 될 것이다. 이재명에 맞설 ‘꿩 잡는 매’ 여론에 기댈지, 그 이상의 잠재력을 보일지는 오로지 그의 몫이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조국 이준석에 한동훈까지 당대표를 하게 되면 사면초가에 놓이는 형국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국민의힘 경선에 개입하고 싶은 욕구도 클 것이다. 그러나 용산 입김은 없어야 하고 먹히지도 않을 것이다. 젊은 보수를 지향하든, 천막 당사의 정신을 가져오든 보수 혁신, 보수의 질적 전환을 둘러싼 치열한 노선 투쟁, 비전 경쟁이 펼쳐지도록 경선에서 일절 손을 떼야 한다. 한 달의 경선, 윤심 타령도 어대한 타령도 다 걷어치우라. 또다시 친윤이니 비윤이니 반윤이니 하는 프레임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국민의힘은 차라리 문 닫는 게 나을 것이라는 냉소와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이번 전대가 허물어진 보수의 가치를 되살리는 ‘희망의 이벤트’가 될까, ‘절망의 이벤트’가 될까. 보수 혁신의 담론 없이는 국민의힘 미래가 밝을 수 없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은 818호다. ‘818’은 나름의 의미가 있는 숫자다. 민주당의 ‘중시조’라 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일이 8월 18일이다. 올해 15주기가 되는 바로 그날, 당 대표를 뽑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공교롭다. 이 대표가 추대든 경선이든 연임이 되면 민주당에선 DJ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이 대표가 최근 ‘뉴DJ플랜’을 떠올리게 하는 정책 행보를 보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1995년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한 DJ의 대권 플랜인 중도 실용 노선이다. 이 대표가 윤석열 정권을 향해 온갖 특검 공세를 펴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국민연금 개혁이나 한강벨트를 겨냥한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민생 이슈를 선점하려는 투 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게 그렇단 얘기다. 이처럼 다채로운 전법을 구사하며 ‘여의도 대통령’이란 소리가 나올 정도의 권력자가 됐지만, 요즘 그의 표정에선 웃음기가 사라진 듯 보인다. ‘사법리스크’란 다섯 글자의 족쇄 때문이다. 채 상병 사건과 명품백 문제 등으로 잠시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그의 사법리스크는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 사건에 대한 1심 판결로 일거에 다시 떠올랐다. 이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자신이 임명했던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가 징역 9년 6개월 선고를 받자 이 대표의 표정도 입도 굳어졌다. 판결문은 “조선노동당에 보낸 200만 달러는 이 대표 방북 사례금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적시했다. 지난해 10월 단식 와중에 민주당 내 일부 반란표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을 때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고, 이 전 부지사의 변호인이 “이 씨에 대한 유죄 판결은 이 대표에 대한 유죄를 추정하는 유력한 재판문서가 될 것”이라고 한 터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대표의 유무죄를 예단할 수는 없다. 대북송금 보고를 직접 받았는지 여부는 증거와 법리에 따라 가려질 사안이다. 분명한 건 이 대표로선 ‘사법의 시간’ ‘재판의 시간’이 궤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그는 쌍방울 문제 외에도 대장동·백현동 사건, 대선 공직선거법 위반, 2002년 검사 사칭 관련 위증 교사 혐의 등에 대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위증 교사 혐의는 사안이 단순해 올해 안에 1심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해일처럼 몰려오는 사법리스크를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이 대표가 짐짓 보수의 어젠다를 파고들며 ‘프레지덴셜’한 행동을 보이고는 있지만 속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쌍방울 수사 자체가 조작이라며 특검법을 발의하고, 수사한 검사 탄핵까지 추진하겠다고 하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자신이나 측근들을 변호했던 이들에게 배지를 달아준 뒤 대거 법사위에 배치시키고 특검의 최종 관문인 법사위원장 자리를 꽉 움켜쥐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선 패자였던 이 대표는 2년 전 당 대표에 출마하며 “DJ를 닮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도 개딸 당원들에 발을 딛고 입으론 DJ 따라 하기를 내세우며 위기를 돌파하려는 심산인 듯 보인다. 그러나 둘은 다르다. 무엇보다 DJ가 때론 길거리 투쟁에 나섰을지라도 국회에서의 협상과 타협을 중시한 ‘의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대표를 둘러싼 온갖 사법적 이슈들은 모두 개인의 문제이지 민주당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을 국회 다수당으로 만든 게 똘똘 뭉쳐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방어하란 뜻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을 당의 위험으로 전가시키는 건 유력한 정치인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국정시스템의 중요한 축인 제1야당을 형해화시키는 것이며, 이는 국회 마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이 대표의 방탄 행보는 ‘사법적 유무죄’와 별개로 ‘정치적 유죄’가 될 것이다. 퇴근하다 보니 “독재는 민주를 이길 수 없다”는 민주당 플래카드가 있었다. 이 구호가 공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우선 윤 대통령이 독재조차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고, 둘째는 요즘 이재명의 민주당이 ‘민주성’을 상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당은 회사가 아니다. 여든 야든 막대한 혈세가 지급되는 중요한 국가 시스템이다. 개인의 사적 위험을 공적 위험인 양 ‘포장’하는 것은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며, 나아가 의회주의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DJ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175석의 원내 1당을 대선 때까지 방탄 노릇만 하게 할까.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해병대원 채 상병 특검 재의결을 앞두고 야권에서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탄핵 열차 시동” “탄핵 마일리지” “T익스프레스(탄핵 급행열차)” 등의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채 상병 사건 처리 문제가 탄핵 사유가 되는지, 또 현실성이 있는 얘기인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선 특검을 탄핵의 징검다리로 삼으려는 음험한 시도에 찜찜함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권의 4·10총선 참패 직후 칼럼에서 필자는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 국방장관의 결재 번복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장 잘 아는 당사자는 대통령 자신일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그날의 진실을 선제적으로 솔직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썼다. 지난해 7월 31일 용산 회의에서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의 진실이다. 대통령 기자회견까지 거쳤으나 지금까지도 어떤 내용의 격노, 혹은 질책이 있었는지 추측만 무성하다. 