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이슈된 공급망, 새로운 전쟁 시작됐다[광화문에서/김현수]

김현수 산업1부 차장 입력 2021-03-04 03:00수정 2021-03-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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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 차장
“아무래도 조심해야 할 듯합니다.”

최근 국내 테크 기업 임원은 “중국 투자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등 핵심 물품에 대해 내린 행정명령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는 얘기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네 가지 핵심 물품이 미국의 ‘약점’임을 고백하고 이에 대한 공급망 검토를 지시한 것이다. 반도체가 모자라 자동차를 못 만드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반도체 같은 핵심 물자에 대해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본토에서 생산토록 하거나 동맹국으로부터 공급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언뜻 보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에 유리할 것 같지만 우리 기업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미국의 ‘반도체, 배터리’ 동맹국이 되면 미국 시장 진출에 힘을 받겠지만 동시에 중국 시장 공략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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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에 국적이 어디 있느냐며 ‘다국적기업’이란 말이 대세가 됐지만 완전한 자유무역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린 이제는 부품의 국적까지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공급망이 안보 이슈로 떠오른 것은 기업의 공급망을 통한 공격이 쉽기 때문이다. 기술이 첨단으로 갈수록 부품 수는 늘어난다. 예를 들어 요즘 자동차들은 차량용 헤드램프, 문짝 창문 등에도 이를 통제하기 위한 반도체가 들어간다. 자동차 부품 수만 개 중 하나만 없어도 생산이 중단되고, 이는 국가 경제에 위협이 되므로 공격 효과도 높다.

실제로 2019년 일본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정치적 보복으로 한국의 반도체 공급망에 타격을 입히려 했다. 한국은 나노 단위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있지만 소재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이 취약점을 노린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미국이 중국을 공격할 때에도 반도체 공급망을 이용했다. 미국은 중국이 아직 첨단 반도체 기술이 부족한 점에 착안해 중국 화웨이로 가는 반도체 길을 끊었다. 이 같은 화웨이 제재가 최근의 자동차 반도체 부족 사태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제재 직전까지 화웨이와 다른 중국 업체들이 반도체 주문량을 몇 배씩 늘리는 등 싹쓸이 쇼핑에 나서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는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TSMC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대만이 우방이긴 하지만 중국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자칫 미국의 약점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한국, 일본까지 동맹국 공급망 전선을 확대하려는 이유다.

수십 년 동안 글로벌 기업은 제품을 가장 싸게 만들 수 있는 곳을 찾아 세계 각지에 공장을 세우고, 필요한 만큼만 재고를 쌓아 효율을 높이는 ‘린(Lean) 생산방식’을 극대화했다. 그 덕분에 소비자들은 보다 싼 가격에 스마트폰, 자동차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촘촘히 쌓아올린 공급망이 양날의 칼이 되어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기술이 무기이고 안전한 공급망이 곧 안보인,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안보 이슈#공급망#전쟁#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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