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택동]구급차 양보 의무

장택동 논설위원 입력 2021-06-10 03:00수정 2021-06-1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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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노래를 한두 곡 듣거나 그저 멍하게 흘려보낼 수도 있는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소방차·구급차 등 긴급자동차엔 인명을 구하고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을 ‘골든타임’이다. 소방관과 구급요원들은 출동시간을 당기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장 도착시간을 좌우하는 것은 교통 상황이다. 그런데 도로는 꽉 막혀 있기 일쑤다. 결국 운전자들이 얼마나 양보하느냐에 따라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미국과 캐나다에선 긴급자동차에 대한 양보를 규정한 법을 ‘move over law’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이 앉을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자리를 이동하는 것을 ‘move over’라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긴급자동차가 나타나면 양보해야 하고 정차 중인 긴급자동차를 보면 차선을 바꾸거나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구급차가 출동하자 차들이 조금씩 이동하면서 길이 쫙 열리는 장면을 뉴스나 동영상에서 종종 보게 된다. 이를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해외에선 양보 의무를 어기는 운전자를 무겁게 처벌하는 곳이 많다. 미국 오리건주는 최대 720달러(약 80만 원), 캐나다는 최대 490캐나다달러(약 45만 원)의 벌금을 물리고 러시아에서는 면허정지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긴급자동차가 접근했을 때 비켜주는 것은 도로교통법에 적시된 ‘의무’이다. 하지만 위반에 대한 범칙금은 3만∼7만 원에 불과해 실효성이 낮다. 이에 경찰은 지난해 9월 범칙금을 상향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6월 발생한 ‘구급차 막은 택시’ 사건 이후 양보 의무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이 높아졌다. 기사를 강력하게 처벌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70만 명 이상이 동의했을 정도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긴급자동차에 양보를 하지 않아 적발된 건수는 2019년 8건에서 지난해 29건으로 오히려 크게 늘었다. 올해 4월에도 택시 기사가 응급환자를 태운 구급차와 실랑이를 벌이는 바람에 5분이나 지체되는 아찔한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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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로 가는 도중에 숨지는 사람이 1년에 2만 명이 넘는다. 골든타임 내에 더 많은 환자를 이송했다면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처벌 강화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일선 소방관들은 “내 가족이 아프거나 내 집에서 불이 났다는 생각으로 양보하는 시민의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호소한다. 구급차·소방차가 출동했다는 것은 급박한 상황이 벌어져서 누군가는 발을 동동거리며 1초라도 빨리 차량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헤아릴 시민의식을 갖고 있다면 양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구급차#양보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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