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자를 살인마라 부르면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다[광화문에서/박형준]

박형준 도쿄 특파원 입력 2020-04-29 03:00수정 2020-04-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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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요즘 일본 도쿄에 있으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부쩍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위협을 느낀다. 감염자가 급증해서가 아니다. 감염자가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의사에게서 안내문을 받았다. 의사로서의 소견이 적혀 있었는데, ‘감염자가 우리 아파트에도 있다’는 소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의사는 “미나토구 감염자 상황(26일 현재 261명)을 볼 때 우리 아파트에도 자가 격리자가 있을 수 있으니 입주민들 모두 외출을 자제하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감염자 모두를 병원에 입원시킬 수 없어 경증 환자는 자가 격리를 허용했다. 경증 환자가 2주간 별다른 증상 없이 요양하면 회복된 것으로 간주했다.

요미우리신문 자체 조사에 따르면 23일 기준 일본 전체 감염자는 1만3147명, 자가 격리자는 최소 1091명이다. 보건당국은 감염자 정보를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통보해주지 않는다. 경증 환자가 조용히 아파트에서 격리 생활을 하면 이웃은 그 사실을 알 수가 없다. 그가 식재료와 생필품을 사기 위해 외출한다면 걸어 다니는 감염원이 돼버린다.


친하게 지내던 한국인 교민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공고문이 17일 엘리베이터에 붙었는데 그는 22일에야 깨달았다고 했다. 정전 등을 알릴 때와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한 공고문이었기에 그냥 지나쳤단다. 그는 “확진자가 나왔는데 이렇게 조용히 넘어가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의아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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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감염자 관리는 이지메(집단따돌림)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달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교토산업대 학생 3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들이 세미나, 동아리 등에서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면서 약 70명이 집단 감염됐다. 그러자 인근의 한 편의점은 ‘교토산업대 학생 출입 금지’를 써서 출입문에 붙였다. 교직원 자녀들은 유치원에서 당분간 등원하지 말 것을 요구받았다. 학교 측에 “감염된 학생들 죽이러 가겠다” “학교에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 전화와 e메일도 수백 건 도착했다.

집단 감염이 발생한 일본 각지의 병원 직원들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의사가 전근을 위해 이사업체를 부르면 “감염 우려가 있어 직원을 보낼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침구류를 교환하려고 하자 업체가 거부하는 사례도 나왔다. 코로나19 감염자 치료에 목숨을 걸고 나서는 의료인들이 얼마나 힘 빠질지 눈에 선하다.

오사카부의 한 시의원은 페이스북에 “고령자가 보기에 감염자는 살인마처럼 보인다”고 글을 올렸다. 무증상 감염자에게 외출 자제를 호소하려는 목적이겠지만 표현이 부적절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입주민의 감염 사실을 적극적으로 공표할 수 있겠나.

감염 사실을 쉬쉬하다 보면 일본 전체가 피해를 입는다. 감염자 정보가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되면 최대한 위험한 곳을 피해 다닐 수 있는데 일본에선 그게 불가능하다. 감염자와 그 가족들이 죄인처럼 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발열 등 의심 증상이 있어도 병원에 가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그래서 기자는 오늘도 집 밖을 나서기가 두렵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감염자#살인마#이지매#감염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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