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신석호 동아일보 편집국 신석호 부국장 공유하기 kyle@donga.com

안녕하세요. 신석호 부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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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신석호]‘386 정치인’들이 중국에 등을 돌릴 때중국이 ‘동북공정’으로 한국인들을 분노케 한 다음 해인 2005년.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은 1년 내내 현지의 중국인들을 인터뷰했다. 그렇게 지은 ‘중국이라는 거짓말’(2006년) 서문에 이렇게 썼다. “몇몇 중국인들은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서구 여러 국가의 정부가 중국 공산당과 결탁하는 것을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종종 물었다. 천안문 학살 사건을 당신들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망각할 수가 있는가?” 소르망은 2년 뒤 베이징 여름올림픽에 대해 예지력 있는 질문을 던졌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의 이데올로기를 인정해 주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한국을 세계에 개방하면서 민주화를 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베를린 올림픽처럼 될 것인가, 아니면 서울 올림픽처럼 될 것인가? 이것은 서구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 결과는 전자였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미국에 리먼브러더스발 경제위기가 찾아오자 중국 공산당은 미국에 맞짱을 뜨는 국제정치의 패권 추구자로서의 본색을 드러냈다. 2009년 출범한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8년 내내 ‘중국은 경쟁자이자 협력 파트너’라는 애매한 태도로 사실상 중국의 부상을 방조했다. 공산당 독재와 지도자 개인숭배, 인권과 소수민족 탄압, 국가 주도 개발이 낳은 불평등의 심화 등 각종 부작용에 눈감은 채 중국이 자비로운 패권(benign hegemon)이 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에 한국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사회주의 독재자들과 천안문 망루에 올랐던 박근혜 대통령도 있지만 이번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북한의 김정은을 불러내 종전선언이라는 정치적 이벤트를 만들려고 했던 ‘386세대’ 정치인들이 핵심이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 386 운동권 세력들이 중국에 경사된 경위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부 권위주의 정권의 민주화 세력 탄압, 이를 방관한 ‘제국주의 미국’에 비판적이었던 그들은 ‘반미(反美)’ 이념을 지지해줄 대안 외세로서 중국을 바라보게 되었다. ‘한국 진보·보수의 중국 인식 차이와 이념의 영향’을 연구한 차정미 박사는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2017년)에서 “진보층이 보수층보다 중국에 대한 인식이 우호적인 것은 ‘반공주의’ ‘한미 동맹주의’와 다른 ‘대북 포용정책’과 ‘자주외교’의 구조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외가 있으니 바로 ‘자주’라는 가치를 건드릴 때다. 차 박사는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 전후 여야 정치인 설문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자주, 주권과 연관된 이슈가 부상할 경우 중국에 대한 (진보층의) 인식도 ‘반미자주’의 연장선이 아닌 ‘자주 vs 친중’의 구도로 전환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은 이번 겨울올림픽에서도 ‘중국에 앞서면 반칙’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며 편협한 민족주의에 기반한 ‘꼬름한 패권국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아직 80년대를 사는 듯 보수진영을 맹렬히 비난하던 옛 386 정치인들도 중국 비난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자주 vs 친중’의 프레임이 다시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주의 정치학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도 미국도 패권을 추구하는 강대국이다. 미국이 자유주의 이념과 제도, 문화로 ‘자비로운 패권’을 추구하는 척이라도 한다면 중국은 여러 면에서 그 수준이 떨어진다는 현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신석호 부국장 kyle@donga.com}2022-02-09 03:00
[오늘과 내일/신석호]디지털 크리에이터의 자격요즘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크리에이터를 꿈꾼다. 모바일 온라인 환경이 심화되면서 창의력의 정도에 따라 개인과 조직의 브랜드와 영향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놀이 경험을 현대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교직한 영화 ‘오징어게임’, 한국 군대의 가혹행위를 다룬 웹툰이 드라마 ‘D.P.’로 변신해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세계적인 대박 콘텐츠가 되는 상황은 많은 젊은 창작가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창작할 것인가에 있다. 동아일보가 새해를 맞아 ‘오겜’의 황동혁 감독, ‘D.P.’의 원작 웹툰 작가 김보통 씨 등 K콘텐츠의 ‘황금손’들을 인터뷰해 추려낸 ‘창의성의 원천’은 다섯 가지다. 어린 시절 온몸으로 즐긴 놀이, 각계각층과 즐기는 수다, 분야를 망라한 잡식성 관심,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준 독서, 뼛속까지 새긴 경험.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만나 들으라는 것, 한마디로 ‘행복하게 열심히 살라’는 이야기다. 디지털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흐름에 언론사 기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변화하는 뉴스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모바일과 디지털 기기로 무장한 독자들은 전처럼 뉴스를 읽고 보고 듣는 것에서 나아가 오감으로 경험하고 싶어 한다. 매스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흡수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매체와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선택해 건건이 전달받는 개인화 방식을 선호한다. 따라서 많은 기자들이 신문이나 잡지 기사, 방송 리포트라는 고전적인 표현 방식에서 나아가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유튜브, 뉴스레터, 롱 폼의 디지털 내러티브 기사, 데이터 저널리즘 등 새로운 플랫폼과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허구를 창조하는 영화나 소설과는 달리 뉴스는 ‘팩트(fact)’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며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영화감독과 웹툰작가, 기자가 다를 바 없다. 몇 년 동안 새로운 시도에 나서는 선후배 동료들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동안 디지털 크리에이터로의 변신에 성공하는 이들에게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선 남다른 전문성이 있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온라인 공간의 소비자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대해 쌓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전문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해 보겠다는 열정, 이를 위해 기꺼이 직역이 다른 전문가들과 협업할 수 있는 태도가 두 번째다. 전처럼 진실을 추구하면서 콘텐츠 기획자, 플랫폼 개발자, 디자이너와 데이터 분석가, 영상 전문가 등 자신이 잘 모르는 직역의 능력자들과 소통해야 한다. 수평적인 협업의 지혜와 자신이 모르는 전문성에 대한 존중, 리더십과 팔로십의 기술이 필요하다. 전문성과 의지, 태도를 가진 이들이 디지털 독자들이 요구하는 매력까지 가지면 금상첨화다. 플랫폼마다 장르마다 요구되는 매력이 조금씩 다르다는 게 포인트다. 유튜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자도 있고 뉴스레터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기자도 있다. 세 가지 자격을 갖춘 크리에이터들에게 창작은 일(work)이 아니라 즐거움(pleasure)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고 과정에 몰입하며 행복감을 느낀다.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돈도 벌리는 것처럼 즐겁게 만든 콘텐츠에 독자들의 반응도 따라온다. 만든 사람이 행복해야 소비자도 만족한다는 건 영화와 웹툰이 뉴스 콘텐츠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신석호 부국장 kyle@donga.com}2022-01-19 03:00
[오늘과 내일/신석호]콘텐츠의 품격지난해 출범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가족을 떠나 고시원에 은거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좀 걱정스러웠다. 보통 인터뷰나 르포도 아니고 그들이 사는 모습과 구구절절한 사연을 여러 장의 사진과 동영상, 그래픽으로 구성한 장문의 시리즈 기사와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페이지로 만드는 작업. 기획과 취재, 제작에 몇 달이 들어갈지 모르는 수고에 독자들이 얼마나 호응해 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해 10월 5일자 동아일보에 ‘증발’ 5회 시리즈 첫 보도가 나간 뒤 우려는 기우로 변했다. 기사와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페이지는 온라인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조회수도 많았지만 더 고무적인 것은 독자들이 이모티콘과 댓글로 드러낸 ‘공감의 질’이었다. 코로나19 1년 차, 다양한 처지와 공간에서 삶의 무게를 버티고 있던 독자들은 가정불화와 사업 실패 등으로 세상을 등진 주인공들을 응원했다. 다수가 “나도 증발하고 싶다”고 했다. 뉴스 콘텐츠 속 주인공과 감정을 공유하는 ‘좋은 공감’이었던 것이다. 삶을 마감하면서 타인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장기기증자들과 가족의 사연을 다룬 히어로콘텐츠 ‘환생’ 7회 시리즈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2월 보도된 기사에는 “뉴스를 보고 댓글을 단 것도, 눈물을 흘린 것도 처음”이라는 격한 공감이 이어졌다. 치솟는 부동산 값에 내 집 마련의 꿈이 사라지고, 코로나19 방역으로 장사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가족의 건강과 무사가 행복임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저널리즘 혁신과 뉴미디어에 주는 언론상이 이어지고 있으니 언론계도 공감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좋은 신문 기사와 좋은 온라인 기사가 따로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 틀렸다. 