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달라질 것 없는데… 韓銀-금융위 전자금융 규제 갈등[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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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충돌

박희창 경제부 기자
박희창 경제부 기자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였다. 지난달 26일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이례적으로 금융당국에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중앙은행에 대한 과도하고 불필요한 관여가 아니냐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수차례에 걸쳐 의견 접촉을 했지만 금융위원회는 현재까지 저희들의 의견을 안 받아 주고 있습니다.” 이날 이 총재는 전체 발언 시간 중 20% 가까이를 할애해 금융위가 추진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대응을 자제했던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결국 나섰다. 은 위원장은 14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한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고 받았다. 그는 “양 기관의 갈등으로 비칠까 봐 그간 우리가 설명을 안 했던 부분이고 그러다 보니 오해가 많이 있었다”며 “한은 입장에선 빅테크(대형 기술기업)가 금융결제원 안으로 들어오니까 오히려 업무 영역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다음 날 다시 별도로 입장문을 내고 “금융위는 지급결제제도의 운영과 관리가 중앙은행의 고유 업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금융당국과 중앙은행의 충돌은 빅테크 등이 가세한 금융 혁신 시대에 제도가 기술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는 지체 현상의 단면을 드러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 도화선 된 빅테크의 내부 거래


금융위가 의원입법 형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자금융거래법안에는 디지털금융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여러 수단이 담겼다. 금융위는 “국내의 디지털금융을 규율하는 전자금융거래법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도 전인 2006년 만들어진 이후 큰 변화가 없어 최근의 금융 환경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는 한은도 동의한다. 이 총재는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전자금융거래법안 전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고 명확히 했다.

실제로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가 갖고 있는 선불 충전금 규모는 2016년 1조 원에서 지난해 1조7000억 원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올 상반기(1∼6월) 간편결제 서비스의 하루 평균 이용금액은 2139억 원에 달한다. 2017년(655억 원)과 비교하면 3배 이상으로 커졌다. 반면 전자금융거래법은 그동안 전산 사고 등으로 인해 금융 보안 관련 세부 규정만 10여 차례 개정하는 데 그쳤다.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에도 두 기관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지점은 전자지급거래 ‘외부 청산’이다. 지금까지 빅테크와 핀테크(금융 기술기업) 내부에서 이뤄졌던 거래를 외부의 전문 기관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는 고객이 네이버페이에 충전해 둔 1만 원으로 네이버쇼핑에 입점해 있는 온라인쇼핑몰에서 티셔츠를 한 장 구입하면 네이버페이의 내부 회계 시스템에서만 처리하면 된다. 고객이 충전해 둔 1만 원이 고객 계정에서 차감되고, 온라인쇼핑몰 계정에 1만 원이 더해지는 것으로 거래가 끝난다.

금융위의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여기에 하나의 과정이 더해진다. 전자지급거래 청산업을 허가 받은 금융결제원이 소비자와 판매자들 사이의 거래 내역을 받아 은행들끼리 서로 주고받을 금액이 맞는지를 확인해 주게 되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과 달리 현재 빅테크, 핀테크 기업의 내부 거래는 하나의 블랙박스로 기업들이 나쁜 의도를 갖고 고객의 돈을 유용해도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빅테크, 핀테크 기업들의 내부 거래를 담은 ‘장부’를 금융결제원에 따로 만들어 두겠다는 뜻이다.