국민은 ‘사망 사고 처리’에 대한 질책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데, 대통령은 ‘사망 사고 자체’에 대한 질책만 언급했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도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대응과는 별개로 분명히 따지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처신이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지만 재난 대응 같은 평시의 군 업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장관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해병대 수사단의 경찰 이첩 보고서에 결재를 한 당사자도 국방장관이다. 애초 수사단의 보고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보완을 지시하고 결재를 미뤘으면 될 일이다. “해외 출국(우즈베키스탄 출장) 준비에 바빠서…”라는 게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 진짜 그랬다면 무능함을 드러낸 것이다. 현재까지의 정황을 볼 때 갑작스러운 해병대 수사단의 브리핑 취소, 자료 이첩 보류 지시 등은 용산의 개입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 해도 이 전 장관의 책임이 면해지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회의에서 격노했는지, 언성을 높였는지, 장관과 직접 통화를 했는지, 어떤 구체적인 지시까지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설령 대통령의 질책이 있었다 해도 이를 어떻게 수용할지는 오롯이 ‘장관의 몫’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이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즉자적 의견을 내놓는 게 적절하냐의 문제는 논외로 치자. 대통령이 야단을 쳤다 해도 “이미 결재까지 한 사안이니 이를 번복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끝까지 잘 관리하겠으니 맡겨 주십시오”라고 했다면 상황이 이렇게 흐르진 않았을 것이다. 번복 사유를 수사단장에게 납득시키지도 못하고, 항명 논란까지 벌어졌으니 이런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한 책임 역시 이 전 장관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당사자에겐 얼마나 서슬 퍼렇게 다가올지 짐작만 할 뿐이다. “이러면 누가 사단장 할 수 있겠느냐”는 말에 뒤늦게 “아차” 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위가 어찌 됐든 자기 판단으로 결재를 해놓고 하루 만에 뒤집은 장본인이 이 전 장관이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가 원래 순응형 인물인지, 말 못할 고뇌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공수처가 해병대 사령관의 휴대전화에서 ‘VIP 격노설’이 언급된 녹취파일을 확보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 전 장관 측은 “대통령의 격노를 접한 사실이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또한 말장난 같다. 그럼 차분한 지시는 있었다는 건지, 용산의 누군가와 통화를 한 사실은 있는지 여전히 모호하다. 이러니 대통령을 보호하는 척하며 실은 그 뒤로 숨는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것이다. 채 상병 사건이 이렇게 커진 건 대통령 질책 자체보다는 권력이 진실을 은폐하려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력을 가진 쪽에서 먼저 큰 틀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 밝히는 게 채 상병 사건의 꼬인 매듭을 푸는 첫 단추다. 어느 선에서 이첩 자료 회수 등의 조치가 이뤄졌는지 등에 대한 세세한 사실관계, 그에 따른 책임 소재와 법리적 다툼은 그다음 일이다. 이번 사건의 권한과 책임은 애초 국방장관의 몫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국민이 정부에 기대하는 ‘책임의 수준’이란 게 있다. 그 점에서 이 전 장관의 그간 행보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이제라도 한때 국방 수장으로서 온전히 책임질 건 책임지겠다는 용기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게 여의도에서 슬슬 불거지기 시작한 탄핵의 위험한 정치 곡예를 막는 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 중 꼭 하나는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특검법을 받을까 하는 얘기를 사석에서 나눠봤다. “부인을 그렇게 끔찍이 여기는데…” 하는 즉자적 반응이 많았다. 법리를 떠나 ‘부인 특검법’은 절대 받지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순애보인지 자존심인지 알 수 없으나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굳어져 있는 듯했다. 필자도 얼핏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본인 문제와 부인 문제 중 하나를 택하라면 차라리 본인 문제를 감당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물론 이들 특검법의 타당성을 법리적으로 따지자면 논쟁은 끝이 없을 것이다. 이 글의 주제도 아니다. 다만 “국가 차원에서 볼 때 두 사안의 무게는 다르다”는 어느 원로 학자의 말을 되새겨 본다. 김 여사 리스크는 엄밀히 말하면 ‘사인(私人)’의 문제이지만 채 상병 사건은 군의 명령을 이행하던 한 젊은이의 죽음, 초기 조사 및 경찰 이첩 과정에서의 국가 권력 개입 의혹, 멀쩡하던 해병대 대령의 항명죄 기소 등이 얽힌 공적(公的)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 중대하다는 것이다. 용산 참모들은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사망 사건에 대해선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 권한이 없는 만큼 ‘수사 외압’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공수처가 수사 중인 만큼 그 결과를 보고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형식 논리적으론 맞는 말 같지만 일반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 공수처 수사 역량은 익히 알려져 있다. 더욱이 이른바 ‘VIP의 격노’로 인해 사건 기록 회수가 이뤄졌다는 의혹이 퍼져 있는 상태다. 그래서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그날의 진실에 대해 속 시원히 듣기를 기대했다. 대통령은 “순직한 사고 소식을 듣고 국방장관을 질책했다”고만 했다. 야당이 대통령의 직권남용 사법방해 운운하며 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을 뻔히 알면서 질문을 잘못 알아듣고 동문서답한 걸로 보긴 어렵다. 사고 질책은 있었을 테니 거짓은 아니겠지만 이첩 및 회수 과정에서의 격노설 의문은 그대로 남았다. 의도적인 답변 회피로 비쳤고 당당하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웠다. 대통령이 틈을 보이고 수비에 급급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더 공세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참에 ‘쌍특검’ 앞에서 머뭇대고 있는 용산을 탄핵 직전까지 몰아붙일 태세다. 마치 사법리스크의 공수(攻守)가 바뀐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한 꺼풀 벗기면 이 대표도 마음이 급하다. 사법 리스크의 현실화 시간이 하나하나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찐명’ 원내대표와 국회의장 교통 정리 등 일련의 흐름을 보면 이 대표는 정교한 로드맵을 갖고 움직이는 것 같다. 채 상병 특검에 이어 김건희 특검을 몰아칠 개연성이 농후하다. 탄핵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내심 개헌론으로 대통령 임기 단축을 꾀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법 리스크의 시간을 넘어서려 하고 있는데, 용산의 대응은 굼뜨기 짝이 없다. 위기감을 갖고는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대통령이 탄 배는 3년은 더 항해해야 하는데 물은 얕아졌고 암초는 널렸다. 