좋은 신문 기사는 좋은 온라인 기사다. 핵심 지표는 조회수가 아니라 ‘공감의 질’이다. 히어로콘텐츠팀의 경험에 따르면 좋은 기사에는 대략 네 가지 특징이 있다. 기자 여러 명이, 이슈의 현장에 가서, 구체적인 스토리를 심층 취재해, 다양한 사진과 그래픽, 동영상과 함께 보도하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가치로는 ‘현장주의’와 ‘협업정신’으로 집약된다. 하루하루 벌어지는 이슈를 다루는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충북 제천의 한 사우나에 불이 나 무고한 이용자들이 화마에 삶을 잃었을 때, 여러 명의 기자가 직접 현장에 가서 각 층에 비상구가 막히고 먹통 소화기가 뒹구는 기막힌 상황을 고발한 기사(2017년 12월)가 좋은 사례다. 공동체가 지켜주어야 할 안전이라는 가치가 실종된 현장 기록은 지면과 온라인에서 독자들의 공분(公憤)을 이끌어 냈다. ‘좋은 공감’을 이끄는 콘텐츠에는 당연히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된다. 제천 화재 보도는 소방서에 전화를 걸어 몇 자 적은 많은 온라인 기사와는 품격이 달랐다. 히어로콘텐츠팀은 취재기자와 사진·영상기자, 멀티미디어 기획자와 개발자 디자이너 등 10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취재 아이템에 따라 3∼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최근 온라인 공간에 값싸게 빨리 ‘나쁜 공감’을 노리는 콘텐츠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기자들이 현장에 가지 않고, 협업하지 않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떠도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들로 조회수나 올려보려는 것을 ‘클릭 저널리즘’이라고 한다. 쓰는 사람과 매체의 브랜드와 영향력은 물론 독자들과 언론계, 우리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히어로콘텐츠의 오늘이 있게 한 주인공은 그런 가운데서 ‘진짜 저널리즘’을 알아보고 성원해준 독자들, 진정한 히어로들이다. 신석호 부국장 kyle@donga.com}2021-12-29 03:00
김정은은 언제쯤 대중과 진짜 소통을 할까[오늘과 내일/신석호]내년 1월 북한에서는 김정은 집권 만 10년째를 맞아 조선노동당대회가 열린다. 이번 8차 대회는 2016년 5월 7차 당 대회에 이어 5년 만으로 김정은 집권 이후 두 번째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흔적기관처럼 만들어버린 당의 기능을 활성화해 온 연장선에서 북한도 중국이나 쿠바처럼 정기적으로 당 대회를 열어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사회주의 정상국가’임을 대내외에 홍보하려는 듯하다. 중국과 쿠바, 북한 등 현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산당이 최고 권력기관이다. 당 대회는 당의 최고 지도기관이자 의사결정 기구로 직전 당 대회 이후 국가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국가운영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미국과 국제사회의 겹겹이 경제제재와 외교적 단절,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자체적인 고립 속에서 당 대회를 여는 평양의 분위기는 암울해 보인다. 5년 전 당 대회에서 김정은이 스스로 인민들에게 공언한 ‘김정은식 경제개혁’도, ‘핵 무력을 짧은 시간에 고도화한 뒤 대대적인 대외 평화공세를 통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자’는 전략도 현재로서는 수정이 불가피하다. 형식과 절차의 측면에서도 ‘김정은식 당 대회’에는 정말 중요한 게 빠져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민주적 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라고 말하는 최고지도자와 엘리트, 대중 3자 간의 격의 없는 위아래 소통의 제도와 문화다. 당 대회의 안건을 마련하는 과정에 최고지도자와 당이 엘리트와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는 형식으로 기존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면 대안을 만들고 잘해 온 것은 더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는 의사결정 프로세스인 것이다. 1991년 4차 당 대회를 앞두고 쿠바 공산당이 사용한 ‘대중 집회(Llamamiento)’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갖은 원조와 우호무역을 제공했던 소련이 자본주의로 체제 전환을 모색하면서 ‘특별한 시기’라는 초유의 경제위기를 만난 피델 카스트로 쿠바 공산당 제1서기는 그야말로 머리를 조아리고 인민들의 의견을 구했다.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해 달라’는 ‘호소문’을 돌리고 주민 토론회를 열었으며 곳곳에 익명 건의함도 설치했다. 공산당에 속내를 말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숙청된 이들을 너무도 많이 보아온 쿠바인들은 처음엔 믿지 않았다. 아바나대 박사 출신 호세 아리오사 씨 역시 그랬다. 2007년 서울과 아바나에서 만났던 그는 “당 간부들이 나서서 ‘솔직하게 건의해 달라.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득했다”고 회고했다. 결국 인민들은 마음을 열었고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희망사항을 제안했다. 카스트로는 인민의 이름으로 공산당을 쇄신하고 제한적이나마 경제 개혁과 개방 정책을 만들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카스트로의 성공은 국가정책의제 형성 과정에 관한 코브와 로스의 동원모델(mobilization model)의 실제 사례였다. 반면 최고지도자와 한 줌의 엘리트들이 의제 형성 과정을 독점하는 내부주도모형(inside initiative model)에 해당하는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위기로 가장 고통받는 대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의지도 능력도 없는 최고지도부의 저급한 수준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쉽게들 말하는 소통이야말로 지극히 정치적인 현상이다. 진정한 소통은 권력자들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자유롭고 안전하게 말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년 1월 당 대회에서 김정은은 또 ‘사랑하는 인민 대중’을 운운하며 말잔치를 벌이겠지만 사회주의 선배 카스트로의 지혜를 실천할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현명한 대중은 핵을 내려놓고 ‘진짜 정상국가’가 되는 길을 반드시 알려줄 텐데 말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12-18 03:00
열등감에 빠진 전체주의자들의 최후[오늘과 내일/신석호]권력에 대한 의지 하나로 블라디미르 레닌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말 못 할 자격지심에 시달렸다. 소련 공산당 정치국 내 자신의 경쟁자인 레온 트로츠키나 니콜라이 부하린 등에 비해 가방끈이 짧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철학이나 이론에 밝지 못했고 레닌의 혁명이론을 곡해한다는 경쟁자들의 비난에 직면했다. 누구보다 그의 깜냥을 잘 아는 레닌도 1924년 사망 전 아내에게 남긴 유언을 통해 스탈린을 제거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레닌 사후 트로츠키 등과의 권력투쟁을 막 시작한 스탈린은 1925년부터 3년 동안 마르크스 엥겔스 연구소의 부소장 얀 스텐 교수를 일주일에 두 차례 불러 개인교습을 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의 배경인 헤겔과 칸트의 철학을 관념론이라고 비판하면서 스텐 교수를 비난했다. 권력을 공고화한 1937년에는 급기야 그를 감옥에 가두고 총살해 버렸다. 숙청을 밥 먹듯 했다지만 스승을 자기 손으로 죽인 배경에는 최고 권력자가 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열등감과 자신의 무식을 알고 있다는 불쾌감이 있었을 것이다. 꼭 7년 전인 2013년 12월 12일 고모부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을 형장의 연기로 날려버린 김정은의 심리도 비슷했을 것이다.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는 2013년 12월 8일 결정서에서 장성택의 죄를 줄줄이 열거했지만 실은 2008년 나이 어린 조카에게 권력이 넘어갈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라종일 전 주일 대사는 2016년 발간한 ‘장성택의 길’에서 “(장성택의 훌륭한) 자질들은 특히 연령이나 경륜이 일천한 새로운 지도자에게 불안한 요인이 아닐 수 없었다. 집권 초기에는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이며 스승 같은 인물이 점차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고 김정은의 마음을 예리하게 짚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와 카를 구스타프 융에 이어 세계 3대 심리학자로 불리는 알프레트 아들러는 신경증의 근원은 유년 시절부터 자아 깊은 곳에 뿌리박힌 열등감이라고 갈파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유아기 때 형성된 열등감은 세상을 자기식대로 해석한 결과인 ‘사적 논리’를 만들어 내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이것을 ‘공동 감각’, 즉 상식으로 바꾸지 못한 인간들은 신경증과 같은 병리현상을 겪는다는 것이다. 일부는 과도한 권력을 추구하게 되는데 스탈린과 김정은이 딱 그런 경우다. 생전의 아들러는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권력욕도 어린 시절 열등감에 대한 분노로 설명했다. 서재진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 지배층 역시 일제강점기 김일성의 항일 신화와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허구적 사적 논리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북한이 성장 발전하는 길은 공동 감각의 세계, 즉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하고 인류 보편적인 가치관을 가지며 국제사회와 정상적으로 관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생 북한을 연구하다 은퇴 후 리더십 코치로 변신한 그는 최근 아들러의 심리학을 원용한 리더십 코칭 책 ‘아들러 리더십 코칭’을 펴냈다. 상담을 통해 사적 논리가 열등감 때문임을 깨달으면 상식을 가진 리더로 거듭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2월 하노이 외교 참사에 이어 경제제재와 코로나19 등 대내외적 악조건에 둘러싸여 비합리적인 통치행위를 하고 있다는 김정은이야말로 코칭이 필요한 것 같다. 코로나19 방역물자도,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도 거절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열등감의 소산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열등감에 근거한 사적 논리로 권력을 유지하는 독재자나 측근들, 그들의 체제는 상담의 가능성도, 개선의 여지도 없다는 게 문제다. 세계 평화를 위협했던 스탈린의 소련도,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탈리아도 이젠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12-04 03:00
