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이 찾은 기회[오늘과 내일/허진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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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경제 생태계 넓고 깊어질듯… 신뢰와 평판의 가치 더 중요해져

허진석 산업2부장
허진석 산업2부장
아이스크림 전문점은 냉동고를 잔뜩 갖추고서 온갖 아이스크림을 ‘싸게’ 파는 곳이다. 많이 남는 장사가 아니어서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골목 상권에 주로 있다. 국내 빙과기업 임원이 들려준 얘기는 흥미로웠다. 자기 동네의 한 아이스크림 전문점은 작년 말까지만 해도 부자(父子) 관계로 보이는 두 사람이 번갈아 가게를 지켰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번지자 무인점포로 바꿨다. 손님들이 대면 거래를 부담스러워한 게 계기가 됐다. 그런데 주인장은 무인으로 전환하면서 중대한 경험을 하게 됐다. 그때까지는 월 300만∼400만 원가량 수익이 나면 자기 인건비로 여기며 업태를 근근이 이어왔다. 그런데 무인점포로 바뀌었는데도 매출이 유지되는 걸 발견했다. 주인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아이스크림을 고를 수 있어 많이 사갔다. 적당한 곳을 물색해 가게를 두어 곳 더 차렸다. 수입이 늘었다. 무인점포라고 해서 거창한 설비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폐쇄회로(CC)TV와 소비자가 사용하기 편리한 카드 결제기 정도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대면 경제의 확대는 기존 경제를 크게 위태롭게 하고 있지만 새 기회의 작은 문을 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대면 소비생활이 확대되면서 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이 온라인 판매를 위한 물류센터 및 정보기술(IT)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구직자라면 ‘내일의 일자리’는 매장 관리직과 판매직보다는 물류센터 관리와 배송, IT 분야에서 생길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상품 판매에만 국한된 것일까. 비대면의 필요성 때문에 원격의료나 리걸테크(앱 등을 활용한 비대면 법률 상담)처럼 전문가들의 서비스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 분야가 외국에 비해 시행이 뒤처진 것은 기술적인 요인보다는 제도적 요인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새 규칙과 제도가 마련된다면 당장 시행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의 경제 생태계 변화도 앞당겨질 수 있다.

비대면 경제는 IT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세계 1, 2위 메모리반도체 생산기업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는 시장 확대의 기회다. 건설업계는 앞으로 물류센터와 함께 데이터센터의 건립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관련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있다.

혹시 일시적 현상은 아닐까. 이미 사람들은 배달 물품이나 음식을 받을 때 문 앞에 두고 가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음식점을 찾더라도 대면 주문보다는 주문기계나 휴대전화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포장 주문이 필요할 때라면 미리 앱으로 결제한 뒤, 잠깐만 가게에 들러서 가져오는 방법도 있다. 햄버거를 비롯해 포장이 되는 많은 음식을 이렇게 이용할 수 있다. 바쁜 때라면 시간도 절약되니 꿩 먹고 알 먹고다. 코로나19로 생긴 이런 생활방식은 디지털을 입에 물고 태어난 세대가 사회 주축이 돼 가면서 문화로 자리 잡을 공산이 크다. 새로운 세대는 과외도 메신저나 영상통화로 받는 세대다. 비대면 경제 생태계도 시간이 갈수록 더 공고해질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비대면 경제 생태계에서 성공하려면 어떤 게 중요할까. 소비자들은 이번 기회에 여러 앱을 써보게 됐고, 어떤 곳이 자신에게 큰 편익을 제공하는지 알아가고 있다. 심지어 같은 온라인몰에서 파는 토마토라도 어느 브랜드가 더 맛있는지까지 구분한다. 처음 보는 물품이라면 구매평가부터 살피는 것은 표준 절차가 되다시피 했다. 언제든 가게를 바꿀 수 있는 생태계에선 브랜드와 평판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허진석 산업2부장 jameshuh@donga.com
#비대면 경제#원격의료#리걸테크#데이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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