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중현]39년 만의 합승 부활

박중현 논설위원 입력 2021-04-02 03:00수정 2021-04-0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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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과천.” 1990년대 중반까지 매일 밤 서울 도심의 도로에선 조수석 차창을 연 택시기사들이 줄지어 선 사람들 앞을 지나며 행선지를 외쳤다. 대강 목적지가 일치하면 손님들은 재빨리 차문을 열고 올라탔다. “방향 맞으면 같이 가시죠”란 말만 던져 놓고 합승 손님을 찾느라 바쁜 기사에게 먼저 탄 승객은 불만이 있어도 대놓고 항의하기 힘들었다.

▷늦은 밤 달리 귀가할 방법이 없어 합승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폐해도 컸다. 손님을 찾는 택시들이 수시로 아무 데나 정차하면서 주요 도로에선 심야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요금 다툼도 잦았다. 나중에 탄 승객의 목적지가 앞 승객 경로에서 벗어나 멀리 돌아간 경우 “왜 미터기 요금을 다 내라고 하냐”는 손님과 기사 간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통행금지가 풀린 1982년 택시 합승은 전면 금지됐다.

▷39년 만인 올해 상반기 중 택시 합승이 다시 시작될 전망이다. ‘모빌리티 규제 혁신’ 일환으로 정부는 택시호출 앱을 활용한 합승을 허용하기로 했다. 오후 10시∼오전 4시 심야시간에 스마트폰 앱으로 택시를 부르는 고객에게 미리 합승 동의 여부를 확인한 뒤 경로가 비슷한 동성(同性)의 승객만 함께 태우는 방식이다.

▷2019년 8월부터 정부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스타트업 ‘반반택시’가 합승 시범 서비스를 해왔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에 기반한 ‘앱 미터기’로 승객별로 요금을 따로 매겨 택시비는 30% 정도 줄어든다. 1km 안에 있는 고객들의 이동 경로가 70% 이상 일치하고, 추가되는 시간이 15분 이내일 때에만 합승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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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가능성이 합승 재개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다. 불법이지만 공공연히 이뤄지던 합승이 줄어든 결정적 계기도 범죄였다. 1997년 11월 서울 강남의 호텔 주변에서 택시기사와 짜고 합승객으로 가장해 취객, 여자 승객의 돈을 빼앗은 ‘택시 떼강도’ 일당이 잡힌 뒤 합승을 꺼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이후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셈) 등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정부가 단속과 처벌 수위를 높이자 합승은 자취를 감췄다.

▷관련 업체들은 앱을 통해 기사와 승객의 신원이 실명 확인되고, 이성(異性)은 함께 못 태우게 함으로써 범죄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정보통신기술(ICT)로 과거 합승의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뜻이지만 그사이 국민들은 안전 문제에 훨씬 민감해졌다. 연내에 코로나19가 종식될 가능성이 작은데 상반기 중 택시 합승을 허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낯선 사람과 밀폐공간에 머무는 걸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데다 자칫 합승을 통한 감염병 확산 우려까지 있다는 지적이다. 규제 완화는 좋은 일이지만 사회 상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택시#합승#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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