바이든에 침묵하는 북한의 고민[오늘과 내일/신석호]조 바이든 제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앞으로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전망과 제언이 쏟아지고 있다. 가히 ‘백가쟁명’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처럼 바이든 당선인과의 대화와 담판을 통한 ‘톱다운(Top-Down)’ 방식을 선호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트럼프처럼 연애편지도 주고받으며 싱가포르와 하노이, 판문점 같은 곳으로 불러내 만나주기를 바란다는 가정이다. 과연 그럴까? 트럼프의 하노이 노딜(No Deal)이 김정은의 정치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 60시간이 넘게 열차를 타고 하노이로 가 트럼프를 만난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과 대북제재의 대부분을 맞바꾸는 ‘북한식 계산법’을 들이댔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최고지도자의 권위 실추와 이에 따른 내부 분란을 잠재우는 데 지금도 노심초사하는 상태다. 프로이센의 전쟁 철학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트럼프는 알고 했건 아니건 ‘수령의 권위’라는 북한 체제의 가장 민감한 ‘힘의 중심부(the Center of Gravity)’를 건드린 것이다. 후대 역사가들은 그것을 트럼프 대북정책의 최대 업적으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초유의 외교참사를 통해 김정은이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미국의 국가이익 앞에 공화당과 민주당, 대통령 개인의 스타일이 무차별하다는 점일 것이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는 공화당인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태어나 민주당인 버락 오바마 행정부 8년 내내 유지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계승되었다. 요컨대 미국은 북한에 한 줌의 핵무력이 남아있는 한 제재를 해제해 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바이든 당선인에 대해 북한이 이렇다 할 공식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는 것은 이를 놓고 깊어지는 고민의 증거로 보인다. 포인트는 바이든표 대북정책이 그가 부통령을 지낸 오바마 행정부 8년의 ‘전략적 인내’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지, 트럼프 시대와의 단절성이 클지 연속성이 클지에 있다. 우선 대북정책의 우선순위가 문제다. 오바마는 러시아와 이란, 이슬람국가(IS) 문제에 집중하면서 대북정책은 사실상 뒷전이었다. 트럼프는 임기 초반부터 대북정책에 매달렸다. 오바마는 트럼프와 달리 실무협상을 우선시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이었다. 대북정책의 목표도 달랐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한민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법으로 봤다. 트럼프는 북한 비핵화에 협상의 주제를 국한했다. 오바마는 인권문제를 강조했지만 트럼프는 아니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오바마 행정부 당시와 지금은 상황에 많은 변화가 있다.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과 미국 경제위기 이후 양국의 패권 경쟁이 시작되었지만 오바마 행정부 8년은 경쟁과 협력의 공존기였다. 트럼프 시대에 경쟁이 격화되었고 지금은 거의 적대관계에 이르렀다. 북한의 핵능력도 비약적으로 강화되었다. 핵과 미사일 능력 면에서 바이든에게 지금 북한은 부통령 시절의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모든 것을 고려한 뒤 바이든이 어떤 수를 집어 들까. 1993년 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이후의 역사는 단절적이기보다는 경로의존적이고 행위자의 의지와 우발적인 사건이 뒤엉켜 진화해왔다. 미국의 CVID 목표뿐 아니라 핵을 들고 버틸 때까지 버텨 국제사회에서 사실상의 핵국가로 인정받자는 북한의 정치적 의지도 변하기 힘들다. 북한은 바이든이 어떨 것인지에 대한 전망과 함께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 전략적 우위를 점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더 고민할 수도, 결과를 조만간 드러낼 수도 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11-20 03:00
바이든 자서전에 헛꿈 꿀 김정은에게[오늘과 내일/신석호]“제가 만약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면 암을 종식시키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2016년 10월 21일 미국 백악관 로즈가든에 선 조 바이든 부통령은 제45대 대통령 선거를 위한 민주당 후보 경선 불출마 선언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돼 나온 2017년 작 자서전 ‘약속해 주세요, 아버지’에 따르면 그의 출마 고민도, 불출마 결정도 모두 암으로 사망한 맏아들 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2015년 5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보는 아버지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길 바랐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출마를 준비하던 바이든은 10월 6일자 폴리티코가 ‘바이든이 아들을 팔아 선거에서 이기려 한다’는 보도를 내보내자 출마를 포기한다. 자신보다 보의 명예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1988년과 2008년에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중도 사퇴했던 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며 9회말 역전 홈런을 치는 형국이다. 그는 4일 오후 2시 반 기자회견을 열어 ‘끝까지 가겠다’고 선언한 뒤 바로 보의 묘소를 찾았다. ‘아들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게’라고 다짐했을 것이 분명하다. 5일 오전 위스콘신에 이어 미시간까지 거머쥐면서 바이든이 드디어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이번 대선은 단순히 바이든과 트럼프, 민주당과 공화당의 싸움 이상이었다. 바이든의 선전은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한 질서를 무너뜨리는 마구잡이식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경고라는 의미가 있다. 자유주의 이념을 세계에 전파한다는 미국의 ‘글로벌 리버럴리즘’, 승자 독식의 자본주의가 패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미국식 세계화의 부활 신호다. 트럼프 식의 쫀쫀한 패권주의(stingy hegemony) 대신 큰 나라가 작은 동맹에 양보하는 후덕한 패권주의(benign hegemony)로 회귀하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트럼프와 연애편지나 주고받으며 시간을 끌 요량이었던 김정은도 밤잠을 설치고 5일 아침 일찍 대미정책 회의를 소집했을 것이다. 외무성 당국자가 원문을 번역해 보고했던 ‘약속해 주세요, 아버지’의 한 구절을 멋대로 해석하며 기대에 부풀 수도 있다. 바이든은 “나는 다른 국가들과 신뢰를 쌓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항상 다음과 같은 아버지의 조언을 따랐다”며 이렇게 소개했다. “다른 사람에게 그가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대해 말하지 말라. 열린 마음을 갖고 단도직입적으로 너 자신의 이득에 대해 말하고. 그리고 그의 입장이 되어 그가 바라는 것과 그의 한계를 이해하려고 애써라. 그리고 네가 생각하기에 그가 할 수 없는 것을 그에게 하라고 고집하지 말라. 그것이 바로 진심으로 개인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다.” 김정은과 측근들의 눈에는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트럼프처럼) 말하지 말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원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라.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라. 확실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같이 북한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고집하지 말라. 그것이 북한과 신뢰관계를 쌓는 노력이다’라고 읽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꿈 깨라. 그건 미국의 영향권하에 있는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외교적 수사일 뿐이다. 적대국 북한에 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하는 과정을 부통령으로 바로 곁에서 지켜본 바이든은 더 강경한 제재를 할 수도 있다. 4년이건 8년이건 바이든이 퇴임하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해보니 그것은 가능한 일이었다”고 회고하는 날이 올 수 있을지.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11-06 03:00
김정은은 핵들고 영구집권 굳히는데 우리가 왜 한미동맹을…[오늘과 내일/신석호]한미동맹의 유지와 강화가 임무여야 할 이수혁 주미대사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랑하지도 않는데 그것(한미동맹)을 계속해야 한다는 건 미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14일 자신의 SNS에 “대등한 관계에서 외교를 펼쳐야 하는 주권 국가의 외교관으로서 당연한 태도”라고 두둔했다. “‘대한민국 First(제일주의)’라는 관점에서 발언을 하면 금방이라도 한미동맹이 깨질 것처럼 난리가 난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것이 ‘아메리카 First’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과 미국은 주권국가라는 점에서는 대등하지만 그 힘은 같지 않다. 현대 국제정치학의 태두로 불리는 고 한스 모겐소 시카고대 교수는 대표 저서 ‘국가 간의 정치’에서 국력을 아홉 가지 요소로 구분했는데 한국은 어느 면에서도 미국을 앞서지 못한다. 땅도 좁고 자연자원과 공업 능력도 부족하고 군비와 인구도 적다. 국민성과 국민의 사기, 외교의 질, 정부의 질도 낫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한미동맹을 전형적인 비대칭 동맹이라고 한다. 약소국인 한국이 국가로서의 자율성을 일부분 희생하고 대신 강대국인 미국의 안보 혜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자율성·안보 교환 동맹’이라고도 한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것이 ‘아메리카 First’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우리가 희생하는 자율성의 정도가 대가로 받는 안보상의 혜택보다 커서는 안 된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건 대중 선동이 아니라 치밀한 협상으로 얻어낼 일이다. 모든 동맹에는 탄생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쟁이다. 한미동맹이 김일성의 침략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승리의 역사를 통해 탄생했다는 점은 중국도 인정하고 있다. 