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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민주화운동 보상? 나 좋아 한 건데… 줘도 안 받습니다”[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입력 2020-11-11 03:00업데이트 2021-01-2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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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 전 전태일재단 이사장
고문의 현장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진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장기표 전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당시 민주화운동을 설명하고 있다. 그도 이곳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민주화는 국민 모두의 업적이지 운동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는 지금 사는 25평 아파트도 과하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진구 논설위원
《국가에 헌신한 분들에게 뭘 해준들 아까울까마는 그걸 스스로 달라 하면 어색하지 않을까. 최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셀프·중복 수혜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미 2000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 제정으로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았는데, 추가로 취업 교육 대출 등의 혜택도 주자는 게 골자이기 때문이다. 발의자 중에는 어처구니없게도 사기, 횡령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윤미향 의원도 끼어 있다. 장기표 전 전태일재단 이사장(75)은 “민주화운동의 변방에 있던 사람들이 콤플렉스 때문에 자꾸 자신들을 포장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1972년 9월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한 장기표 이신범 조영래(왼쪽부터).
―현 집권세력이 가장 내세우는게 민주화운동인데 콤플렉스라니요.

“제대로 투쟁한 사람들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지요. 하지만 변방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굉장한 민주화운동가로 보이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닌가요. 그래서 상대는 과도하게 독재세력으로 몰고, 자신은 투사로 포장하는 거지요. 사실 징역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문 받고 두들겨 맞는 게 힘들지. 포대 자루에 씌워져 맞아본 적 있습니까?” (그냥 맞는 것과 다릅니까?) “보고 때리면 고문자들도 사람이라 엉덩이나 가슴 같은 데를 때리게 됩니다. 그런데 포대 안에 집어넣으면 어디가 어딘지 모르잖아요. 이빨을 부러뜨렸는지, 눈이 터졌는지… 더 잔혹해지는 거죠.”

―“오래전부터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에 대한 국민의 평판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만….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대접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지 않습니까. 소위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나니 부정부패에 연루되는 등 자신들이 비판했던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였고, 또 보상도 많이 받았기 때문이지요. 돈만 보상이 아닙니다. 민주화운동 경력 때문에 국회의원 장관 심지어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습니까. 국민 입장에서는 ‘예전에 고생한 거 인정하지만 이제는 다 보상받은 거 아니냐, 빚진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좋게 말하면 상쇄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민주화운동 경력을 팔아먹은 거죠.”

※그는 올 4월 21대 총선에서 재산이 4억1964만9000원이라고 신고했다. 25평 아파트에 살고, 이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역모기지)에 가입해 월 95만 원을 받고 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보상을 거절하면서 “민주화운동을 한 덕에 국회의원 3번에 도지사까지 했는데 뭘 더 보상을 타먹느냐”고 했더군요.

“그 사람 말이 맞습니다. 김 전 지사도 민주화운동 보상 신청을 안 했지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화운동 한 덕분에 얼마나 많은 득을 봤습니까.” (선생님은 별로 드신 게 없는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내가 그 경력이 아니라면 이 사무실(신문명정책연구원)을 어떻게 유지하겠습니까. 말난 김에…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를 바라지 않은 대한민국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독재에 저항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도 그때 대학생이 아니고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졌다면 아무리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잘못해도 데모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는 대학이라는 해방공간 안에 있었고, 또 함께할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할 수 있었던 거죠. 우리는 정치의식이 높았고, 안 한 사람들은 낮아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만이 국가 발전에 기여한 게 아니지요. 모든 분야에서, 모든 국민이 함께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보상을 스스로 요구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운동권 출신들이 제 식구만 챙기면 안 된다고 지적하셨습니다만….

“김대중 정부 시절 서울대 교수 출신인 교육부 장관이 80년대 해직교수 60여 명을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로 선정해 80억 원을 나눠줬습니다. 이 사람들 중 광주와 관련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미 대부분 김영삼 정부 때 복직돼 해직 기간에 못 받은 월급도 전부 돌려받았지요. 그러고 나서도 민주화운동 출신이라고 국회의원, 장관, 대학 총장, 공공기관 이사장 등을 한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정말 나쁜 사람들 아닙니까?” (2001년에 그 문제를 직접 지적했는데 큰 반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어서… 문제가 있어도 말을 잘 못 합니다.”

―민주화운동 보상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석을 달리해 무죄 판결을 받고 싶지 않았다”고 하셨는데요.

