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느닷없는 국민발안제로 개헌 군불 때는 與, ‘경제 戰時 상황’ 맞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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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어제 “국민발안제 개헌안을 5월 9일 이전에 처리하자”고 미래통합당에 제안했다. 2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끝나자 곧바로 국민발안제 원포인트 개헌안 처리를 들고나온 것이다. 현재 헌법 개정 발의는 대통령이나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로 할 수 있다. 국민발안제는 일정 수 이상의 국민 동의로도 헌법 개정 발의를 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인데 이번 개헌안에서는 국회의원 선거권자 100만 명으로 규정됐다.

코로나19 사태로 뒤숭숭한 3월 의원 148명이 느닷없이 국민발안제 원포인트 개헌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이 주도하긴 했지만 통합당 김무성 정진석 의원 등 22명도 참여했다. 20대 국회 의석 분포상 이 개헌안이 재적의원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이 원내대표가 20대 국회 잔여안건으로 특별히 국민발안제를 거론한 것은 통합당 일부 의원을 흔들어 21대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하기 위한 군불 때기로 보인다.

민주당은 4·15총선에서 위성비례정당 의석을 포함해 180석을 얻었다. 범진보진영이 힘을 합치고 통합당 의원 일부가 가세하면 개헌선 200석을 넘겨 21대 국회에서는 국민발안제 개헌안의 국회 통과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민주당으로서는 국민발안제 방식의 새로운 개헌 루트가 마련되면 개헌을 정파적으로 추진한다는 인상을 불식할 수 있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민주당 이용선 당선자가 주장하는 토지공개념 도입 등의 개헌을 국민발안제 방식으로 도모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국민이 헌법안이나 법률안을 직접 발의하는 국민발안제는 선진국 중에서 미국의 일부 주(州)와 스위스의 일부 주에서만 실시된다. 100만 명은 여야 어느 정치세력이든 조직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규모로 정치적으로 편향된 개헌안이 발의될 우려가 있다. 국민 대다수가 국민발안제가 느닷없다고 느낄 정도로 공론에 부쳐 심도 깊게 논의하는 과정도 부족했다.

장차 개헌 논의를 한다 하더라도 우선순위는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개헌이다. 더구나 지금은 개헌 논의 자체에 국력을 쏟을 여력이 없다. 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여도 부족할 판에 여당 원내대표까지 가세해 개헌 논의로 국력을 분산시킬 궁리나 하고 있으니 대통령이 ‘경제 전시(戰時) 상황’이라고 한 말이 여당에는 딴 나라 사정인 모양이다.
#더불어민주당#국민발안제#개헌 논의#국력 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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