국민의힘을 자신의 집으로 만들려 그토록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비롯해 사방이 적이라고 여길 공산이 크다. 혹시 그 연장선에서 이 대표와의 회담을 앞두고 ‘함성득-임혁백’ 비선 라인을 가동한 것일까. “이 대표와 경쟁할 인사는 대통령실 인선에서 배제하겠다” “부부 동반 모임도 갖고 골프도 하자” 등의 말을 전했다는데, 실체가 있는 얘기인지 꾸며낸 얘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용산은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여태까지 법적 대응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아 갖가지 억측만 난무한다. 함 교수는 보도 확인 요청에 “윤 대통령의 큰 정치를 향한 진정성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큰 정치’를 위해 이 대표에게 무슨 거래(去來)를 타진한 것이라면 황당한 일이다. 윤 대통령의 불안감과 이 대표의 조급함이 부딪치는 지점이 쌍특검이다. 윤 대통령이 여기서 안일하게 대응하거나 오버하면 나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만에 하나 서로의 리스크를 덜기 위한 물밑 큰 거래를 도모할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말기 바란다. 진정한 큰 정치는 국민 앞에 솔직한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 쌍특검은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채 상병 사건의 ‘질책의 진실’을 밝히는 것부터 하나하나 꼬인 매듭을 풀어가다 보면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관계는 두말할 것 없이 ‘상극(相剋)’이다. 한쪽은 그토록 만나자 만나자 했고 다른 쪽은 사실상 범죄자 취급하며 미루고 미뤘다. 그러다 집권 2년이 다 돼서야 마침내 오늘 만난다. 드라마틱한 반전이지만 단막극이 될지 연속극이 될지 예단은 쉽지 않다. 각각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을 쥔 둘은 삐끗하면 파멸에 직면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이 대표가 “다 접고 만나자”고 한 데는 ‘이러다 회동 자체가 무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깔렸을 것이다. 사실 총선 승리에도 이 대표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것은 변함없는 사법 리스크 때문만은 아니다. 예상보단 크지 않았던 전국 지역구 득표율 차이, 호남과 세종에서 조국혁신당에 밀린 비례 득표율 등 찜찜함이 남아 있다. 그 점에서 이번 회동은 재판 중인 이 대표로선 남는 장사다. 무엇보다 야당 리더로 공식 대우를 받는 그림이 검찰과 법원에 주는 무언의 메시지를 기대할 것이다. 총선을 거치며 존재감을 키운 조국 대표와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홈그라운드 이점은 있지만 윤 대통령의 심사도 복잡하다. 야권의 채 상병 특검, 김건희 특검 등 자신과 부인을 향한 공세는 껄끄러움 차원을 넘어서는 법적 이슈다. 실제 도입된다면 살아 있는 권력을 겨냥한 ‘제2의 윤석열’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특검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서로의 급소를 쥐고 비수를 품은 채 나누는 둘의 대화 장면은 어색하면서도 긴장감이 흐를 듯하다. 이번 만남에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또 있다. 둘 다 큰 포석을 두는 경세가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어서다. 둘은 중앙 정치 경험이 많지 않고 지지 기반도 그리 단단하지 않은 ‘취약한 오너형’이라는 공통점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각자 할 말만 쏟아내는, 개딸이 됐든 태극기가 됐든 서로의 극렬 지지층의 기류에만 응답하는 만남이 되지는 않을까 우려가 되는 것이다. 총선 후 국민 불안의 요체는 “이러다 나라 망할라” 하는 것이다. “3년은 너무 길다”고 외쳐대는 상황, 공공연히 탄핵이나 하야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이제 나라는 어디로 가느냐는 걱정이다. 그러잖아도 허약해진 공직 시스템은 아예 작동하지 않는 지경이지만 용산은 벌써 이들을 닦달할 힘도 빠졌다. ‘용산 권부(權府)’는 거칠게 표현하면 5년간 활동하고 해체될 운명의 ‘유랑 극단’이다. 윤 정권뿐 아니라 문재인,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도 마찬가지였다. 정권마다 성격은 다르지만 어김없이 엉성함이 드러나는 이유는 캠프 관료 등 구성원 출신이 제각각인 한시적 권력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힘까지 빠졌으니 나라 꼴은 어찌 되나. 그 점에서 이번 회동의 핵심 의제는 협치의 틀을 어떻게 짤 것인지가 돼야 한다고 본다. 뭘 주고 뭘 받았네 하는 현재 ‘이슈’에만 매몰되기보다는 여소야대 3년의 국정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체계’를 잡는 게 훨씬 본질적인 과제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정치=협치’를 의미한다면 협치의 구체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실질적 협치를 이뤄내려면 네거티브 이슈를 놓고 티격태격할 게 아니라 시급한 경제 안보 복지 등의 공통분모를 찾고, 이를 실행할 주체로서 ‘협치 총리’를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정치사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총리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러나 여야가 함께 양해할 수 있는 인사를 총리로 지명하고, 용산은 실질적인 ‘책임 총리’의 권한을 부여하면 여소야대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점에서 최근 용산 비선 라인이 박영선 등 야권 인사들을 언론에 흘린 것도 어이없고, 친명계가 일제히 TK 주호영 의원을 띄운 것도 진정성을 의심받을 만하다. 협치의 핵심 고리로 총리 후보를 고심하는 게 아니라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생각이 앞선 것 아닌가. 이제라도 야권 추천을 받아 야당 인사를 총리로 세우는 방안을 상상해 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다. 야권 인사는 누가 되든 양측 지지층의 동의를 얻기도 어렵고, 국정 방향과 소속 정당의 이익이 충돌할 수도 있다. 이를 뛰어넘을 정치력을 가진 이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특정 정파에 속한 적이 없으면서 행정 장악 능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갖춘 인물을 물색하는 방안은 어떤가. 분명한 건 상극의 시대, 협치 총리라는 완충지대가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점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범야권 200석 안팎, 국민의힘 100석 안팎’으로 예측했던 방송 3사 총선 출구조사는 결과적으로 살짝 빗나가긴 했지만 총선 민심에 상당히 근접했었다고 본다. “이번엔 윤석열 대통령을 혼내야겠다”며 투표를 포기하려고까지 했던 보수층의 다급한 결집이 없었다면 ‘국민의힘 100석 이하’가 현실화될 수 있었을 정도로 윤(尹) 심판론이 총선을 지배했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적지 않은 여권 지지층이 실망감, 우울감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득표율 격차는 5.4%포인트(157만여 표)에 불과한데, 민주당은 161석이나 얻고 국민의힘은 90석밖에 못 얻은 것은 억울하다는 식의 일부 극우 인사들 논리는 객관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주장이다. 지난 대선 0.73%포인트, 24만 여표 차 승리로 국가 권력을 장악한 게 국민의힘이다. 이번 총선에 대한 숱한 진단이 나와 있고 해법도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 참모들과 내각 인적 쇄신, 대통령 탈당과 중립내각 얘기도 나온다. 그럴 때마다 등장하는 키워드는 소통과 협치다. 다 좋은 말들이고, 또 깊이 검토돼야 할 의제들이지만 공허함을 지울 수 없는 건 격화소양 느낌이 들어서다. 문제의 본질은 제쳐두고 아무리 인적 쇄신을 말해봐야 변화의 진심이 전달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윤 대통령이 “겸허한 수용” “국정 쇄신”의 뜻을 밝혔지만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란 반응이 적지 않다. 