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진짜 세상’으로 끌어내는 용기[오늘과 내일/신석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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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온라인 생활 길어지는 아이들
아빠들이 관심 갖고 진짜 세상 보여주어야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던 2018년 12월 초. 거실에 조립해 세운 크리스마스트리에 일찌감치 손편지가 걸렸다. “산타 할아버지! 저는 아이패드가 갖고 싶어요.” 헐,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언론사 디지털뉴스팀장이 생업이지만 아이들은 가급적 늦게 온라인 세상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 유튜브 볼 시간에 책과 신문을 읽고, 친구들과 단톡방 채팅을 하는 대신 길거리에서 공을 차고 뛰노는 게 정신과 육체의 발육에 더 좋다고 생각했다. 아이패드를 탄생시킨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그렇게 아이들을 키웠다지 않은가.

“산타 할아버지가 애플 판촉원도 아니고, 그런 고가의 물건을 달라고 하는 것은 산타 정신에 위배되는 거란다.”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내 친구는 이미 작년에 받았는데?” 성탄절 이브에 아내와 토론을 벌였다. 정중하게 타이르는 산타의 편지를 걸고 장난감 아이패드를 놓자고 했다. 아내는 아이 꿈을 꺾기 싫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제일 싼 구형 제품을 구하느라 성탄절 3일 뒤에야 트리 밑에 놓았다. “아빠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공부를 위해 꼭 필요할 때만 보렴, 산타가∼”라는 편지와 함께.

그런 충고를 따를 수 있다면 아이가 아닌 것이었다. 지난해 초 유튜브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들을 보면서 용기를 냈다. “이제 그만하자. 더 이상 산타는 없어. 아빠 돈을 써가며 내 아이를 망칠 수는 없다.” 그렇게 아들은 산타가 없는 진짜 세상으로 나왔다. 아이패드는 장롱에 감금됐고 전화만 할 수 있는 ‘공신폰’이 지급됐다. ‘온라인 세상에서 아들 구하기’는 성공하는 듯했다.

올해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5학년이 된 아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기 위해 종일 노트북에 코를 박고 지낸다. 선생님, 친구들과 학사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아이패드가 사면됐고 공신폰은 진짜 스마트폰으로 대체됐다. 스마트폰을 보는 문제로 엄마와 다투고 온라인 대화에 몰입하는 아들을 보면서 걱정이 컸다. ‘저러다 책을 읽고 상상하는 기쁨도 모르고, 사람과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진짜 삶의 지혜에서도 멀어지면 어쩌지?’

과도한 온라인 관계는 고독할 자유마저 앗아간다. 미국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부교수인 칼 뉴포트는 지난해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알림음과 무한으로 연결되어 있는 온라인 세상과 정보들에 휩싸여 정작 몰입해야 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할 수 없고, 늘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세태를 경계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인간은 홀로 고독할 때 사색하고 창조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취임 후 백악관으로 몰려드는 손님들을 피해 수도 워싱턴 북쪽의 별장에 가 홀로 밤을 지내며 국정을 구상했다는 일화도 나온다.

국가와 사회가 ‘집에서 조용히 있을 것’을 강요하는 요즘은 아빠들에게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강요된 ‘집콕’은 역병의 확산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을 진짜 세상과 멀어지게 만든다. 아빠가 모든 책임을 지고 틈날 때마다 아이와 함께 안전한 야외로 나서는 길을 택한 뒤 이른 봄부터 ‘캠핑 열풍’에 동참했다. 쉬는 날이면 아이들과 인적이 드문 산과 강, 바다에 텐트를 치고 ‘불멍’(화로대에 장작을 태우고 시간을 보내는 놀이)을 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을 청하고 있다.

진짜 세상은 간단치 않다. 막 50세가 넘은 아빠는 나이를 잊고 계곡물에 뛰어들었다 고막을 다치고, 중학교 3학년 딸은 낡은 샤워장에 들어갔다 손잡이 고장으로 갇히기도 했다. 아들은 텐트 문틈으로 들어온 모기 밥이 되고 모든 것은 아내를 화나게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는 것 같다. 그게 진짜 세상이라는 것을.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코로나19#진짜 세상#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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