한은은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데 회의적이다. 같은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 두 사람의 거래와 동일한 상황이기 때문에 빅테크, 핀테크 기업의 내부 거래까지 금융결제원 시스템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결제원이 수행하는 결제 시스템의 핵심은 안정성”이라며 “금융기관끼리 청산을 수반하지 않는 내부 거래까지 금융결제원 결제 시스템에 포함시키면 안정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법에 명시돼 있지 않을 뿐이지 현재의 소액 결제 시스템에 대한 규정만으로 충분한 감시가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 소비자 “체감되는 변화는 없다”


금융 소비자 입장에선 어떤 점이 달라질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소비자 관점에서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고 말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용자 입장에서 새롭게 체감되는 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처럼 손쉽게 간편 송금·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자지급거래 외부 청산은 어차피 고객이 이용하는 핀테크·빅테크 기업과 은행들, 금융결제원 사이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미 2018년 도입한 외부 청산 기관 ‘왕롄’은 소비자와 판매자와는 아무런 접점을 가지지 않는다. 소비자와 판매자가 계좌를 갖고 있는 은행들 사이에서 거래 사실과 돈이 제대로 빠져나가고 들어왔는지를 확인해 알리페이에 이를 전달할 뿐이다.

다만 고객이 갖고 있는 돈의 안전함은 제도 도입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금융결제원이 왕롄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면 이상 거래를 사전에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내역이 남아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나더라도 고객에 대한 배상 책임 등을 더욱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 정무위원장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용자의 돈을 보호하는 방법으로선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개정안의 취지 가운데 하나인 이용자 보호 강화를 반대하진 않지만 너무 과도한 규제라는 입장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핀테크, 빅테크 기업의 내부 거래는 금융기관 간 청산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에 지급결제 시스템에서 처리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주요국 중에서도 이들 업체의 내부 거래까지 지급결제 시스템을 통해 처리하도록 하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 기관의 충돌이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데는 금융결제원에 대한 관리, 감독 권한이 얽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결원은 1986년 한은과 시중은행 10곳이 출자해 만든 지급결제 전문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한은 총재가 사원총회 의장을 맡고 있다.

한은은 전자지급거래 외부 청산을 ‘트로이의 목마’로 받아들이고 있다. 금융위가 자신들의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 외부 청산 기능을 금융결제원에 넣어 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이 도입되면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에 대한 감독권을 갖는다. 법안은 외부 청산 기관으로 허가를 받은 금융결제원의 업무 등에 대해 ‘보고, 자료 제출, 검사의 방법으로 감독할 수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한은의 반발이 이어지자 윤 의원은 개정안에 부칙을 넣어 “한은이 결제불이행 위험을 감축하는 장치를 마련한 업무에 대해선 금융위의 감독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부칙으로 일부 감독을 면제해 주었다고 하지만 금융위는 여전히 금융결제원에 대한 업무 허가 취소, 시정명령, 기관 및 임직원 징계 등 강력한 감독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위 내부에선 “한은이 취지에 동의한다고 하면서도 대안 제시는 하지 않고 과잉 규제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 “21세기의 밥그릇 싸움” 비판도


여기에다 금융결제원 수장 자리를 내준 점도 한은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한은 출신들이 맡았던 금융결제원장 자리에 금융위 출신인 김학수 당시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이 임명됐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한은 입장에선 더 밀리면 금융결제원 관할권이 아예 금융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외부 청산이 법제화되는 상황은 반드시 막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갈등이 규모와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디지털금융을 둘러싸고 정부와 중앙은행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업계에선 금융결제원을 바라보는 두 기관의 시각이 여전히 디지털금융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금융업계 고위 관계자는 “금융결제원 이슈와 디지털금융 관련 규제 개선은 별개의 사안인데 이 두 가지 이슈가 혼재돼서 두 기관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며 “과거와 상황이 달라졌는데 아직도 금융결제원을 한 조직의 수족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전자금융거래의 원활한 운영과 소비자 보호를 반드시 하나의 법에 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정경영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자금융거래법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마련한 법은 아니고 전자금융거래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법률”이라며 “소비자 보호를 위한 측면만 강조하다 보면 법이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전자금융거래를 규율하는 법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이 따로 존재한다. 그는 전자금융거래법 제정 당시 법안의 기초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당국과 중앙은행의 충돌을 바라보는 금융소비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직장인 황모 씨(53)는 “누가 감독을 하든지 내 돈이 안전하게 보관되고, 언제든지 간편하게 찾아 쓸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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