이런 냉소적 기류는 오만과 아집의 이미지가 일반인들에게 강하게 박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감정적 판단과는 별개로 좀 더 근원적인 우려는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느냐의 문제다. 다원적 사회, 특히 국정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만천하에 공개되는 민주공화정의 리더는 과거 로마 시대의 집정관과는 역할이 질적으로 다르다. 권력자의 오만은 옳고 그름에 대한 독점 의식에서 비롯된다. 대통령이 “여론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내가 손해 보더라도 할 일은 한다”고 구체적 소신을 밝히는 것은 정책 결정의 경직성을 초래할 수 있다. ‘의대 증원 2000명’을 못 박는 발언을 대통령이 직접 내놓으면 참모건 장관이건 이를 뒷받침하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의대 증원은 정책 이슈지만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이나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각종 의혹에 대해 대통령이 방어적으로 나온 것도 군과 검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큰 원인이 됐다. 자기 잘못이나 실책을 인정하는 순간 법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검사 출신으로서의 ‘직업적 두려움’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연루된 문제에 대한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어서다. 윤 대통령이 이번 주 총선 패배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고 한다. 인적 쇄신도 중요하고 경제 민생 안정도 중요하고, 협치의 자세도 중요하지만 분명한 건 윤 대통령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3개의 족쇄를 스스로 풀어내는 용기를 보이지 않고는 국민 마음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우선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족쇄다.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 국방장관의 결재 번복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장 잘 아는 당사자는 대통령 자신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이 그날의 진실을 선제적으로 솔직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실제 대통령의 전화 질책이 있었는지 정확한 사정은 알지 못한다. 다만 해병대 사령관이 “말하지 못하는 고뇌만이 가득하다”는 지휘 서신을 장병들에게 보내는 현실 그 자체가 해병대 명예와 위상과 관련된 문제임은 분명하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문제, 디올백 논란도 방어벽만 칠 게 아니라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에 나설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상대 대선후보 부인의 밥값 10만 원짜리 수사를 23개월 끌다가 공소시효 만료 하루 남겨 두고 기소한 것과 비교해 형평성 논란이 이는 건 당연하다. 나아가 의대 증원 2000명 족쇄도 풀고 전문가 위원회에 합리적 방안을 찾으라고 해야 한다. 야권의 압승은 또 다른 오만의 씨앗을 품고 있다. 심판은 돌고 돌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윤의 시간’이다. 보여주기 식 협치의 제스처가 아니라 ‘제2의 취임사’를 쓰듯 국정의 족쇄를 풀고 남은 3년 어떻게 국정을 펼칠 것인지에 대한 새출발의 다짐을 내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올 수밖에 없을 텐데, 과연 윤 대통령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자칫 더 큰 논란과 혼란을 부르는 길을 선택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조국 현상’이 반짝하다 끝날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견고할 줄은 몰랐다. 여론조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10명 중 2명은 4·10총선 비례 투표에서 조국혁신당을 찍겠다고 한다. 호남에선 민주당의 위성정당 지지율을 앞질렀다고 하고, 다른 지역에서도 20%에 근접한 지지 의향을 보이는 곳이 많다. 실제 투표로 이어질지는 결과를 봐야겠지만 심상치 않은 여론 흐름이다.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판결이 바뀔 가능성도 거의 없는 범죄자를 왜 지지하는지 알 수 없다며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고, 법정 구속을 하지 않은 판사의 비겁함을 탓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 멸문지화 운운하며 연민의식을 가진 이들도 있고, 어느 정도 죗값을 치른 만큼 방탄 프레임에 갇힌 이재명보다 더 선명한 정권 심판에 나설 수 있다는 야권 지지층도 있다. 어느 쪽이든 조국 현상의 토양은 윤석열 정권이 만들어줬다는 진단엔 별 이의가 없을 듯하다. 흥행적 요소도 있다. 학창 시절 읽었던 무협지나 요즘 유행하는 웹툰 등에서 볼 수 있는 복수와 반전의 권력 게임 요소가 충분하다. 잘생긴 외모와 언변으로 한때 문재인 정권의 황태자, 진보의 우상으로 떠올랐지만 자녀 입시 비리, 위선과 내로남불로 추락했다가 이젠 자신을 파멸시킨 시퍼런 권력에 맞서 싸우겠다고 하니 정당성은 차치하고 그 혈투 자체가 흥미진진한 것이다. 이재명에 실망한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등 ‘비조지민’의 스펙트럼은 다양하겠지만 그걸 정치공학적으로 세세히 분석하는 건 이 칼럼의 주제가 아니다. 그보단 단지 흥밋거리로만 볼 수 없는 어떤 불안감의 엄습을 말하고자 함이다. 이는 어느 개인이 ‘비법률적 명예회복’을 이뤄낼지 여부, 그를 앞세운 일부 인사들이 비례 배지를 몇 개 달지 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공공연히 합법적으로 선출된 최고 권력을 중단시키겠다는 세력, 그들이 원내에 진입하고 탄핵을 외치는 상황, 그에 따른 국정 시스템의 비정상적 작동… . 한마디로 더 큰 국가 혼돈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것 아닌지 하는 우려다. 조국도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3년은 너무 길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으로 만들겠다” 등 윤석열 정권의 조기 종식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법률적으로 가능하다면 탄핵이 궁극의 목표라는 전투의지다. 개인적으론 자기 인생을 되살리려는 복수극이지만, 본질적으론 선거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선출 권력을 제거하려는 시도다. 진정 소수 강경파인 볼셰비키가 온건파인 멘셰비키를 누르고 권력을 쟁취한 것처럼 가장 선명한 노선의 ‘탄핵 전위대’로 나서려는 건가. 조국 지지자들에게 곧 감방 갈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조국이 금배지를 단 것 자체로 개인적 명예회복에 감사하며 조용히 무대에서 사라지려 할까. 이재명을 위협할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최종 판결을 앞두고 대법원을 압박하는 이른바 ‘조국 수호’ 집회가 연일 서초동 일대를 장악하는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소득이 월 10만 원 줄면 먹을 것부터 줄여야 하는 경계선에 있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동네 슈퍼에 가면 달걀 30알 한 판을 평소보다 1000원 싼 4900원에 사려고 문 열기 전부터 길게 줄 선 서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고물가에 지친 민심을 어루만지는 모습보다는 권력의 오만과 불통이 더 부각됐다는 게 총선을 앞둔 여권 위기의 본질이다. 고발된 피의자를 호주대사로 임명하는 건 잘못이고 징역형을 받거나 재판 중인 피고인은 국회의원이 돼도 괜찮은 것이냐는 항변은 타당하다. 그럼에도 왜 자신들과 그 가족에 대해선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않느냐, 왜 국가 권력을 멋대로 쓰느냐는 주장이 더 먹히는 형국이다. 