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의 스포츠&]문화 ‘스포츠’ 관광부로 개명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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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포츠청(スポ―ツ廳·JAPAN SPORTS AGENCY)은 일본어와 영어 표기가 스포츠로 동일하다. 일본 스포츠청 홈페이지 캡처
일본 스포츠청(スポ―ツ廳·JAPAN SPORTS AGENCY)은 일본어와 영어 표기가 스포츠로 동일하다. 일본 스포츠청 홈페이지 캡처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체육부(1994년)→스포츠레저부(2001년)→스포츠부(2013년∼현재). 필자의 소속 부서명 변경 이력이다. 체육부 기자에서 스포츠레저부 차장을 거쳐 스포츠부 부장을 지냈다. 회사는 부서에 부여한 임무와 시대 변화에 맞게 이름표를 바꿨다.

일제강점기의 잔재는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 질기게 남아 있다. 스포츠계에서는 체육(體育)이라는 용어가 대표적이다. 체육은 일본이 유럽의 근대교육 시스템을 받아들이면서 ‘Physical Education’이라는 교과목을 번역한 말이다.

학생들의 신체활동이 주로 학교에서 이루어지던 1900년대 중반까지도 체육이라는 용어에 아쉬울 게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고도로 분화되고 산업 분야로까지 확대된 다양한 신체활동 현상을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미흡하다.

유엔은 ‘스포츠=신체 단련, 정신 건강, 사회적 유대관계 형성에 기여하는 모든 신체활동’이라는 폭넓은 의미로 정의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스포츠에 대한 정의도 이와 비슷하다.

체육은 원래대로 학교 교과목 이름으로만 쓰는 게 맞지 않을까. 그 밖의 경우에는 글로벌 공통어인 스포츠가 현재로선 가장 적합한 용어다. 디자인, 시스템, TV(텔레비전) 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한민국의 스포츠 정책을 세우고 그 집행을 총괄하는 최상위 행정기관은 문화체육관광부다. 그 명칭의 변천사는 순서대로 외우기도 버거울 정도다.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공보처가 그 모태다. 그 이후 체육 관련 업무를 문교부에서 넘겨받아 문화공보부와 문화체육부, 문화관광부를 거쳐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화관광부 시절에는 스포츠 주무 부처임에도 부처 명칭에서 체육이라는 말이 아예 빠진 적도 있다. 그렇게 자주 부처 이름을 바꾸면서도 체육이라는 명칭 자체에 대한 변화는 한 번도 없었다.

정작 일본은 체육이 아닌 스포츠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문체부는 영어 명칭이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이다. 우리말로는 체육인데, 영어로는 스포츠다. 하지만 일본의 스포츠청(スポ―ツ廳·JAPAN SPORTS AGENCY)은 일본어와 영어 표기가 스포츠로 동일하다. 일본 스포츠청은 2015년 문부과학성의 스포츠-청소년국이 승격, 분리된 것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 효과는 일찌감치 나타났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일본(금 75, 은 56, 동 74)은 한국(금 49, 은 58, 동 70)을 밀어내고, 1994년 히로시마대회에 이어 24년 만에 종합 2위에 올랐다.

최근 문체부는 2018년도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전국 17개 시도의 만 10세부터 70세 이상 어르신까지 연령층에 걸쳐 9000명을 조사한 결과다. 그런데 세부 조사 항목과 대상을 살펴볼 때, 그 명칭은 ‘국민생활체육 실태’보다는 ‘국민생활스포츠 실태’가 적격이다.

실제로 토요 스포츠 활동 참여 여부, 장소, 횟수, 종목 등 많은 항목에서 스포츠라는 용어를 사용해, 체육이란 말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어제 발표된 2018 스포츠산업 실태조사의 담당 부서도 문체부 체육국 스포츠산업과. ‘체육산업’ ‘체육산업과’로는 그 의미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체육은 교육부 발표 자료에 등장했을 때나 어울리는 단어다.

문체부는 지난달 (성)폭력 등 체육계 비리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A4용지 10장 분량의 보도 자료에는 체육 또는 스포츠라는 단어가 어지럽게 섞여 있다. 한 예로 ‘체육계 구조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스포츠혁신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주무 부처가 체육과 스포츠에 대한 개념 정립이 확실치 않으니 스포츠 관련 산하 기관이나 단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체육과 스포츠를 들쭉날쭉 혼용하고 있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기관과 조직, 단체의 이름에는 그 정체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문체부는 그 빛깔(기능)과 향기(역할)에 알맞은 이름은 아닌 듯하다. 체육이라는 용어에 대한 고민 자체가 없었던 걸까. 아니면 부처 개명을 위해 총대 메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던 걸까. 둘 다 문제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이름도 바꾸지 못하면서 과연 대한민국 스포츠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까.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체육#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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