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층간흡연[횡설수설/이태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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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홍콩에서는 화장실 환풍기로 들어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가 환기구를 통해 33층 규모 아파트 전체로 퍼져 321명이 집단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 사례가 있었다. 화장실 물을 내리는 과정에서 환자의 대변에 묻어 있던 바이러스가 에어로졸 형태로 환풍기를 거쳐 환기구를 통해 전파된 것으로 파악된 것이다. 28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8월 서울 구로구 아파트 집단 감염에서도 특정 호수 라인에서 많은 감염이 일어나 환기구를 통한 바이러스 전파가 주요 원인으로 거론됐다.

▷아파트나 빌딩의 환기구는 건물 전체로 담배연기 등 온갖 유해물질을 확산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실험에 따르면 화장실에서 환풍기를 켜고 담배를 피우자 연기가 위층과 아래층 집으로 5분 안에 퍼졌다. 하지만 위층과 아래층 모두 환풍기를 가동한 경우에는 연기가 퍼지지 않았는데, 굴뚝효과로 인해 연기가 환기구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가 배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4시간 환풍기를 가동시키는 가구는 많지 않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실내 흡연으로 인한 갈등이 급증하고 있다. “아래층 화장실에서 올라오는 담배연기 때문에 숨쉬기가 어렵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 토할 것 같다”는 등의 항의 메모가 엘리베이터에 붙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실내 흡연 증가는 최근 날씨가 추워진 데다 비말이 섞인 담배연기를 통해서도 코로나19가 전파될 수 있다는 우려로 흡연자들이 여럿이 함께 담배를 피우는 외부 흡연 공간 이용을 꺼리기 때문이다.

▷‘에어덕트’라고 불리는 아파트 환기구는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하나의 통로로 돼 있고 여기에 각 층 화장실 환풍기가 연결돼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공기 압력이 낮아지는 원리를 이용해 아래층 공기가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 옥상에서 바람의 힘으로 돌아가는 ‘무동력 배기팬’을 통해 배출된다. 흐린 날처럼 저기압인 날씨에는 공기 순환이 잘되지 않아 담배연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위아래로 역류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은 아파트는 환기구 내 연기의 실내 유입을 차단하는 ‘댐퍼’라는 역류방지기가 설치돼 있지만 노후화 등으로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 실내 흡연은 대형 화재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내 집에서 담배 한 대 피우는 사생활로 치부하기 힘들다. 공동주택 흡연을 금지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자는 의견이 국회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강제적인 법규범 이전에 이웃을 배려하는 최소한의 시민의식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
#코로나 시대#층간흡연#에어덕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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