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12월…20대의 하루는 30대의 일주일, 40대의 한 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5일 15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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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시간 미쳤어!(순화시키면 ‘시간이 미친 듯 빨리 간다’, 의역하면 ‘너무 오랜만에 본다’)” 옛 친구들을 만나면 인사치레처럼 주고받는 말이다. ‘먹고사니즘’이 녹록지 않다보니 아무리 자주 보자 다짐해도 1년에 한 두 번이 고작이다. 며칠 전에도 못 본지 한참이 된 친구와 약속을 잡으려 일정을 확인하는데, 달력을 넘기다 그만 화들짝 놀랐다. 왜 뒷장이 없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다음주가 12월이란다. 새해를 빌미로 거창한 인생 계획을 그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는 유독 빨리 간 느낌이다. 실감이 안 나는 나머지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마저 든다. 이쯤 되면 모두가 되짚어보는 질문, ‘나 뭐 했지?’ 그나마 틈틈이 다이어리를 쓰는 기록형 인간이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애꿎은 지난 달력을 넘겨보며 잃어버린 시간의 증빙을 찾는다. 빽빽한 스케줄을 보면 제법 열심히 살았던 것 같긴 한데, 왜 2019년 다이어리 첫 장에 적어놓은 올해의 목표는 여전히 내년의 목표로도 유효한 걸까.

선조들의 말마따나 정말 시간이 ‘쏜 살’ 같다. 생각해보면 작년에도 또 재작년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긴 한데, 어쩐지 해를 거듭할수록 그 느낌이 더 선연하다. 흔히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점점 더 빨리 간다고들 한다. 보통은 그 이유가 어릴 때만큼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뭐든 시작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에 일상에 새로울 게 넘쳐나는 나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진단이 아닐 수 없다. 해를 거듭할수록, 역할이 늘수록,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지니 가는 시간이 아쉬워서가 아닐까 막연히 추측할 뿐. 아직 출산 퀘스트를 완수하지 못한 기혼이기에 더욱이 그럴 지도 모르겠다.

주로 ‘노오력’을 채찍질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말이긴 하지만 ‘20대의 하루는 30대의 일주일, 40대의 한 달과 같다’는 말이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 대 7 대 30인 셈인데, 그렇다면 30대인 나의 하루는 40대의 4.3일(30 나누기 7은 약 4.3이므로)과 같은 것인가, 시답잖은 계산을 하며 제 몫을 다하지 못한 하루를 자조한다. 나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하루가 4.3일과 같은 효용을 지니게 되는 걸까. 얼마나 더 치열해야 나의 이른 30대는, 나의 청춘은, 후회 없던 시절로 기억될 수 있을까.

12월 빼곡히 연말 약속을 잡으면서 주말 하나를 비워본다. 서른하나의 나를 보내주기 위한 ‘셀프송년회’를 가질 심산이다. 나이를 먹는 것 자체에는 큰 감흥이 없지만 이 시기-어느 정도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지닌 30대 초반, 무(無)자녀-의 내가 지나가는 것은 못내 아깝다. 가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으니 그저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잘 하고 있다 대신 잘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 잘 될 것이다 대신 잘 되지 않아도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내 마음의 주인이 나인 이상 우리, 다 괜찮다.

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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