조국은 어쩌면 그런 분노를 자양분 삼아 제2의 촛불혁명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법부 영역과 입법부 영역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법률적 유죄를 정치적 면죄부로 덮으려는 시도 자체가 국가 질서를 뒤흔드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사법 체계가 정치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선출 권력의 정당성도 훼손되기 때문이다. 정권의 오만한 권력 행사가 조국의 비윤리적 행태를 희석시켰고 그 틈을 타 조국은 교만의 정치에 나섰다. 오만과 교만의 대결, 권력 쟁투 속에 사법부 권위도, 입법부의 견제 기능도, 행정부의 집행 기능도 제 길을 잃을 수 있다. 누구의 책임인가. 그 조국은 이렇게 살아날지 모르지만 내 ‘조국’은 어찌 될까. 이 모든 게 헛된 걱정이길 바랄 뿐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은 신성모 주일대사 임명과 판박이 같다.” 얼마 전 한 원로 법조인의 문자를 받고 이승만 대통령이 그리 총애했다는 신성모 전 국방장관의 주일대사 임명 과정을 찾아봤다. 영국 상선 선장 출신의 민간인 국방장관으로, 이 대통령이 ‘캡틴 신’이라 불렀다는 그의 문제적 삶은 제쳐두자. 6·25 발발 전 “명령만 내리면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 등의 호언장담을 늘어놨다는 그는 전쟁 중이던 1951년 5월 거창 양민학살사건, 국민방위군 간부들의 부정 착복 사건 등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런 그를 이 대통령은 얼마 되지도 않아 주일 대표부 대사로 내보내겠다며 국무회의에 안건을 올렸다. 신성모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던 터. 안건은 부결됐다. 이 대통령은 “임명은 내가 하는 것”이라며 강행했고, 신성모는 그해 7월 일본 대표부 대사로 부임했다. 신성모 주일대사 임명과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을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책임의 크기, 정치 상황 등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생각해볼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신성모는 군비 착복 등의 중대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휘하 간부들은 군법회의에 회부된 상황이었다. 이 대통령이 부결을 가결로 뒤집는 무리수까지 둔 이유를 놓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자의식이 강한’ 완고한 리더십의 대표적 사례라는 점엔 이의를 달기 힘들 것이다. 35년간 군복을 입고 문재인 정부에서 중장까지 진급한 이 전 장관은 미국 테네시주립대에서 한미동맹을 주제로 외교안보학 박사를 받은 정책통이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인물이란 게 군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한미 동맹 강화,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부활 등 장관 재임 시절 성과도 적지 않다.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의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발되기 전까지는 지금 같은 처지를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의 호주행이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총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민감한 시점에 정치적 이슈의 한복판에 섰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본질은 왜 야권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민감한 사건의 핵심 피의자를 서둘러 해외로 내보내려 한 건지, 일선 부처의 1급 실장 인사를 놓고도 한두 달씩 검증을 하는 판에 출금 여부조차 알아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는 건지, 혹시라도 기소되면 외교적 망신의 뒷감당은 어찌하려 했는지 하는 점이다. 국방차관, 국가안보실 2차장 등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지휘 선상에 있던 이들이 단수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하는 것과 맞물려 “입막음용” 등 온갖 억측이 나돌게 된 배경이다. ‘런종섭’ ‘도주대사’ 등은 망외의 호재를 만난 야권의 자극적 공세, 프레임 씌우기 성격이 짙다. 공수처의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잠적했거나 도피할 의도를 갖고 출국했다면 모르겠지만 명예를 중시하는 장군 출신인 그가 그런 짓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이 전 장관의 호주행은 개운치 않다. 누군가 전임 대사가 작년 말 정년이라는 보고를 했을 것이고, 그 자리에 이 전 장관을 보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걸로 짐작할 뿐이다. 굳이 왜 그랬을까. 공수처의 핵심 피의자라는 ‘리스크’는 간과한 건지 무시했는지도 알 수 없다. 대사 임명은 국무회의 심의 의결 사항인데 아무런 논의 절차 없이 무사통과된 건지도 궁금하다. 특정 정파에 속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요소들이 하나둘이 아닌 것이다. 결국 “나는 옳다”는 신념에 찬 ‘1인’ 중심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근본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73년 전엔 각료들이 반대의 결기라도 보였는데, 지금은 참모들이나 장관들이 그저 정해진 결정의 집행자나 들러리 역할밖엔 못 하는 것 아닌지…. 그 점에서 “공수처가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고 있다” “수사 정보를 유출하고 있다” “호주와의 국방 협력 적임자다” 등의 반박과 해명은 왜 자신들에겐 그리 관대한 잣대를 적용하느냐의 본질적 의문에 대한 답변으론 미흡하다. 지금은 논쟁의 시기가 아니다. 실질적 합리성은 물론 절차적 정당성까지 복잡하게 얽힌 사안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공정과 상식 운운하지 않더라도 내로남불 공세의 덫에서 속히 빠져나올 방도를 찾는 게 급선무다. “공수처가 부르면 언제든 들어와 조사를 받을 것”이란 대응으론 이미 번진 불길을 잡기 어렵다. 속히 귀국해 적극적으로 수사를 받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이는 게 불필요한 의혹을 불식시키는 길이다. 선거 유불리 문제를 넘어 공적(公的) 권위의 문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1월 초 흉기 습격을 당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복귀 일성은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래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고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였다. 검찰과 언론을 살인미수 혐의자와 같은 선상으로 취급할 수 있느냐는 비판도 나왔지만, 이 대표 의식 저변에 깔린 “죽지 않는다”는 강한 생존 의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존명(存命)이란 말이 있다. 살아서 목숨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여러 소설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숱한 개인들의 존명 스토리가 등장한다. 사선(死線)을 넘고 고난을 딛고 살아남아 가족, 또 사회를 일으켜 세운 이들의 삶은 감동적이다. 존명에는 자기희생도 따른다. 그러나 이웃이나 조직, 사회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의 존명은 대의나 명분이 결여된 생존 처세술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정치인들과는 많이 달라 보이는 이 대표의 정치 행보나 스타일을 하나의 단어로 꿸 수 있다면 그런 의미의 ‘존명’, 즉 끈질긴 생명력이 아닐까 한다. 여기엔 언제든 내쳐질 수도 있다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만의 설움과 두려움이 깔려 있다. 대장동 의혹 등에 대해 이 대표가 “검찰 주장대로라면 징역 50년을 받을 것”이라고 했던 게 단적인 예다. 수십 년 감방 살 일을 왜 했겠느냐는 항변이었겠지만, “검찰 주장이 법원에서 먹히면…” 하는 불안감도 잠복해 있다고 본다. 그러니 어떻게든 정치적 방어벽을 쌓아야 하는데, 성곽 안에 반란 세력이 도사리고 있으니 우환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을 보며 더 뼈저리게 절감했을 듯하다. 