추궈훙(邱國洪) 전 주한 중국대사는 재직 당시인 2018년 11월 본보 화정평화재단 국가대전략 강좌에 나와 “동맹은 양자에 국한되어야 하며 다른 나라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면서도 “(한미)동맹의 역사적인 배경은 존중한다”고 말했다.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은 김일성의 6·25 도발을 지원했다가 아들을 포함한 수많은 중국 인민을 희생시켰다. 침략자인 중국도 인정하는 한미동맹을 지금 수정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도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며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김정은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가식적인 ‘눈물’로 시작했다가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괴물’로 끝내는 광경을 보지도 못했나. 김정은이 10년 집권을 넘어 영구 집권을 굳히려 하는 지금이야말로 한미동맹을 외치는 것이 ‘대한민국 First’일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틈만 나면 한미동맹을 흔들어온 이른바 ‘운동권 자주파 집권세력’의 뿌리 깊은 반미 인식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약소국의 외교는 강대국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가르침을 들어보지 못했단 말인가. 아는데 모르는 척한다면 누구를 향한 발언일까. 북한일까? 중국일까? 아니면 정권 재창출을 담보해줄 젊은 자주파 유권자들일까. 물론 6·25전쟁 직후와 지금의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미국에서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국력은 상대적이다. 세계 제국을 이뤘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도 독일 아돌프 히틀러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신흥 강대국 미국과 소련 최고지도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중국과 북한은 아직 한목소리로 ‘항미원조’와 ‘혈맹’을 외치고 있는데 이 정권은 임기 내 전시작전권 전환에 매달리다 ‘사실상 불가’ 통보를 받는 외교 참사에 이르렀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10-23 03:00
조성길 괴롭히는 탈북 이산의 아픔[오늘과 내일/신석호]7일 오후 채널A 스튜디오에서 만난 고영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한국행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나면서 난처한 지경에 처한 북한 외무성 후배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의 처지가 남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1991년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일하다 자유를 택한 그는 가족을 버렸다는 아픔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는 방송에서 “탈북 기자회견을 한 직후 평양의 어머니가 차에 실려 어디론가 갔다는 이야기를 뒤에 탈북한 여러 사람을 통해 들었다”고 말했다. 최고위급 탈북자인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도 가끔 북에 두고 온 아내 박승옥 씨에 대해 말하곤 했다. 한국행을 결심한 뒤 아내에게 알리느냐 마느냐를 끝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남편이 해외 출장을 간다며 집을 나서면서 남한으로 간 사실을 알게 되었을 아내를 위해 비통한 사죄의 마음을 담은 편지 한 통을 남겼다. “나 때문에 당신과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모진 박해 속에서 죽어 가리라고 생각하니 내 죄가 얼마나 큰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오. 나는 가장 사랑하는 당신과 아들딸들, 손주들의 사랑을 배반하였소. 나는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를 가장 가혹하게 저주해 주길 바라오. … 나는 이것으로 살 자격이 없고 내 생애는 끝났다고 생각하오. 저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저세상에서라도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소.” 가족에 경중이 있을 리는 없지만 최근 탈북하는 ‘젊은’ 탈북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대상은 바로 자녀들이다. 2016년 탈북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금도 두 아들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탈북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한다. 교사였던 부모는 변방인 함경북도 명천과 명간 출신이었지만 자신은 평양에서 태어나 ‘미국의 시대, 영어를 배우라’는 어머니 덕분에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외교관이 되어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까지 오르는 동안 김씨 3대 세습 독재 체제의 혜택을 누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라나는 두 아들마저 김정은 3대 세습 독재자의 하수인이 되는 것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는 게 그가 탈북한 결정적인 이유다. 북한 외교관들이 대한민국으로 증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녀를 모두 데리고 나가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넘어야 했다. 그는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는 매우 운 좋게도 두 아들과 함께 영국에 올 수 있었다”고 썼다. 지난해 사석에서 꼬집어 물어보았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그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선물하겠다는 목적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다. 아직 만나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1975년생으로 1962년생인 태 의원보다 열세 살이나 어린 조성길 전 대사는 더더욱 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운 좋은 태 의원과는 달리 조 전 대사는 첩보영화와 같은 탈출 과정에서 딸을 놓쳤다. 그가 왜 유럽과 미국을 두고 한국행을 택했는지 아직 정확하지 않지만 지난해 7월 입국한 뒤 은둔해 온 이유는 충분하다. 바로 북한으로 송환된 딸의 안위 때문이었던 것이다. 낳아 키운 엄마에겐 자식과 생이별한 자유보다 자식과 함께하는 독재의 속박이 더 나아 보였던 것일까. 조 전 대사의 한국행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 것도 딸을 찾아 평양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아내의 의지였다는 보도가 나온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8일까지 4부작으로 내놓은 ‘증발―사라진 사람들’ 시리즈는 세파에 지쳐 스스로를 격리한 사람들과 가족들의 사연으로 독자들을 울렸다. 조 전 대사 부부는 자유가 없는 나라 북한을 등진 증발 시도였다고 할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딸과 생이별하는 이산의 고통을 마주하게 된 상황인 것 같아 더 안타깝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10-09 03:00
북한 인권 침해 조사, 통일부는 손떼라[오늘과 내일/신석호]최근 동아일보의 잇단 단독 보도로 드러난 통일부의 북한 인권 조사 업무 난맥상은 서독에서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제도가 과연 한국에 잘 정착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한다. 두 나라는 민족 분단과 이념 대립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같은 제도의 다른 행보는 훌륭한 비교연구의 주제가 된다. 서독 연방정부는 1961년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쌓고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려는 주민들에게 발포 명령을 내리자 법무부 산하에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를 세웠다. 보존소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29년 동안 4만1390건의 인권 침해 사례를 수집해 보존했다. 동독 지도부엔 ‘당신들의 만행이 기록으로 쌓이고 있다’는 경고를 보냈고 주민들에겐 ‘우리가 당신들의 억울함을 문서로 보존하고 있다’는 희망을 발신했다. 기록들은 통일 후 가해자의 처벌과 인사 등에 활용됐다. 동독은 거세게 반발했다. 1966년 동서독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기관의 폐지를 요구했다. 동독과 대화하려는 서독 사회민주당(SPD)과 일부 지방정부들도 동독 편을 들었다. 하지만 연방 법무부 관료들은 흔들리지 않고 보존소를 지켜냈고 서독 지도자들은 1990년 10월 통일을 이루기까지 이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했다. 잘츠기터의 성공은 국가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제한한 서독 관료들의 신중함에서 나왔다. 동독과 국내 좌파 진영이 반발할 게 뻔했기 때문에 잘츠기터의 역할을 그야말로 기록의 보존에 한정했다. 국방부와 학계, 민간단체 등이 생산한 기록들을 모아서 보관할 뿐이었기에 안팎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처음 발의된 한국의 북한인권법은 오랜 정쟁을 거쳐 박근혜 정부 4년 차인 2016년 발효됐다. 돌이켜 보면 당시 정부는 너무 욕심을 부렸다. 법무부에 기록 보존 업무를 준 것은 서독과 같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적극적인 조사 업무를 통일부에 맡긴 것은 서독보다 더 나간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인 2008년 1월 서독식 제도 도입에 논의가 활성화되었을 때 전문가들은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정부 민간 협업 방안을 권장했다. 국가가 조사까지 맡을 경우 북한은 물론 진보 진영의 정치적 반발을 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기 후반 대북 강경 모드로 돌아선 박근혜 정부는 조사와 보존이라는 권한을 모두 거머쥐었고 1년도 채 안 돼 탄핵으로 자멸하며 진보 정부의 손에 바친 꼴이 됐다. 통일부가 민간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와의 조사업무 위탁 계약을 중단하면서 터진 민관 갈등은 남북 대화에 목을 매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보수 대북단체들을 옥죄고 있는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NKDB는 2007년부터 북한인권백서를 내고 북한 주민들의 정치적 자유권을 억압하는 김씨 독재를 비판해 왔다. NKDB의 자리를 차지한 국무총리실 산하 통일연구원은 대북 지원의 근거가 되는 경제·사회권 조사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통일부 관료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이은 현 정부의 대북 인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 인권 문제의 핵심은 김씨 독재가 낳는 정치적 자유권보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경제 봉쇄가 낳은 경제·사회권의 결핍이다. 북한이 먹고살 만해야 문제가 풀린다. 그래서 퍼주어야 하고 그러려면 대화해야 하고 인권 문제 따위로 김정은을 화나게 하면 안 된다.’ 이래서야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가 연평도 바다에서 북한군의 총에 맞고 불태워진 어업지도원 사건을 어찌할지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랬다가 정권이 바뀌면 또 난리가 날 텐데. 지금이라도 서독 관료들의 지혜를 핑계로 조사 업무를 국가의 손에서 떼어 민간에 맡기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09-25 03:00
