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석훈]국정감사 전 공부 좀 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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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강석훈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가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논란으로 2시간 이상 중단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한 의원이 우리나라 에이즈 감염자의 91.7%가 남성이며 99%가 성관계로 인해 전파된다는 내용의 보건복지부 자료를 질병관리본부장에게 읽어보라고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1초가 아쉬운 국정감사 질의시간에 상식 밖의 일이다.

해당 의원은 아래와 같은 ‘근거’를 내세우며 주장을 폈어야 옳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자료를 보면 매년 신규 에이즈 신고 현황이 공개돼 있다. 이를 그래프로 만들어 보면 남녀별로 신규 에이즈 신고 현황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한눈에도 남자 신고자 수가 여자 신고자의 20배에 달하는 게 명확히 드러나고 있으며 대략 2000년도부터 남자 신고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연맹의 홈페이지 자료에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의 전 세계 신규 감염자 현황이 나란히 공개돼 있다는 점이다. 2000년에 280만 명이었던 신규 감염자 수가 매년 줄어들어 2017년에는 180만 명으로 무려 36%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신규 에이즈 신고자 수가 증가한 점과는 대조적이다. 남자가 800명가량 늘어난 데 비해 여자는 25명 느는 데 그쳤다.

만약 이성 간 접촉으로 전염되었다면 남녀 신고자 수가 비슷해야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남녀 면역체계가 달라서 여성은 잘 안 걸리는 것인지, 여성이 신고를 꺼려서인지가 의심된다면 감염내과 전문의들의 의견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질병관리본부장은 국감장에서 또 다른 질의에 대해 “에이즈는 배우자나 동거자가 아닌 사람과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안전하지 않은 성 접촉으로 생긴다”면서 “콘돔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계속 홍보를 하겠다”고만 말했다. 그 모습이 마치 시원찮은 실적을 눈앞에 들이밀어도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겠다고 답하는 기업 최고경영자처럼 느껴졌다.

국정감사는 피감기관의 업무를 헌법기관인 국회가 점검하고, 미비점을 보완하도록 독려하는 절차다.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주장이 대립한다면 당연히 정확한 통계자료나 전문가의 의견 등 합리적 근거에 따라 논쟁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질병관리본부 국감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국회의원이 국감 절차를 치적 쌓기나 홍보용 절차로만 생각하고 피감인은 그에 짓눌려 정확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수동적인 답변으로 일관한다면 국감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
 
강석훈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국정감사#보건복지위원회#에이즈#질병관리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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