대선 패배 직후 당 일각에서 이재명 축출 움직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당 대표 도전으로 정면 돌파했지만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한 건 아니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비명 반명 쳐내기는 이 대표로선 ‘합리적’ 선택이다. 면전에서 “피칠갑” 비난을 퍼부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공천 탈락 중진들의 반발과 탈당에도 “입당도 탈당도 자유”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한 태도다. 사활적 이익(利)이 걸려 있는데, 아무리 포용과 통합 등 명분(理)을 외쳐본들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친문 등 비명 진영은 속절없이 당하고 있지만 억울할 것도 없다. 자업자득이다. 대부분 수십 년간 86 운동권 엘리트로서 기득권을 누려왔다. 중도 진보의 울타리를 굳건히 세우고 전문가 그룹을 당의 중심 세력으로 키우기는커녕 각자 계파에 안주하고 친노 친문 등으로 말을 갈아타며 국회의원 배지 달기에 급급해 왔던 것 아닌가. 반면 이 대표는 더 절박하고 집요했다. 2월 초 문재인 전 대통령을 찾아가 포옹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명문 정당’ 운운한 것은 친문 진영의 집단행동과 원심력을 적시에 차단시킨, 돌이켜보면 탁월한 기만전술이었다. 그 결과는 지금껏 본 대로다. 용광로 공천을 기대했던 임종석을 비롯한 친문 핵심들의 처지만 서글프게 됐다. 이 대표는 내심 1996년 DJ의 모델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당시 야당인 통합민주당 내에서 DJ의 정계 복귀, 대권 4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DJ는 야권 분열 비난에도 아예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79석밖에 얻지 못했지만 확실한 자기 당을 만들고 이듬해 DJP 연대로 대권까지 거머쥔다. 이 대표는 DJ가 아니고 그때와 지금은 정치 상황도 다르지만, 1당이든 2당이든 뚜렷한 적수 없이 사실상 대선 후보 자리가 보장된 정당을 갖는다는 것은 이 대표로선 절체절명의 과제일 수 있다. 문제는 당장 이재명의 민주당에 총선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공천 내전은 곧 일단락될 것이고 본선(本選)의 시간이 오면 정권심판론이 다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서울을 중심으로 심상찮은 지지율 하락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야당 지지층도 느끼고 있다. 이 대표는 의미 있는 총선 성과를 내고, 방탄의 성곽을 더 튼튼히 하고, 대권까지 갈 수 있을까. 과반이나 1당은커녕 참패 성적표를 받아들면 어찌 될까. 차기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2년 전과 같은 득표율을 올릴 수 있을까. 손가락혁명군에 이은 개딸, ‘종북’ 통진당 후신의 진보당…. 이들이 이 대표를 끝까지 호위할 방탄 세력일 수는 있겠다. 문제는 극성 팬덤의 정치 놀이터, 우리 사회 맨 왼쪽 세력의 숙주 노릇을 하려는 민주당에 대한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이다. 이재명의 존명의 길이 민주당의 존망(存亡)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것 또한 이번 총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의 KBS 대담은 “많이 아쉽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지만 여권 총선 전략에는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의 후광은 없다”며 공천 불관여를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긴가민가했는데, 현재까지 국민의힘 공천 과정을 보면 윤심(尹心) 논란이 뚜렷이 부각된 건 없다. 용산 출신들이 박대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대를 받는 분위기도 아니다. 아직 공천 초반이고, 갈 길이 멀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게 맞느냐를 놓고 속사정은 다를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2016년 옥새 파동의 한쪽 당사자였던 김무성 전 대표가 “시스템 공천 정착”을 평가하며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박(眞朴) 감별 논란 같은, 대통령 주변 세력이 분탕질을 하는 최악의 공천 파동은 피해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역설적으로 명품백 효과가 아닐까 싶다. 국정 지지율이 낮은 윤 대통령이 명품백의 늪에서 제때 효과적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당에 대한 장악력도 약해진 것이다. 일각에선 ‘사랑의 힘’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한 위원장이 총선 공천의 주도권을 확실히 틀어쥘 수 있는 상황적 요인이 됐다는 점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득실 계산이 복잡하게 됐다. 물론 명품백의 덫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다시 불거질지 모르는 휴화산으로 보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실제로 야권의 관심은 2개월 이상 두문불출하고 있는 김건희 여사가 언제 다시 모습을 드러낼지에 쏠려 있는 듯하다. 영어 표현에 ‘눈에 띄는 부재(conspicuous absence)’라는 말도 있는데 ‘보이지 않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여권으로선 명품백은 점수를 까먹을 대로 까먹은 감성적 이슈지만 공천은 총선 판도를 결정하는 실질적 이슈다. 몇몇 단수공천을 놓고 적절성 논란이 있지만 큰 틀에서의 용산발 파국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민주당 사정은 딱하다. “한동훈은 윤석열 아바타”라는 공세는 잘 먹히지 않는다. 용산의 사퇴 요구 및 반격을 거치며 한 위원장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 총선 전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또 충돌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양쪽 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선을 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여권 내홍과 김 여사 이슈만 물고 늘어진다. 누구 말대로 여권 실책만 기대하는 ‘감나무 전략’에 감흥이 있을 리 없다. 민주당 총선 전략 부재의 중심엔 이재명 대표가 있다. 이 대표는 반윤 연합 세력의 총사령관을 자임하고 있지만 “우선 내가 살아남아야…”라는 ‘생존’ 리더십 탓에 행보가 꼬이는 것이다. 민주당을 친명 주류 체제로 만들려 하지만 친문 적자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생존 대 생존의 투쟁이다. 총선 후 당권까지 염두에 둔 싸움이다 보니 ‘공천 내전’이 불가피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야당 대표이던 2016년 총선 폭망 위기에 처하자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통한 ‘차도살인’으로 위기에서 탈출했지만 이 대표는 자신이 직접 칼자루를 쥐려 하니 자기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는 형국이기도 하다. 당 밖 세력들과의 비례의석, 지역구 조정 문제까지 첩첩산중이다. 현재로선 한 위원장보다 야권 통합까지 이뤄내야 하는 이 대표가 더 힘든 처지에 봉착해 있음은 분명하다. 물론 본게임은 시작도 안 했다. 한동훈 대 이재명의 대결로 전환되면서 겉으론 윤석열 대 이재명의 대선 연장전, 혹은 정권심판론이 다소 희미해진 듯 보이지만 착시일 수 있다. 야권이 지리멸렬한 상태로 총선까지 갈지, 극적 봉합의 길을 찾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결국 한 위원장과 이 대표의 리더십 대결이다. 한 위원장은 정계 데뷔 후 50여 일 동안 여론의 주목을 끌고 지지층을 다시 결집하는 데는 성공한 걸로 보인다. 다만 정치 초보 단계의 자신감이 지나치면 본선에서 어떤 실책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좀 더 진중한 리더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 대표가 극렬 지지층에 기댈수록 민주당의 중도 확장은 난망이다. 자기희생 없이 장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총선은 50일 남짓 남았다. 