한미클럽 “스가 취임 계기, 한일 갈등 더이상 방치해선 안돼”임채정 김형오 정의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신임 일본 총리 취임으로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는 한일관계에 대해 “양국의 갈등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임 전 의장(2006년 6월~2008년 5월 재임) 등은 주미 특파원 출신 전·현직 언론인 모임인 사단법인 한미클럽(회장 이강덕)이 17일 발행한 한미저널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답했다.임 전 의장은 “일본이 그동안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과정에서 한국이 갖는 정치 경제적 약한 고리를 적당히 이용해 식민지 지배를 호도하려는 태도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며 “일본의 민간 부분을 통한 각 분야의 대화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형오 전 의장(2008년 7월~2010년 5월)은 “한일관계가 불협화음이 지속될수록 외교·안보·경제·산업·과학·기술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우리가 입는 피해는 막대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가 피해를 훨씬 더 많이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도 알량한 반일감정을 부추겨 국내정치용으로 이용하고 있고, 일본도 마찬가지”라며 “이는 정치권에 엄청난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정의화 전 의장(2014년 5월~2016년 5월)은 “우리 주장도 중요하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일본을 이해하려는 자세도 필요하다”며 “우리가 모든 면에서 일본보다 나은 국가가 되는 것이 일본에 대한 아름다운 복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문희상 전 의장(2018년 7월~2020년 5월)은 재임 시절 ‘한일청구권협정과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차 확인하고 양국 정상 간 재합의 선언’을 골자로 내놓은 ‘문희상안’이 해법이 될 있다며 “화이트리스트, 지소미아 회복을 선언하고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양국 의회에서 입법적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2020-09-22 14:38
이러다 통일부도 ‘평화부’될라[오늘과 내일/신석호]7일부터 9일까지 통일부가 주최한 한반도국제평화포럼(KGFP)은 2010년 9월 9일과 1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처음 열린 코리아글로벌포럼(KGF)의 후신이다. 당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11개 나라 정부와 민간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모여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논의했다. 통일부 출입 기자로 “통일이 빠르게 올 수도 있다”는 윌리엄 코언 전 미 국방장관과 “성급한 통일보다 남북한 공존이 중요하다”는 게오르기 톨로라야 전 러시아 동북아국장의 설전을 중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 11회 포럼은 10년 전과 같은 장소에서 열린 통일부의 연례 글로벌 포럼이라는 점 외엔 다른 점이 많았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청중 없이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코언과 톨로라야의 설전처럼 10년 전엔 ‘통일’이 화두였지만 이번엔 온통 ‘평화’ 일색이었다. 200명 가까운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한 30여 개의 세션과 발표 제목에 ‘통일’이 들어간 건 단 하나인데 ‘평화’가 들어간 건 13개였다. 그래, 10년 전엔 통일이 유행이었다. 한반도 주변국들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에 경악했고 조사와 처리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과 진통을 겪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던진 ‘통일세’를 시작으로 ‘한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이 북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여론이 국내외에 조성됐다. 1회 포럼에 미국 민간 대표로 참여했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다음 달 같은 장소에서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연 국제학술회의에서 “한반도 통일만이 북핵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개 선언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이명박 정부가 말기에 ‘통일 항아리’를 빚어 돌리고 박근혜 정부가 ‘통일 대박’ 이벤트를 흥행시키면서 헌법 가치인 통일은 국내정치 이벤트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은 남한 주도 통일의 환상적인 베스트 시나리오를 그리기도 했다.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민주화를 촉진해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능력과 실천이 없는 통일 대박 구호는 황당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에 앞장선 현 정부 인사들과 지지자들은 2017년 집권하자마자 통일 대신 평화를 한반도 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과 광복절 등에 내놓는 공식 담화에서, 정부의 통일정책 문서에서, 각급 학교의 통일교육 교재에서 통일이라는 단어가 빠지고 평화가 채워졌다. 지난해엔 코리아글로벌포럼도 한반도국제평화포럼으로 바뀌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통일부와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통일’이 언제 빠지는지가 관심사일 정도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번 포럼 개회식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평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Peace)”를 강조했다. 북-미 대화 놀음이 한창이던 2018년 6월 한 유명 증권사 투자전략팀장이 미국의 북한 비핵화의 목표(CVI-Dismantlement)를 패러디해 투자자들에게 흥행시킨 것(C-Visible-I-Prosperity)의 아류인지나 알고 말한 것일까. 3일간의 포럼은 분야별로 “무엇을 어떻게 줄 것인가”가 주류였고, ‘문재인표 평화’의 철학적 이론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학술적 논의는 거의 없었다. ‘평화를 원한다면 조용히 힘을 길러 전쟁에 대비하라’는 현실주의적 평화관은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포럼 둘째날에는 민간단체가 지원한 코로나19 진단키트를 북한 당국이 반송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상대방이 호응하지 않는 평화 논의는 청중이 없는 토론장만큼이나 공허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09-11 03:00
사회주의자들의 유전자엔 ‘경제’가 없다[오늘과 내일/신석호]김정은이 이끄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는 19일 결정서에서 “혹독한 대내외 정세가 지속되고 예상치 않았던 도전들이 겹쳐드는데 맞게 경제사업을 개선하지 못하여 계획되였던 국가경제의 장성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도 빚어졌다”고 밝혔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이례적인 경제정책 실패 인정에 국내외 언론들이 한동안 큰 관심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것은 북한의 3대 세습 독재 지도자들이 경제 실정의 원인을 외부적 환경 탓으로 돌려온 틀에 박힌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여기서 ‘예상치 못했던 도전들’이란 코로나19 확산을 말하는 것 같은데 할아버지 김일성은 1993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보도’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환경 탓을 했다. “수많은 사회주의 나라들과 세계 사회주의 시장의 붕괴에 의해 (중략) 우리나라와 그들 나라 사이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져 온 경제협력과 무역거래가 부진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의 경제건설에 큰 피해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중략) 제3차 7개년 계획을 원래 예측한 대로 수행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경제정책에 대한 책임 방기와 속죄양 찾기 역시 김 씨 일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가의 보도’다. 생전 김정일은 “수령님(김일성)께서 경제사업에 말려들면 당 사업도 군대 사업도 할 수 없다고 여러 번 당부했다”고 말하며 굶어죽는 인민들을 방치했고 ‘고난의 행군’ 책임을 물어 숙청 놀음을 벌였다. 이번에도 경제정책 실행에 책임이 있는 간부들이 연일 노동신문 등을 통해 반성문을 쓴다고 하니 북-미 핵협상 타결에 실패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지 못한 못난 독재자의 책임을 뒤집어쓸 속죄양 찾기도 시작된 모양이다. 1984년생으로 알려진 김정은은 자신의 37번째 생일인 내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를 열어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내놓겠다는 애드벌룬을 띄우고 권력을 유지해 보겠다는 속셈일 텐데…. 글쎄올시다. 대한민국도 앞이 안 보이는 ‘예상치 않았던 도전들’을 그렇게 감당할 수 있을까?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인데 말이다. 사회주의 경제를 ‘부족의 경제(economy of shortage)’라고 정의한 헝가리의 경제학자 야노시 코르나이는 ‘사회주의 체제―공산주의의 정치경제학’에서 공산당 독재가 사회주의 경제 피폐의 핵심 원인이라고 갈파했다. 여기서 파생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시장의 효율성을 앗아간 관료적 조정, 연성예산제약 등은 소련과 중국, 북한과 쿠바 등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공산당 독재라는 독립변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부족의 경제’라는 종속변수 역시 변함이 없다는 말이 된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경제를 희생하는 행태는 동서고금의 사회주의 독재자들이 마찬가지다.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24년 1월 사망한 블라디미르 레닌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레닌의 유산인 신경제정책(NEP)을 폐기하고 농업 집단화와 급격한 산업화라는 경제정책의 좌경화를 단행했다. 그 결과 소련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죽는 대기근을 초래했다. 김일성 역시 1956년 ‘8월 종파 사건’ 등을 통해 중화학공업화와 농업집단화에 반대한 우파들을 ‘종파주의’로 몰아 처단했다. 그나마 김일성에겐 스탈린이 만든 사회주의 우호경제라는 울타리라도 있었다. 핵을 들고 버텨보려는 김정은은 중국의 지원조차 제대로 받기 힘든 미증유의 고립 속에 빠져 있다. 코르나이는 “사회주의 정치와 권력, 이데올로기라는 유전적 프로그램(genetic program)에 변화가 없는 한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어렵다”고 했다. 사회주의자들의 유전자 속에 경제란 없다는 말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08-28 03:00
