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동 모자의 비극[횡설수설/이진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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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의 한 반지하에서 세를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어머니와 큰딸은 병으로 일을 할 수 없었고, 작은딸은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신용불량 상태였다. 생활비와 병원비를 카드 빚으로 충당했기 때문이다. 모녀가 남긴 편지 봉투에는 “주인아주머니께…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는데 안에는 7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 선택을 하면서도 집주인에게 폐를 끼치는 걸 미안해한 ‘선함’에 가슴 저미는 듯한 아픔을 느낀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많이 나섰지만 여전히 많은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 자발적으로 복지 사각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자식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장례까지 떠넘기는 게 미안해 나 홀로 죽음을 선택하거나, 자식의 가난을 증명해야 복지 혜택을 받는다는 걸 알고 스스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포기한 노인들도 있다. 한 노부부는 “재산 한 푼 물려준 것도 없고, 벌이도 적은 애에게 재산·소득 증명서를 떼 달라고 하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느냐”고 신청 포기 이유를 말하기도 했다. 둘 중 하나만 남으면 오히려 자식들에게 짐이 될 거라며 어버이날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60대 부부도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60대 여성이 숨진 지 약 반년 만에 발견됐다. 발달장애가 있는 30대 아들은 숨진 어머니 곁을 지키다 전기·가스 등이 끊기자 집을 나왔다고 한다. 노숙을 하던 아들은 몇 달 만에 자신을 돌봐준 사회복지사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알렸다. 숨진 여성은 얇은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있었는데 아들은 “파리가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고 한다.

▷숨진 여성은 무려 100개월 치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했고, 전기·가스 요금도 올봄부터 밀렸다고 한다. 건강보험공단은 이런 내용을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올렸지만 해당 구청은 알지 못했다. 보건복지부가 입력된 정보를 토대로 지자체에 취약가구를 통보하는데,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으면 제외하기 때문이다. 복지 시스템이 되레 사각을 만든 셈이다.

▷양극화는 심해지고 1인 가구, 고령화도 느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더 커졌다.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지만 혹시나 어느 집 가스, 수도를 끊을 때 누군가 한 번만이라도 ‘그런데 밥은 어떻게 먹고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어땠을까. 끊더라도 직접 만나 알려줬다면 거창한 이름을 가진 시스템도 필요 없었을 텐데…. 안 그래도 힘든 시기에 답답하고 안타까워 든 생각이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방배동#모자#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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