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위성정당 ‘4+1’ 공조의 꼼수[오늘과 내일/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3일 03시 00분


與, 비난하던 비례위성정당 검토 착수
명분 없는 진영대결 구도는 식상할 뿐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도 그렇게 비난하던 비례위성정당 창당 검토에 들어갔다. 친문 핵심들은 이제 드러내놓고 비례위성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시기의 문제였을 뿐 자유한국당이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하면서 예고된 일이었다. 총선 후보 등록일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오자 더는 의석수 감소가 뻔한 상황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당은 6년 전 야당 시절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을 철회한 경험이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여야 후보 가릴 것 없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다. 대선 후 국회 정치개혁특위도 결론을 내지 못하자 새누리당은 “책임정치에 반한다”며 기초선거 공천 유지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2014년 안철수는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을 조건으로 민주당과 합당했다. 그러나 친노 주류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그 공약은 폐기됐다. 정치개혁의 명분도 정치적 실리(實利)의 벽을 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여당은 이번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여당과 범여권 군소 야당이 손잡은 ‘4+1’ 협의체가 무기였다. 그러나 협상의 불문율은 깨졌다. 우선 국회법에 명시된 교섭단체 간 협상 원칙이 철저히 무시되면서 제1야당은 배제됐다. 더욱이 선거의 규칙인 선거법까지 강행 처리하는 전례가 없는 전례를 만들었다. 민주세력의 ‘적자’를 자처하는 정파가 ‘수(數)의 정치’에 집착한 것은 자기모순이다. 선거법 강행 처리의 역풍은 여기서 불었다.

‘4+1’ 공조의 포장지를 벗겨보면 입법 거래의 실체가 드러난다. 청와대가 중시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처리하기 위해선 군소 야당의 비례의석을 늘려주는 선거법을 받아야 했다. 총선 이후 청와대를 향한 야당의 거친 공세에 대처하기 위한 포석도 있다. 지난달 친문 핵심 5인방 회동에서도 이런 기류가 감지됐다.

4년 전 20대 총선 결과 제1, 2당의 의석 차는 단 1석이었다.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새누리당에 5석 앞섰지만 비례선거에서 4석을 졌다. 가까스로 1석을 앞섰기 때문에 여당은 국회의장을 차지하는 등 국회 운영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1년 넘게 국회 파행을 무릅쓰면서까지 ‘4+1’ 안건을 강행 처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여당은 원내1당을 놓치는 상황은 떠올리기도 싫을 것이다. 정치개혁으로 포장된 명분보다 ‘정당은 선거를 하기 위해 존재하고, 선거는 이겨야 한다’는 정치권의 불문율이 와 닿았을 것이다.

친문 핵심들은 여당이 아예 미래통합당처럼 비례후보를 내지 않고 별도의 비례정당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친여 성향 단체들이 제안하는 ‘선거연합정당’과 같은 비례정당에 여당과 군소 야당의 비례후보를 연합 공천하자는 내용이다.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처리한 ‘4+1’ 방식을 되살려 보자는 구상이다. 단일 정당이 아니라 진보진영 정파가 연합하는 비례정당이면 미래한국당과 같은 위성정당과 차별화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겠지만 국민들 눈에는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비례의석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는 정의당이나 민생당은 여당의 비례위성정당 추진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4+1’ 1차 공조에선 여당과 군소 야당이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2차 공조는 그럴 만한 대상도 없다. 공통점이 있다면 ‘반(反)보수’ 깃발 정도다. 비례위성정당을 비난해온 과거 발언을 뒤집는 것도 그렇지만 국민들은 해묵은 진영대결 논리에 더 식상해할 것이다. 비례위성정당 ‘4+1’ 시즌2의 미래가 어두운 이유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비례위성정당#연동형 비례대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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