[책의 향기]‘지도자’ 조지 워싱턴을 생각한다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스다코다 주 러시모어산의 ‘큰 바위 얼굴’에 자신을 넣을 수 있을지 문의했다는 뉴욕타임스의 기사가 화제였다. 그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외치와 내치에서 큰 성과를 이뤄낸다면 가능성이 없다 할 수는 없다. 중국의 부상을 제지하고 국제정치 무대에서 초강대국 미국의 위치를 더욱 굳건하게 하면서 코로나19의 창궐과 북핵문제를 해결한다면? 흑백 갈등과 신자유주의 양극화로 분열된 미국을 하나로 통합시킨다면? 하지만 전세계인이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이자 고결한 인간적 스승으로 숭앙하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일생을 깊이 알게 되면 그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위대한(great) 지도자를 넘어 신의 영역에 한 다리 걸치는 거룩한(grand)지도자였다”며 “조국을 위한 무한한 애국주의와 아낌없는 헌신, 권력에 겸허한 거룩한 인품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워싱턴 대통령은 16세기 이탈리아가 낳은 현실주의 정치철학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도 꿈만 꿀 수밖에 없었던 “영원히, 영광스러운 새로운 창업자와 수성가”를 18세기 북아메리카 대륙의 현실에 구현해 21세기 유일 초강대국을 낳은 미국의 아버지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혁명군 최고사령관에서 개인의 자유와 재산, 생명을 강조한 존 로크의 사회계약론을 반영해 권력분립 그리고 견제와 균형을 기간으로 하는 미국 헌법을 기초한 헌법회의 의장, 초대 재선 대통령으로 봉직했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총사령관으로서의 그는 ‘무장한 예언자(Armed prophet)’였으며 대통령으로서의 그는 ‘비무장 예언자(Unarmed prophet)’였다. 마키아벨리는 역사상 무장한 예정자들만이 성공했으며 비무장 예언자들은 모두 실패했다고 주장했지만 워싱턴은 두 역할을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저자는 이것이 가능했던 워싱턴의 능력과 덕목으로 비전과 분별력(Vision and Prudence), 천재적 군사전략(Genius Military Strategy), 용기(Courage), 장엄함(Magnanimity)을 꼽고 있다. 특히 그의 인격과 사람됨은 능력을 뛰어넘었다. 모든 공직에 오르는 과정에 후보가 되겠다고 손들지 않았으며 오로지 당대 미국 엘리트들의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하지만 임무를 다한 뒤엔 언제나 시민이자 농부로 돌아갔다. 1783년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뒤 총사령관직을 사임하고 로마 공화정의 킨키나투스처럼 마운트버논의 자기 농장으로 미련 없이 돌아갔다. 6년 후에 신생 독립국 미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된 뒤 8년간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다시 농부요 일개 시민으로 돌아갔다. 누군가의 독재 가능성을 스스로 모범을 보여 막은 것이다. 막 탄생한 국가를 위해 노예제도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유언을 통해 죽은 뒤 자신의 모든 노예를 해방시켰다. 그의 뜻은 16대 에이브러햄 링컨에 의해 이뤄졌다. 워싱턴은 이후의 미국과 세계를 디자인했다.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며 민이 군을 통제해야 한다는 프로이센의 전쟁철학자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을 구현했다. 그가 대통령 직에서 퇴임한 뒤 유럽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졌지만 미국은 워싱턴이 퇴임 고별사에서 강조한 중립주의, 고립주의를 견지함으로써 1900년대 1, 2차 대전을 계기로 세계 초강대국으로 떠오를 때까지 은은자중하며 국력을 키울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워싱턴은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근대 자유 민주주의의 창업자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암울한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이라는 비극을 거치면서도 오늘날과 같은 민주공화국을 창업하고 수성해온 기적에는 미국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의 창업자요 수성가인 워싱턴처럼 위대한 능력과 인품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을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의 한국인들이 18세기의 워싱턴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한 평생 국제정치학자로서 강학하면서 철학과 역사,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저자는 2014년 퇴임 후 한국지정학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리더십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후학들과 함께 2017년부터 매월 세 번째 토요일 오후 네 시에 세계적인 지도자들의 일생을 공부하는 ‘세토네’ 모임을 갖고 있다. 대학원 석박사 세미나 강의 형식으로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전기를 완독했다. 2017년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년 ‘윈스턴 S. 처칠-전쟁과 평화의 위대한 리더십(박영사)’를 출간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2020-08-15 03:00
김정은이 정말 술 주고 설탕 받자 했다면[오늘과 내일/신석호]세 번째 평양 방문 때인 2003년 3월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고위 관계자가 “인민들이 쓸 약이 필요하다”며 일장 연설을 했다. 좀 도와 달라는 취지였지만 그 속에는 북한 물건이 왜 질이 떨어지는지, 그것이 이른바 ‘고난의 행군’ 경제난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솔직한 고백이 담겨 있었다. “과거 사회주의 나라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우리가 땅콩을 집어주면 그쪽에서 페니실린을 주었습니다. 모든 게 우호적이었고 그래서 상품의 질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그래서 우리가 좀 게을러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회주의 나라들이 우리를 배신하고 자본주의 체제로 가버리자….” 2007년 쿠바 아바나를 방문했을 때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아바나대 박사 출신인 호세 아리오사 씨의 회고. “소련과 물물교환을 할 때가 쿠바 사회주의의 황금기였습니다. 쿠바는 소련이 주는 원유로 비싼 차를 굴렸고 남은 것을 국제시장에 팔기도 했어요. 우린 설탕만 공급하면 그만이었지요. 그 결과 쿠바는 설탕이나 럼주, 담배 정도만 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됐습니다. 그런데 소련이 사라지자….” 우호무역과 청산결제가 가져온 모럴해저드는 북한과 쿠바 경제가 지금도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다. 냉전 시절 사회주의 맹주였던 소련은 두 나라를 정치적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해 말 그대로 ‘퍼주기’를 했다. 질 낮은 땅콩이나 설탕과 고가의 원유를 비등가적으로 맞바꾸는 우호적 물물거래와 청산결제는 북한과 쿠바를 타락시켰다. 1992년 소련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했을 때, 북한과 쿠바는 아무런 능력 없이 시장으로 내던져졌다. 이름도 생소한 민간단체가 북한의 술과 남한의 설탕을 물물교환하는 계약을 맺었고 통일부가 승인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선 불편했다. 그동안 북한 지도부는 도대체 뭘 한 거지? 쿠바도 1990년대 초반 ‘특별한 시기’라는 혹독한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30년 동안의 개혁과 개방을 통해 조금은 살 만한데. 인민들 먹여 살리는 것보다 세습독재 체제의 대를 잇느라 바빴던 북한은 이제 그 옛날 물물교환을 다시 하자고? 한편으로 그 소식이 궁금한 이유는 과연 김정은이 계약 내용을 알고 사인했을까 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핵을 가졌다고 주장하며 남북한 경제관계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접근법을 피력해 왔다. ‘옛날처럼 구걸하는 듯한 인도적 지원은 받지 않겠다. 핵국가 북한에 걸맞은 대규모 경협계획을 그려 와라.’ 근데 겨우 1억5000만 원(약 12만6000달러) 상당의 물물교환에 사인을 했다고? 그것도 술 주고 설탕 받는? 김정은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나갔다가 망신을 당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라며 남한 것은 일절 아무것도 받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한기범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만일 김정은이 이를 알고서도 사인했다면 경제 사정이 정말 심각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남한이 주는 설탕 167t이라도 받아 평양 특권층 아이들 단과자라도 만들어 돌려야 충성심이 유지될 정도라는 것밖에 안 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2016년 이후 핵능력 강화 국면에서 국제사회가 켜켜이 쌓아올린 대북제재가 드디어 효과를 발휘한다는 증거일 수 있다. 통일부 내에는 북한학자도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물물교환이 유엔의 제재 대상인지를 떠나 제재의 정신을 생각하면 답은 뻔하다. 핵 들고 버티겠다는 의도가 뻔한데 버티도록 도와주는 게 답인가? 술 받고 설탕 주어서 과거 소련처럼 북한을 컨트롤할 수 있나? 막 부임한 장관은 당장 보여줄 게 필요하겠지만 좀 더 시간을 끌면서 ‘핵을 포기하면 설탕보다 더 큰 것을 줄 수 있다’고 설득하라. 길게 보면 그게 답이지 않나.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08-14 03:00
