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이 먼저’가 ‘공기업만 혼자’로[오늘과 내일/고기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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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이전 고용확대 의도 좋지만 민간유도 부족
“공공부문이 선도” 지금도 작동하는지 따져봐야

고기정 경제부장
고기정 경제부장
정부가 2003년 공기업 지방이전 방침을 발표할 때 취지는 ‘공공기관이 선도해’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룩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153개 기관이 지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럼에도 올해 역대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한다. 비수도권의 경제력 비중은 2년 전에 이미 수도권에 추월당했다. 정부는 공공기관이 이전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역으로 공공기관을 이전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으면 애초 정책 설계가 잘못됐거나 공정관리가 안 됐다고 봐야 한다.

3년 전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내걸고 852개 기관을 상대로 정규직화 작업에 착수했다. 이때도 정책 구호는 ‘공공기관이 선도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전환 대상의 90%인 17만4000명이 정규직이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2015년 전체 근로자의 32%에서 지난해에는 36%로 되레 늘었다. 절대 인원도 600만 명대에서 700만 명대로 증가했다.

대형 정책 과제를 공공부문을 통해 풀어내는 방식이 아직도 유효한지 따져볼 때가 됐다. 공공기관이 선도하면 민간이 따라가 줘야 하지만 번번이 먹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시장 구조가 바뀐 때문이다. 경쟁의 범위가 자국이 아닌 세계 전체가 된 상황에서 공기업이 지방으로 옮겼다고 해서 유관 민간기업이 동반 이전할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옛날 방식이다. 상장기업의 71%는 여전히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고, 해외로 공장을 옮긴 회사더러 국내로 다시 돌아와 달라고 해도 수도권 아니면 안 온다고들 한다. 균형발전을 위해선 공기업들을 여기저기 흩뿌려놓기보다 지자체에 조세 권한을 더 주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원 배분도 왜곡된다. 공공부문이 비대화하면서 민간에 공급돼야 할 청년들이 노량진 고시원에서 컵밥을 먹으며 몇 년씩 공기업 입사 준비를 하는 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공기업은 공기업대로 경쟁력이 떨어진다. 지난해 공공기관 순익은 7년 만의 최저치다. 인건비가 크게 늘어난 게 영향을 미쳤다. 36개 정부 출자기관 중 작년에 정부에 배당을 못 한 곳이 15곳이다. 전년보다 4곳이 더 줄었는데, 적자가 난 때문이다. 이미 40만 명을 넘어선 공공기관 인력은 두고두고 재정에 부담이 될 것이다. 고용 확대가 목표라면 차라리 공기업에서 번 돈으로 정부가 민간에 채용보조금을 더 주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공기업은 원래 자연독점이나 과소생산이 발생하는 영역에 국가가 개입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조직이다. 전기 철도 통신 등은 초기 투자비용이 커서 시장이 수행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먼저 진출한 기업을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국가를 포함한 공공부문이 해당 사업을 수행하되 독점시장의 특징인 높은 가격과 과소생산이 발생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데 정부의 역할이 맞춰져야 한다. 장기판의 졸처럼 정권이 쓰고 싶은 데 마음대로 쓰는 용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총칙 1조에서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라고 규정해 놓은 것도 각각의 설립 취지에 맞는 ‘기업 활동’을 보장하라는 주문이다. 한전은 전기를 싸게 공급하면 되고, 코레일은 철도 수송을 안전하게 책임지면 된다. 지금은 공공부문이 너무 많은 역할을 혼자서만 하려는 것 같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공기업#지방이전#고용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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