“지금 재심 법정을 열어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은 무죄라고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요. 그런 건 역사가 평가하는 겁니다. 그리고 군사독재에 부역한 판검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민주화 후에는 민주화세력에 붙더군요. 민주화운동을 유죄라고 했던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니 이제는 민주화운동을 굉장히 위하는 것처럼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들에게 재판을 받고 싶겠습니까.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밝혀야 할 사건들이 있습니다. 억지로 간첩으로 몰렸다거나 하지도 않은 짓을 했다는 것 등이죠. 나는 당당하게 민주화운동을 했고 불의한 집단에 의해 유죄를 받았으니 그게 내 명예인데, 그걸 무죄라고 하면 내 명예는 어디로 간 겁니까.”

※그는 김영삼 김대중 정부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 때도 지역구 공천과 장관직 제의를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당시 한나라당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이 비례대표 최상위 순번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선생님은 민주화를 위해 한평생을 바쳤는데 지금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된 겁니까.

“그 생각을 하면 자괴감이… 어쩌다 이렇게 완전히 거꾸로 된 세상이 됐는지…. 문재인 정권이 군사독재정권에서 파생된 정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을 팔아서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까… 내가 절대로 가만 둘 수가 없습니다.” (이 정부 하는 걸 보면 그러다 다시 감방에 가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영광이지요.”

―오랜 세월 힘들었던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내가 고등학교 교사를 했는데… 나 면회 다니느라 그만둔 뒤에는 집집마다 다니며 아이들 가르치는 가정교사를 하며 살림을 꾸렸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미안하지요. 집사람이 ‘당신은 돈을 안 벌어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돈 벌 생각 자체가 없는 게 문제’라고 하더군요. 하하하.” (실례입니다만 보상 금액이 어느 정도나….) “정확히 환산해본 적은 없지만 나보다 훨씬 적게 복역한 사람이 10억 원 정도 받았으니까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고엽제 피해 보상도 신청을 안 해서… 이래저래 가족들에게 많이 미안하지요.”

―월남전 고엽제 피해를 말하시는 건가요.

“67년 입대한 그해 여름 월남전에 차출됐지요. 입대 전에 월남전 파병 반대 데모를 했으니 좀 의아할 겁니다. 주변에서 가지 말라고 엄청나게 말렸죠. 개죽음이라고.” (안 갈 수도 있었습니까?) “그 시절에는 한 3만 원 정도 쓰면 안 갈 수 있었어요. 그렇게 빠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파병 반대 데모까지 하신 분이 왜….) “제가 좀 별난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반대했지만 일단 국가정책으로 결정됐으니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죽기야 하겠냐는 생각도 있었고. 여섯, 일곱 살 때 6·25전쟁을 겪었는데 그때 주변에서 군대 안 가려고 숨고, ‘빽’ 쓰는 걸 하도 봐서… 난 크면 저러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도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고엽제 피해 보상 신청은 왜 안 하신 겁니까.) “처음에는 고엽제인지 모르고 옻이 오른 줄 알았지요. 나중에 알았는데… 유전이 된다고 하더군요. 그때 중학생인 아이가 저처럼 가려움증이 있었는데 고엽제 때문이라고 알면 너무 힘들 것 같았습니다. 지난 총선 때 딸이 지원 유세를 했는데… 듣다보니 아비로서 해준 게 없는데 많이 미안하더군요.”

그의 둘째딸 보원 씨는 당시 유세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 아버지 장기표는 오랜 시간 감옥 도망 고문을 당하고서도 10억 원대의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신청조차 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런 보상금은 우리 같은 일반 국민들의 세금을 낭비하고, 민주화운동의 진정성을 해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제 아버지 장기표는 서울대 법대 시절, 남들은 기피하는 병역을 스스로 다 했습니다. 운동권 시절부터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주사파를 질타했습니다. 쉽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변화의 기미가 안 보이는 정당이라는 이유로 마다했고, 고액 연봉이 보장되는 공공기관 이사장 자리도 고사하셨습니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만들어지는 공공기관이 꼭 필요할 곳에 쓰여야 할 세금을 축낸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보고 있나 민주당.

장기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화운동의 대부.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을 시작으로 5번 수감돼 10년 가까이 복역했고,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 등에 연루돼 12년의 수배생활을 보냈다. ‘영원한 재야’로도 불린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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