지금의 북한이 그때 북한인 줄 아나?[오늘과 내일/신석호]박지원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2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그의 대북인식과 정책방향을 시사하는 대화가 오갔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면합의서를 공개하기 전 “국정원장의 임무 중에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라는 임무가 있느냐? 국정원법 어느 조항에 그런 것이 있느냐”고 따졌다. 박 원장이 “대통령님께서 제게 과분한 소임을 맡기신 뜻은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라는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자 간첩도 잡고 대북 정찰도 해야 할 국정원장이 대화에만 매달리면 되느냐는 정당한 추궁이었다. 조태용 통합당 의원이 “과거에 대북 불법 송금이라는 방법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하는 이미지가 따라다닌다”고 하자 박 원장은 “반세기 만에 남북대화를 성사시킨 주역이라 이렇게도 좋게 생각한다”고 받아쳤다. 이어진 주 원내대표와의 대화에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서 북한은 처음부터 우리가 무슨 박테리아냐, 햇볕 비춰서 다 죽인다는 소리냐 이런 오해가 있었는데, 6·15남북정상회담 이후 이러한 것들이 많이 불식되어서…”라고 장황하게 홍보했다. 현대그룹의 5억 달러로 만든 20년 전 정상회담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듯했다. 남북대화의 주무장관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더 노골적으로 과거를 소환했다. 23일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과 북핵 문제 해결을 연계시키지 않고 병행함으로써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북한의 협조를 이끌어 낸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병행진전의 출발점은 남북관계의 복원”이라고 강조했다. 장관 지명 직후 “평화로 가는 오작교를 다 만들 수는 없어도 노둣돌 하나는 착실하게 놓겠다”며 자신의 대북 인식이 박 원장보다 더 오래된 것임을 드러냈다. 남과 북을 헤어진 남녀로 치환해 무조건 만나야 한다고 노래했던 1980년대 민중가요 ‘직녀에게’를 읊은 것이다. 그래, 그들에게 좋은 시절이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군부 권위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쳤던 아래로부터의 통일운동이 대중의 지지를 받던 시기가 있었다. 비민주적 국가에 저항을 결집하는 정치적 도구로서 민족담론이 먹혔던 것이다. 신격화된 북한 독재자 개인의 인식을 바꿔 남북대결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김대중식 햇볕정책은 그것을 역이용해 ‘고난의 행군’ 경제난을 벗어나 보겠다는 김정일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다. 경제적 이익을 노린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판돈을 내고 정치적 이익은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보는 거짓 평화가 진짜처럼 보였던 시절이 있긴 했다. 허나 어쩌랴, 가버린 시절인 것을. 1980년대 거리에서 남한의 대학생들이 외쳤던 ‘민족’이 순수한 민족주의의 발로였다고 치더라도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통해 집요하게 개입했던 북한의 속셈은 오로지 ‘김일성 민족국가’의 영속과 확장이었음을 이제는 모두가 다 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남북대화는 햇볕정책이 먹혀서가 아니라 남한과 샅바를 잡다가 잘못되더라도 내부 동요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권력을 장악했다고 확신한 말년의 김정일이 상대방이었기에 가능했던 ‘예외적 시기’였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끝난 2008년부터 미중 패권경쟁이 시작되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향해 내달린 북한은 이제 스스로를 미국과 경쟁하는 강대국인 양 행동하고 있다. 핵을 가진 3대 세습 독재자 김정은은 핵이 없는 약소국 남한을 더 이상 민족공조의 파트너로, 경제 지원의 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김씨 독재자들이 측근을 대하듯 복종만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 좋았던 과거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북한은 더 이상 그때 그 나라가 아니라는 말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07-31 03:00
아이들을 ‘진짜 세상’으로 끌어내는 용기[오늘과 내일/신석호]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던 2018년 12월 초. 거실에 조립해 세운 크리스마스트리에 일찌감치 손편지가 걸렸다. “산타 할아버지! 저는 아이패드가 갖고 싶어요.” 헐,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언론사 디지털뉴스팀장이 생업이지만 아이들은 가급적 늦게 온라인 세상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 유튜브 볼 시간에 책과 신문을 읽고, 친구들과 단톡방 채팅을 하는 대신 길거리에서 공을 차고 뛰노는 게 정신과 육체의 발육에 더 좋다고 생각했다. 아이패드를 탄생시킨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그렇게 아이들을 키웠다지 않은가. “산타 할아버지가 애플 판촉원도 아니고, 그런 고가의 물건을 달라고 하는 것은 산타 정신에 위배되는 거란다.”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내 친구는 이미 작년에 받았는데?” 성탄절 이브에 아내와 토론을 벌였다. 정중하게 타이르는 산타의 편지를 걸고 장난감 아이패드를 놓자고 했다. 아내는 아이 꿈을 꺾기 싫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제일 싼 구형 제품을 구하느라 성탄절 3일 뒤에야 트리 밑에 놓았다. “아빠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공부를 위해 꼭 필요할 때만 보렴, 산타가∼”라는 편지와 함께. 그런 충고를 따를 수 있다면 아이가 아닌 것이었다. 지난해 초 유튜브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들을 보면서 용기를 냈다. “이제 그만하자. 더 이상 산타는 없어. 아빠 돈을 써가며 내 아이를 망칠 수는 없다.” 그렇게 아들은 산타가 없는 진짜 세상으로 나왔다. 아이패드는 장롱에 감금됐고 전화만 할 수 있는 ‘공신폰’이 지급됐다. ‘온라인 세상에서 아들 구하기’는 성공하는 듯했다. 올해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5학년이 된 아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기 위해 종일 노트북에 코를 박고 지낸다. 선생님, 친구들과 학사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아이패드가 사면됐고 공신폰은 진짜 스마트폰으로 대체됐다. 스마트폰을 보는 문제로 엄마와 다투고 온라인 대화에 몰입하는 아들을 보면서 걱정이 컸다. ‘저러다 책을 읽고 상상하는 기쁨도 모르고, 사람과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진짜 삶의 지혜에서도 멀어지면 어쩌지?’ 과도한 온라인 관계는 고독할 자유마저 앗아간다. 미국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부교수인 칼 뉴포트는 지난해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알림음과 무한으로 연결되어 있는 온라인 세상과 정보들에 휩싸여 정작 몰입해야 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할 수 없고, 늘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세태를 경계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인간은 홀로 고독할 때 사색하고 창조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취임 후 백악관으로 몰려드는 손님들을 피해 수도 워싱턴 북쪽의 별장에 가 홀로 밤을 지내며 국정을 구상했다는 일화도 나온다. 국가와 사회가 ‘집에서 조용히 있을 것’을 강요하는 요즘은 아빠들에게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강요된 ‘집콕’은 역병의 확산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을 진짜 세상과 멀어지게 만든다. 아빠가 모든 책임을 지고 틈날 때마다 아이와 함께 안전한 야외로 나서는 길을 택한 뒤 이른 봄부터 ‘캠핑 열풍’에 동참했다. 쉬는 날이면 아이들과 인적이 드문 산과 강, 바다에 텐트를 치고 ‘불멍’(화로대에 장작을 태우고 시간을 보내는 놀이)을 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을 청하고 있다. 진짜 세상은 간단치 않다. 막 50세가 넘은 아빠는 나이를 잊고 계곡물에 뛰어들었다 고막을 다치고, 중학교 3학년 딸은 낡은 샤워장에 들어갔다 손잡이 고장으로 갇히기도 했다. 아들은 텐트 문틈으로 들어온 모기 밥이 되고 모든 것은 아내를 화나게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는 것 같다. 그게 진짜 세상이라는 것을.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07-10 03:00
북한을 대하는 경이원지의 지혜[오늘과 내일/신석호]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꽃다운 나이의 젊은 46용사가 숨을 거두기 직전인 2010년 3월 초. 북한에 다녀온 인사가 북측 당국자의 경고를 기자에게 전했다. “8일부터 시작되는 키리졸브 한미 연합 군사훈련 기간 동안 남한과 미국의 전투기가 비록 공해상일지라도 북측을 향해 기수를 돌릴 경우 이를 공격으로 간주하고 대응할 것이다.” 머지않아 군부가 할 일을 정반대로 재구성해 귀띔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3월 26일 밤 전투기가 아니라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했다. 동쪽 하늘이 아니라 서쪽 바다였고, 키리졸브 연습이 끝나고 독수리훈련이 시작된 때였다. 북한 당국자는 최고지도부가 왜 화났는지도 설명했다. “우리는 금강산과 개성 관광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개성공단 근로자나 동해상으로 월경한 ‘800연안호’를 석방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남측은 필요한 것들만 얻어 위기만 모면하려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진행하지 않았다.” ‘진정성 있는 대화’란 2009년 가을 정상회담 논의였다. 2008년 8월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죽기 전 아들 김정은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자 김양건 통전부장 등을 조문단으로 보내 ‘대남 수금 작전’에 돌입했다. 이어 당국 간 정상회담 논의가 시작됐다.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끌어냈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라 정중히 거절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김양건을 만난 임태희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국군포로 일부의 고향 방문과 대북 인도적 지원을 골자로 한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양해각서’에 덜컥 서명했고,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이 국군포로 관련 요구는 더 키우고 인도적 지원 요구를 거절했다. 