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쟁자에게 기득권 빼앗기지 않으려고 창조적 혁신 방해하는 세력들
권력 정부 기업 모두 혁신차단 행위 못하도록 제도 개혁 급선무
기술특허 기득권 인정하되 일정 기간만 보호함으로써 생산적인 혁신 생태계 구축해야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 경제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혁신성장의 속도감을 주문한 데서 알 수 있듯 실제 혁신은 지지부진하다. 무엇보다 혁신 과정의 핵심인 ‘창조적 파괴’가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이들이 혁신을 막는 데 전력투구했다. 혁신 차단(innovation blocking) 행위의 주체는 권력자, 정부, 기업 등 다양하다. 2000년 전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는 어느 기술자가 아름답고 견고한 유리를 발명하자 그 기술에 탄복하면서도 그를 바로 처형해 버렸다. 새 기술이 황제가 소유한 금의 가치를 떨어뜨릴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명나라 때 서양보다 훨씬 큰 배를 만들 수 있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배를 만드는 자는 사형에 처했다. 큰 배가 황제의 권력을 위협하는 군함으로 돌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부와 권력을 지키려고 직접 혁신 차단에 나선 예들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자동차 기술을 가로막은 유명한 규제, 즉 ‘운전자는 3인, 그중 한 명은 붉은 깃발로 자동차를 선도하고, 도심 운행은 시속 3km로 제한’하는 조치는 철도산업, 마차 소유자, 말 사육업자, 말먹이 건초를 생산하는 농부들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가 이익집단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규제를 통해 혁신 차단에 나선 예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기업이 직접 나선 예도 많다.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은 직류전기 기술의 가치를 지키고자 웨스팅하우스의 교류전기 시스템을 막는 데 사력을 다했다. 특허소송을 추진하고, 교류전기 규제법을 로비한 것은 물론이고 ‘웨스팅하우스하다’라는 단어를 만들어 전기처형을 뜻하는 것이라고 선전함으로써 새 기술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기도 했다.
기업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규제나 세금이 아니라 우월한 기술을 가진 경쟁자의 출현이다. 자영업자들이 저렴한 서비스의 도입을 극력 저지하는 사례부터 큰 기업이 신생 기업의 기술을 탈취해 무력화하는 사례까지 양태도 다양하다. 기업들은 경쟁우위를 유지하려면 다른 이들의 혁신을 차단하거나 아니면 경쟁자보다 한층 더 나은 기술로 혁신을 해야 한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이득이 되는지는 경제 제도, 즉 어떤 행위들을 보상하고 처벌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혁신성장에선 제도 개혁이 필수다. 정부와 기업 모두 혁신 차단 행위를 못하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나 혁신을 위한 규제 개혁은 말잔치고 혁신 차단을 처벌하는 제도들은 솜방망이다. 돈을 쏟아부어도 효과가 신통치 않은 이유다. 한국에서 혁신은 좋은 게 좋은 거다. 기득권을 건드리는 것들을 다 빼고 나면 혁신의 실체는 불분명해진다. 누구를 혁신자라 부른다고 혁신이 되는 건 아니다. 혁신 차단이 아닌 혁신 행위가 일어나도록 유인체계를 확 바꿔줘야 변화가 생기고 속도가 붙는다.
‘혁신은 기업이 하는 것이니 기업을 그냥 놔둬라’는 식의 주장도 그래서 허점이 많다. 그냥 놔두면 최고의 재능이 혁신보다 기득권 지키기에 쓰이는 것이 한국 제도의 현실이다. 정경유착 사태가 그냥 터졌겠는가. 고도성장기에는, 이전의 농지개혁으로 지주계층이 없어진 상태였으므로 농업국가가 산업화되는 것을 가로막는 기득권도 없었다. 새로 기득권을 만드는 과정이 곧 경제 성장이었고, 이를 지켜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인식됐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 기득권이 들어찬 지금, 기득권에 과하게 관대한 제도는 곧 새로운 혁신의 차단을 의미하게 됐다.
그러면 기득권은 모두 없애야 하나. 그렇진 않다. 기술 특허권을 없애거나 반대로 영구 보호하는 양극단보다는 일정 기간만 보호해 주는 것이 지속적 혁신에 도움이 되듯 혁신으로 만들어진 기득권은 일정 범위 내에서 보호해 주는 것이 좋다. 기득권의 생성·소멸 순환을 원활히 하는 최적의 제도를 구현하는 것이 국가의 새로운 역할이 되는 것이다. 어느 분야든 기득권을 과도히 보호하는 규제는 철폐하되 기득권에 목매지 않게 사회 안전망을 마련해 줘야 한다. 또 혁신 차단 행위는 선진국 수준으로 가혹할 정도로 처벌해서 기득권자도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혁신 생태계는 새끼 물고기를 터줏대감 물고기에게 먹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작은 물고기도 큰 물고기가 될 수 있게, 또 다양한 생명체들이 경쟁하고 협력할 수 있게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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