역대 총선은 한 달 앞두고도 분위기가 확 바뀌곤 했다. 누가 국민 앞에 더 겸허하고 덜 오만하고, 또 유능하고 비전이 있을까. 누가 사리(私利) 대신 대의(大義)를 부여잡고 줏대 있게 밀고 나갈 것인가. 그 과정에서 둘의 정치 그릇의 크기도 적나라하게 비교될 것이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우리나라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창안자는 사실상 박정희였다. 5·16 이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앞으로의 선거 제도엔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1963년 6대 총선 때 정당정치 강화를 명분으로 무소속 출마는 아예 봉쇄되고 비례제가 처음 도입되는 계기였다. 비례 의석은 44석이었는데, 지역구 1당에 ‘2분의 1’ 이상을 보장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한국적 비례제’는 태어날 때부터 기형적이었다. 다만 5·16 세력은 제1야당도 ‘3분의 1’은 챙길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윤보선의 민정당은 지역구 26석에 그쳤는데도 비례 14석을 챙겼다. 그러자 7대 총선에선 ‘2분의 1’ ‘3분의 1’ 특례가 다 폐지됐다. 이후 1970년대 유정회 암흑기를 거쳤고, 전두환 시절 비례제가 부활했지만 지역구 1당에 통 크게 비례 ‘3분의 2’를 몰아줬다. 그러다 1985년 신민당 돌풍을 계기로 여당이 무조건 지역구 1당이 될 것이란 확신이 없어지자 ‘3분의 2’는 ‘2분의 1’로 바뀌었고, 민주화를 거치며 1당 특례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훨씬 더 복잡하고 숨은 스토리가 많지만 권위주의 정권 시절 우리 비례대표 역사는 한마디로 집권 여당에 대한 ‘보너스 의석’을 어느 규모로 할 것이냐의 게임이었다. 87년 체제 이후 비례제 배분 방식은 ‘지역구 의석수’ ‘지역구 득표율’ ‘정당 득표율’ 등 한발 한발 진화(進化)의 길을 걸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을 제외한 채 ‘준연동형 비례제’로 게임의 룰을 일방적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말이다. 준연동형은 지역구 의석이 많으면 비례 의석은 손해 보는 구조다. 그런 혁명적 방안을 제1야당과의 합의도 없이 강행했으니 선거법 협상에서 물먹은 현재의 국민의힘 측이 위성정당을 만든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문제는 민주당까지 위성정당을 따라 만드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문턱을 낮춰 다당제를 구현한다는 ‘아름다운 이상’은 온데간데없고 전대미문의 위성정당, 떴다방 정치 같은 ‘추악한 퇴행’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올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준연동형을 폐기하고 지역구 의석에 연동되지 않는 ‘권역별 병립형’을 도입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며 몇 달째 여론 눈치를 살피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다당제를 위한 선거 개혁, 비례제 강화는 평생의 꿈” 등의 말을 쏟아내며 위성정당을 금지하는 준연동형을 공약해 놓고 이를 뒤집으려니 논리가 군색한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이 대표의 병립형 회귀를 위한 전 당원 투표 움직임에 대해 준연동형을 지지하는 측은 무신불립(無信不立) 소탐대실(小貪大失)을 지적한다. 맞는 말이나 이 대표 머릿속에선 전혀 다른 차원의 셈법이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범야권 내 주도권 다툼이다. ‘준연동형파’는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승부를 펼치고, 비례는 위성정당이 됐든 자매정당이 됐든 이른바 범진보비례연합 플랫폼으로 치르자는 거다. 조국과 유시민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이 대표는 왜 병립형 쪽으로 기우는 걸까. 사법 리스크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 밖의, 통제 밖의 범진보 연합 세력은 언제든 우군이 아니라 적군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 아닐까. 어차피 욕먹을 거 대놓고 위성정당을 만드는 방안도 있지만 누구를 대리인으로 내세울지, 2020년 총선 때 당시 야당에서 있었던 ‘한선교의 반란’ 같은 사태는 없을지도 고민일 것 같다. 그러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신이 직접 공천까지 통제할 수 있는 ‘직할당’으로 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물론 제3지대 신당 견제라는 목적은 국민의힘과 이심전심일 것이란 생각도 하고 있을 듯하다. 현재로선 이 대표가 소수 정당 배려 조항 가미 등의 명분을 붙이는 방식으로 권역별 병립형을 택할 공산이 크다. 개인적으론 위성정당, 떴다방 정당 난립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권역별 병립형만 제대로 운용해도 지역 구도 해소 등 정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고 한국적 비례제는 또 한발 진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분명한 건 47석 비례 의원 선출 방식이란 공적(公的) 제도가 이 대표의 사적(私的) 이익에 좌우되는 상황 자체가 비정상이란 점이다. 바로 그때문에 이 대표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실기했다고 본다. 멋지게 지는 길도, 추하게 이기는 길도…. 비례제의 방식이나 복잡한 계산 방식까진 몰라도 이 대표의 주판알 정치에 장기간 휘둘리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국민도 똑똑히 보고 있을 테니.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조국흑서’의 공동 저자인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만큼 극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은 드물다. 세계적인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는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진 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으로 이 비극적 인물을 조명한다. 온갖 악덕, 타락, 사치, 방탕…. 그녀는 증오의 표적이었다. 물론 작가는 그녀의 경박하고 어리석은 짓에 대한 역사적 죄과도 분명히 지적했다. 사람들을 믿게 만든 ‘거짓의 탑’은 그냥 쌓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권당의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제3자 논평하듯 느닷없이 비극적 인물을 공개 소환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 무엇보다 일반인들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의 두 여성을 오버랩시켜 불필요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김 여사의 디올 백 사건이 감성의 문제라는 지적 자체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용산은 이 사건의 본질은 함정 몰카, 정치 공작이라고 한다. 최근엔 문제의 목사가 김 여사 부친과의 친분을 내세워 접근했다는 해명도 내놓았다. 총선용 공작 냄새는 풀풀 난다. 그게 아니라면 왜 몰카 영상을 찍은 뒤 1년 이상 쥐고 있다가 총선 몇 개월도 안 남긴 시점에 ‘김건희 특검법’ 처리를 앞두고 폭로했겠나. 문제는 교묘하고 음험한 총선용 공작이라 해서 “근데 그걸 왜 받았느냐”는 일반인들의 의문이 해소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과거 대통령 전용기 타고 인도 타지마할에 간 것과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타지마할 전용기에 혀를 끌끌 찬 이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디올 백 문제가 희석되진 않는다. 디올 백 사건은 엎질러진 물이다. 여야 진영에 얽매이지 않는 일반인들은 대통령 부부가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닦아낼지를 눈여겨봐 왔다. 용산은 처음엔 아무런 대응을 안 보이다 백을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대통령실 선물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새해 초 ‘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 때는 대통령비서실장이 제2부속실 설치, 특별감찰관 임명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그뿐이었다. 