김정일에게 양해각서를 보고하고 재가를 받은 김양건은 “대기업이 중소기업 후리듯이 하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고 한다. 북한과 대화의 샅바를 잡았다가 오히려 군사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불편한 시나리오는 10년 뒤인 지금 반복되고 있다. 애초에 비핵화 의지가 없었던 북한이 먼저 ‘미국과 대화하고 싶으니 다리를 놔 달라’고 했는지, 문재인 정부가 먼저 ‘미국과 대화하게 해 주겠다’고 공작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모든 외교적 춤판(fandango)은 한국이 만든 것이었고, 이는 김정은이나 우리(트럼프)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의제에 더 연관된 것’이었다며 두 번째 가설에 무게를 실었다. 볼턴의 인식이 ‘통일의제’이지 사실은 문재인 정권의 생존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탄핵 파동으로 준비 없이 정권을 잡은 뒤 북한과의 화해무드는 좋은 통치 카드였다.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한 것은 역대 정부가 모두 같지만 이번엔 부작용이 좀 심한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못한 ‘평양 연설’의 호사는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생전 북한을 대하는 태도로 강조했던 ‘경이원지(敬而遠之·겉으로 공경하는 체하면서 멀리함)의 지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황 전 비서는 “진짜 공경하라는 게 아니라 외견상 국가로 대접하는 척은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상 우리 영토요 국민이지만 김씨 일가가 지배하고 있고 우리를 괴롭힐 수 있는 군사력도 보유하고 있는 점은 인정해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피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신격화된 김씨 일가의 시대착오적인 수령 절대주의 세습 독재 체제를 가까이하면 반드시 화를 당한다”고 경계했다. 이명박 정부는 멀리하려 했지만 자존심을 건드린 경우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자존심까지 버리고 너무 가까이 간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 아닐까.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06-26 03:00
갑작스런 대남 도발 보류…김정은의 속셈은?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이달 4일부터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남 공세의 전면에 나섰을 때, 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할 일을 김여정이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제기됐습니다. 당시 채널A 방송에 나가서 두 가지 측면을 이야기했습니다. 우선 김정은이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 남한에 대해 화가 날 때까지 났고, 김여정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 참모들이 이 화를 풀고 살아 남기 위해 대남 공세 카드를 집어 들었을 가능성이었습니다. 다음은 협상론의 측면입니다. 공세에는 끝이 있기 마련인데 김정은이 공세를 하고 김정은이 돌아서는 모양새는 보기에 좋지 않기 때문에 공세는 김여정이, 돌아서기는 김정은이 하기로 역할분담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었습니다.오늘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라는 것을 열어 군이 추진하고 있는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온 뒤 그럼 왜 김정은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앞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도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우선 김정은의 화를 풀고 살아남기 위해 김여정과 김영철이 대남 도발을 진행했다면 이를 지켜보던 김정은이 ‘어, 수고했는데, 너무 나가진 마라’는 사인을 보낸 것일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김정은의 화가 어느 정도 풀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남한에 대한 도발이 가져 올 여러 가지 비용을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두 번째로 협상론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 또한 사전에 잘 계획된 수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여정과 김영철은 도발을 하는 흉내를 내고 남한과 미국의 반응을 살핀 뒤 김정은이 어느 수준에서 숨을 고르는 연출을 미리 준비했을 가능성입니다.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보류’이기 때문에 아주 안할 것인지, 아니면 한국과 미국의 반응을 본 뒤 다시 사용할 것인지도 논의가 되어 있거나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형적인 북한의 2중 전술(도발과 긴장완화를 번갈아 주도권을 유지하는 전술)이요 살라미 전술(수단을 잘게 쪼개 긴장을 고조시키거나 완화하는 수법)이라는 이야깁니다.오늘 노동신문 보도를 보면서 새로운 가능성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북한 지도부의 계산법 속에 대남 공세는 대미공세에 비해 한 단계 급이 낮은 것이기 때문에 대남공세는 김여정이, 대미공세는 김정은이 맡기로 역할이 분담되어 있을 경우입니다. 김여정이 주도하는 대남공세의 숨을 고르면서 김정은이 직접 나서 대미공세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오늘 노동신문 보도에는 “예비회담에는 제5차 본회의에 상정시킬 주요 군사정책 토의안들을 심의하였으며 본회의에 제출할 보고, 결정서들과 나라의 전쟁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국가적 대책들을 반영한 여러 문건들을 연구하였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미국을 자극하기 위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포함한 전략무기 시험이나 공개 등을 의미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북한이 대남 도발을 보류했다고 안심하거나 좋아할 것이 아니라 더 큰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2020-06-24 13:30
적은 적이다… 아직도 모르는 척하나?[오늘과 내일/신석호]2012년 대통령선거 전 이명박 정부를 이을 새 정부의 남북관계를 전망하는 글에서 북한의 김정은이 한동안 남북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아직 미숙한 젊은 지도자가 남한과 샅바를 섣불리 잡았다가 잘못되면 갓 출범한 3대 세습 독재정권 자체에 위기가 올 것쯤은 알리라는 게 근거였다. 박근혜 정부 내내 남북관계가 지지부진했고 전망은 맞는 듯했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 그의 특사 자격으로 김여정이 내려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김정은의 대남 구애는 외견상 전격적이고 파격적이었다. 김정은이 집권 6년 만에 ‘대남사업’의 샅바를 잡은 데는 여러 요인이 있었다. 2016년부터 2년 동안 최고로 끌어올린 핵능력을 대충 보유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평화 코스프레가 필요했다. 출범 초기 정치도 경제도 되는 게 없었던 문재인 정부는 그런 북한을 다양한 방법으로 유인했을 것이다. 둘의 공생은 성공하는 듯했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내치기 전까지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상기한다면 ‘역사상 가장 좋았던’ 남북관계가 최근 갑자기 ‘대적관계’가 된 것이 아니다. 최고지도자들의 동상이몽 속에 겉으로만 좋아 보였을 뿐이다. 김여정과 탁현민의 현란한 이미지 정치 속에 실질적인 관계는 크게 진전된 것이 없었다.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은과 문 대통령 그리고 측근 일부만이 반복해 등장하는 연속극처럼 보였다. 이산가족 상봉은 한 차례에 그쳤고 민간 교류는 거의 진전되지 않았다. 국제정치학의 신기능주의가 말하는 ‘낙수 효과’, 즉 당국 간의 좋은 관계가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으로 확산되는 현상이 없었던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와의 결정적인 차이다. 북한의 핵개발과 켜켜이 쌓인 대북제재 때문에 정부도 민간도 북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었다. 김정은의 대남 평화 공세는 위선적이었다. 트럼프에게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며 제재를 푸는 데 남쪽을 활용했고 이젠 포기한 것 같다. 트럼프의 생각이 변할 것 같지도 않고 문 대통령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고 제 입으로 질타하지 않았는가. 김여정은 그러면서 남측을 향해 ‘적은 적이다’라고 했는데, 그걸 지금 알았나? 할아버지 김일성의 권력욕으로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치른 남과 북은 기본적으로 대적관계다. 하나가 죽어야 끝날 것 같은 체제 경쟁은 70년이 된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다. 소련과 중공이라는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김일성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전후 북한 지도자들은 미국을 제국주의로, 남한을 신식민지 파쇼 국가라 낙인찍은 뒤 주기적으로 대미, 대남 도발을 하며 체제의 정당성을 유지하려 했다. 이런 제도화된 적대관계에 기생하는 권력자들이 있었다. 정치군인으로 평생 남측을 골탕 먹이는 데 전문성을 쌓아온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대표적이다. 그런 자들의 권유와 설득 속에 김정은이 집권 10년 가까이 할아버지, 아버지 때와 같은 대형 대남 도발을 자제해온 것 자체가 오히려 비정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에겐 남한을 잘못 건드리면 미국에 얻어맞는다는 지혜라도 있었다. 젊은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에게 그럴 자제력이 있을까. 북은 적을 적이라 하며 속내를 드러내는데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친구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김여정의 한마디에 말도 안 되는 법 조항으로 대북전단을 불법화하며 국제적인 망신을 무릅쓰고 있다. 1980년대 군부 권위주의와 맞서는 과정에 대안체제로 잘못 받아들인 김일성 북한의 환상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김정은을 판문점과 싱가포르, 하노이로 끌어내는 과정에 말 못 할 약점이라도 잡혔기 때문일까?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2020-06-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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