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신파가 세계에서 뜬다면[오늘과 내일/서정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영화 ‘반도’ 결말 신파 논란… 한국적 카타르시스 가능성 엿봐

서정보 문화부장
서정보 문화부장
‘신파: 흥행을 위해 억지스러운 설정과 연출로 관객의 눈물을 자극하는 것.’

썩 만족스럽진 않지만 신파에 대한 정의는 보통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반도’가 300만 관객에 육박하면서 여름 극장가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볼만한 영화들이 다 개봉을 연기하는 바람에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꽤 준수한 숫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1000만 영화 ‘부산행’의 후속작이라는 점과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공식 초청작이라는 후광도 관객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영화 ‘반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툴툴거리는 관객도 적지 않았으리라. 좀비보다 더한 인간 군상의 악행과 화려한 차량 액션신이 펼쳐지는 데까지는 괜찮은데, 막판 15분여 동안 슬로모션을 곁들여 쏟아지는 신파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반도 신파’가 연관 검색어로 뜰 정도다.

인터넷 등에 올라온 후기를 봐도 신파에 대한 비판이 압도적으로 많다. ‘반도의 장점들은 신파라는 압도적인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다’는 강도 높은 비난도 올라왔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좀비를 유인하는 미끼가 되기를 자처해 결국 좀비에 둘러싸인 엄마…, 다음이 어떻게 되는지 스포일러를 하지 않아도 왜 신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눈물을 뽑자는 것이 신파인데 신파가 너무 심하면 눈물도 잘 나오지 않는다. 세계관 확장에 능한 연상호 감독이 신파에 발목을 잡히는 것일까.

이런 비판에 시달리던 연 감독도 입을 열었다. 요약하면 감독 본인이 신파를 좋아한다, 영화는 대중적 콘텐츠니까 보편적인 관객의 감수성을 표현하려 했다, 신파적 요소에 대한 고민은 있었지만 그런 장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등이다.

연 감독이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반도’의 신파적 요소는 이미 촬영 전부터 설정된 것이었다. 투자 및 배급사도 동의했다고 한다. 가족을 중시하는 한국과 아시아권 국가들의 흥행을 노렸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에서의 흥행 성적도 좋지만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등에서 개봉하자마자 흥행 열풍이 일어난 것을 보면 신파를 강조한 연 감독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눈이 높은 관객들은 과거의 촌스러운 유물로 보지만 신파가 분명 흥행에 한몫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영화의 특질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네이버 영화 추천에는 아예 ‘신파’ 항목이 있고, 거기에는 얼마든지 다른 장르로 분류할 수 있는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해운대’ 같은 1000만 영화들이 들어가 있다. 재난(혹은 무기력한 상황) 속에 가족애의 소중함을 비현실적으로 담아낸 것이 우리의 정서에는 와 닿는 것이다. 신파를 어떻게 잘 그려내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신파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비현실적인 합리성보다는 현실적인 비합리성을 껴안는 한국의 정서가 우선 아시아권에선 통할 가능성을 ‘반도’에서 엿볼 수 있다. 연 감독 역시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 박스오피스를 통해 제작비(190억 원)를 회수할 기틀을 반도가 마련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신파를 좀 넓게 보면 한국적 카타르시스라고 볼 수 있다. BTS, 블랙핑크 등 아이돌그룹이 독특한 스타일의 한국 팝을 K팝으로 끌어올렸듯 K신파가 한국 콘텐츠의 장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서정보 문화부장 suhchoi@donga.com
#신파#반도#카타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