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주의 들끓는 건국 70년, 中 내부에서 책임 목소리도[광화문에서/윤완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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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이 오전 10시(현지 시간)부터 베이징 중심 톈안먼(天安門) 일대에서 시작된 1일. 기자를 비롯한 외신 기자들은 열병식 시작 5시간 반 전인 오전 4시 반경 1차 보안검사를 거친 뒤 베이징 서부 미디어센터에 모였다. 컴컴한 새벽, 교통통제로 텅 빈 도로를 달려 오전 6시경 도착한 톈안먼광장 인근 첸먼(前門). 열병식 참관 장소인 톈안먼광장 맨 앞으로 향하기 위해 2차 보안검사를 통과해야 했다.

런민(人民)일보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매체 기자들은 전날인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미디어센터에 집합했다. 이들이 톈안먼 일대에 도착한 시간은 1일 오전 1시 50분경이었다. 열병식 참가 병사들은 이미 톈안먼을 지나는 창안(長安)대로에 집결했다. 하룻밤을 꼬박 거리에서 지냈지만 표정은 매우 밝았다.

열병식 시작 전 현장에서 만난 중국인들도 벅찬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3만여 관중은 각 지역에서 선발돼 열병식 참관 기회를 얻어 새벽부터 현장에 도착했다. 톈안먼 광장에서 “강한 조국의 군대”를 직접 보는 것은 중국인들의 꿈이었다.

“어떤 세력도 우리 위대한 조국의 지위를 흔들 수 없다”고 선포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에 중국인들은 환호했다. 시 주석이 “70년 전 중국의 건국으로부터 근대 이후 중국의 길고 긴 가난함과 약함, 괴롭힘을 당한 비참한 운명을 철저히 바꿨다”고 말한 것이 의미심장했다. ‘강해진 조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환호는 이제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어떤 나라도 중국을 건드릴 수 없다는 자부심으로 보였다. 그 자부심은 때로 외부 세계에 대한 호전적인 언어로 드러난다.

지금 중국 전역은 ‘인민의 단결’이 가장 중요하다는 애국주의로 들끓고 있다. 국경절 연휴(1∼7일)에 개봉한 애국주의 영화 ‘나와 내 조국’ 등의 흥행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를 떠받친다. 애국주의 자체는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강대국이 져야 할 무거운 책임’도 함께 깨달아 가고 있는지 중국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을 지낸 왕이저우(王逸舟) 베이징대 교수는 인터뷰에서 “민족주의를 잘못 다루면 쇼비니즘(맹목적 애국주의)으로 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한 국가가 괴롭힘을 당한 역사가 있거나 주권 분쟁이 있으면, 민족주의는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남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좋은 외교는 반드시 좋은 내치, 좋은 사회의 기초가 있어야 한다”고 일갈한 그가 주장하는 ‘인(仁)의 사회’로 가는 조건에는 “인민들이 더 개방적이고 호전적인 정서가 없는 사회”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다른 국가들이 중국의 굴기(굴起)에 왜 우려하고 위협을 느끼는지 중국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했다. 중국의 굴기가 갈림길에 놓였다고 한 그는 “높은 산 정상으로 갈수록 풍경이 아름답지만 고산 증세가 심해진다”고 했다. 지금은 과거 중국에는 없었던 문제, 즉 세계 속에서 더 큰 책임과 의무라는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인데, 애국주의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눈을 가리는 게 아닌지 다시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 건국 70주년#톈안먼#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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