제2부속실 설치 등은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여전히 격화소양 느낌이 드는 이유는 정작 사건의 당사자가 한 달 이상 관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아무런 메시지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그게 함정 몰카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자괴감 때문인지, 또 다른 건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사과를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야권은 “대통령 물러나라”고 공세를 이어갈 것이므로 절대 사과를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어느 쪽이든 명품백 이슈를 만든 이른바 작전세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듯하다. 여권이 우왕좌왕하다 지나치게 방어에만 급급하며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꼴이란 얘기다. 조부, 증조부의 족보까지 파헤치고 낯 뜨거운 야담(野談)까지 끄집어내는 게 선거의 생리다.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필자에겐 부차적인 이슈다. 최고 권력자 부부의 공적 처신과 책무가 이번 사건의 본질이란 얘기다. 영부인의 사적(私的) 행동이 촉발한 사건에 공적(公的) 역량이 얼마나 헛되이 소진되느냐의 문제다. 총선을 앞두고 가다듬을 정책, 국민에게 물어봐야 할 국가적 의제가 얼마나 많은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더 크라운’ 마지막 편에는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비 사망 배후 의혹에 대해 수사관의 직접 신문을 받고 불편한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나온다. 성격은 다르지만 명품백 문제에도 그런 식의 원칙과 법의 잣대를 적용할 순 없나. 당사자가 육성으로 정직하게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합당한 처분을 받겠다고 하면 될 일 아닌가. 명품백 사건은 통치의 문제도 아니고 대통령 배우자의 사려 깊지 못한 행위, 보좌 기능 마비의 문제다. 이 단순한 문제 하나 풀지 못하고 ‘국민 걱정’을 언급한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용산이 정면충돌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어떻게 하는 게 총선에 플러스가 되고 마이너스가 되느냐는 식의 접근은 여의도 문법일 뿐 일반 국민의 관심사가 아니다. “정직이 최상의 방책”이라는 경구가 새삼 떠오른다. 나아가 국가의 최고 리더는 팩트 못지않게 좋든 싫든 ‘국민 시선’에도 응대하고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게 국민 신뢰를 얻고 국정의 힘을 확보하는 길이다. 공작에 당했다는 억울한 점이 있다 해도 자기 주변엔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모습, 국민은 그런 ‘의연한 태도’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리 어려운 건가.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흉기 피습을 접했을 때 많은 이들은 18년 전 박근혜 커터칼 테러를 떠올렸을 것이다. 당시엔 별로 부각되지 않았던 일화 한 토막이 최근 회자됐다. 박 전 대통령이 60바늘을 꿰매는 대수술 끝에 내놓은 첫마디가 흔히 기억하는 “대전은요?”가 아니라 “오버하지 마세요”였다는 것이다. 직접 들은 사람이 몇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발언들의 진위를 일일이 따질 일은 아니지만 “오버 말라”는 언급 자체는 이 대표 사건과 맞물려 흥미를 끌게 한다. 맥락은 다를 수 있지만 이 대표 사건 직후 여야 지도부가 “과잉 대응 말자”며 절제된 모습을 보이려 한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피의자의) 당적 여부가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한 민주당 원내대표 발언은 의미 있게 들렸다. 범인이 민주당 당원이라면 민주당의 자작극, 국민의힘 당원이라면 국민의힘 배후설 같은 선입견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취지의 설명도 설득력이 있었다. “내가 피습당한 것처럼 생각해 달라”는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는 여야 모두 섣불리 문제적 발언을 내놓았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듯 보인다. 그래서일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양 진영에서 각종 음모론과 배후설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야 지도층이 지지자들을 향해 강력하고 묵직한 제어의 메시지를 던지지 않고 있다. 여든 야든 짐짓 점잖은 척하며 내심 여론 지형이 유리하게 흐르길 기대하는 눈치 아닌가. 이 대표의 서울대병원 전원(轉院) 논란도 그중 하나다. 부산대병원이 국내 최고의 권역외상센터라는 사실, 119 헬기 이용 적절성, 5시간 만의 수술 등을 놓고 부산, 광주 등 전국 각지 의사회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있다. 의사들의 이런 반응에 무슨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지 않는다. 또 “환자가 위중했다면 당연히 부산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렇지 않았다면 헬기가 아닌 일반 운송 편으로 이동했어야 했다” 등의 의료계 측 논리 역시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래도 이는 의료계 차원에서 ‘짚고 넘어갈’ 문제이지 정치적 소재로 삼는 걸 지켜보는 것은 불편하다. 목 부위는 급소 중의 급소다. 백주에 자신의 목 부위를 괴한의 칼에 기습적으로 찔렸다고 상상해 보라. 생사의 문제다. 응급환자였던 만큼 부산대병원의 1차 판단에 맡겼어야 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총탄을 맞고 수술대에 올라 의사들에게 “당신들이 공화당원이길 바란다”는 조크를 건넸다는 에피소드도 떠오른다. 결과론적 얘기다. 급박했던 순간 전원 결정은 이 대표만 할 수 있었고, 담대하지 못했느니 하는 세간의 평가도 이 대표의 몫일 게다. 서울대병원 전원을 두고 ‘충청도 핫바지론’처럼 부산 민심이 출렁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에선 총선 전 1심이 나올 것으로 전망됐던 ‘검사사칭 위증교사’ 사건의 재판이 미뤄지며 이 대표에겐 호재라는 분석도 있다. 이 대표의 처신이 적절했는지, 내로남불인지 등을 떠나 현 시점에서 이번 사건이 어느 쪽에 플러스가 되고 마이너스가 될지 정치공학 차원에서 주판알을 두드리는 것은 중요치 않다. 그저 총선 시계가 잠시 멈췄을 뿐이고 곧 재개될 것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피의자의 당적도 아니고 서울대병원 전원도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저주의 언어가 판을 치고, 그 사이 자신만의 허구에 빠져 살의(殺意)까지 품게 된 어느 외로운 늑대의 문제다. 토론과 비판은 실종되고 폭력까지 써가며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갈수록 극단화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문제다. 공통체의 가치를 결집하는 논의의 품격이 허물어진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이 대표 측도 경찰도 병원도 훨씬 투명할 필요가 있다. 수사 상황, 치료 상황에 대한 비밀주의는 제2, 제3의 음모론만 부추길 뿐이다. 머지않아 퇴원할 이 대표가 무슨 메시지를 내놓을지가 궁금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테러는 민주주의 적(敵)”이라고 했다. 국가 질서 유지자로서 좀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메시지가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 대표는 피해자로서 총선 득실을 염두에 둔 메시지를 내놓을까, 자기 성찰이 담긴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내놓을까. 정치권이든 유권자든 ‘지나침’을 경계해야 할 때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