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가 유동성 증시[횡설수설/박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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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경제학의 창시자 어빙 피셔 교수는 1920년대 미국 예일대가 자랑하는 최고의 경제학자였다. 주식 투자에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1929년 10월 14일 투자자 모임에서 “주가가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고원(高原)에 이르렀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열흘 뒤 다우존스평균지수는 하루 만에 30% 이상 폭락했다. 대공황의 시작을 알린 ‘검은 목요일’이었다. 이후 3년간 주가는 10분의 1로 추락했고 피셔는 파산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란 코로나19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증시는 정반대로 달리고 있다. 4일까지 코스피는 5일 연속 상승해 2,151.18로 거래를 마쳤다. 바닥을 쳤던 3월 19일보다 47.6% 올랐고 연중 최고치인 1월 22일의 94.9%를 회복했다. 미 전역 시위 확산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3일 뉴욕 증시 S&P500지수 역시 전날보다 1.36% 급등하며 2월 19일 연중 최고치의 92%를 회복했다. 증시만 보면 ‘V자형 회복’ 양상인 것이다.

▷대공황 때와 결정적으로 달라진 건 중앙은행, 정부의 대응이다. 대공황 당시 미 정부는 재정적자를 염려해 긴축정책을 폈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통화 공급을 주저했다. 하지만 이번에 미 연준은 무제한 양적완화, 제로금리로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재정 지출을 크게 늘렸다. 한국도 3차에 걸쳐 60조 원 가까운 추경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0.5%로 낮췄다.

▷그 덕에 유동성 풍년인데 여유자금을 가진 사람들은 돈 넣을 데가 없어 고민이다. 예·적금에 1억 원을 넣어봐야 월 이자가 10만 원도 안 된다. 과거 경제위기 때 최악의 순간만 넘기면 주가가 회복되는 걸 경험한 한국의 ‘동학개미’들은 3월 말부터 외국인이 내놓은 우량주를 속속 사들였다. 최근엔 돈 굴릴 데가 없어 돌아온 외국인에게 주식을 팔아 차익 실현을 하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업 실적에 관계없이 주가가 뛰고 사소한 이슈에 주가가 출렁이는 등 주가와 실물의 디커플링이 심화됐다.

▷거품이려니 하면서도 상승 랠리를 보며 지금이라도 뛰어들까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 모양이다. 그는 최근 칼럼에 투자자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세 가지 규칙을 소개했다. “첫째,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 둘째,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 셋째,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 실물과 증시가 따로 놀기 시작하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도 예측불가란 뜻이다. 90여 년 전 피셔 교수의 역사적 망신이 경제 전문가들에게는 큰 교훈이 됐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예측불가#어빙 피셔 교수#계량경제학의 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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