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 소설]<24>최후의 흡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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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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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소설가
이기호 소설가
돈이 많냐고요? 하긴, 그런 질문도 수없이 받아 왔습니다. 이제 담배라는 게 지속적으로 피우긴 좀 어렵지 않습니까? 지금 담배 1갑이 얼마인가요? 그렇죠, 1갑에 25만 원이 맞죠? 제조공장도 대부분 문 닫고, 그냥 상징적으로 한 제품만 나오고… 그것도 구하기 어려우니까…. 그러네요, 어쩌면 제가 매일매일 꾸준히 1갑씩 피우는 최후의 흡연자가 된 게 맞는지도 모르겠네요. 이게 영광인지 상처인지 알 수 없어도….

저요? 저는 사정이 좀 복잡한데… 이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그러니까 201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이야기인데, 네, 맞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일이죠. 그해 겨울의 일이었어요. 제가 또렷이 기억하고 있지요. 그해 크리스마스 다음다음 날 저희 아버님이 돌아가셨으니까, 잘 기억하고 있을 수밖에요…. 아버님요? 저희 아버님은 그날 새벽 편의점에 다녀오시다가 빙판길에 넘어지는 바람에… 뇌중풍에 저체온증으로… 아침 6시쯤인가, 첫 차를 타러 나왔던 여고생에게 발견되었지요. 발견 당시엔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요.

장사 지내고,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한 달 정도 정신없이 보냈던 거 같습니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단둘이 작은 단독주택에서 살던 처지라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던 겨울이었죠. 혼자 눈을 쓸다가 울컥하기도 하고, 오래된 기름보일러를 손보다가 손바닥에 생채기가 나기도 했으니까요. 그게 다 아버지가 혼자 하던 일이었거든요.

한데, 문제는 그다음부터 일어났어요. 은행에서 ‘채무 승계’ 어쩌고 하는 서류가 날아와서 알아보니, 아버지가 집을 담보로 2500만 원 넘게 융자를 받았더라고요. 그건 제가 정말 모르는 돈이었죠. 아버지가 받는 작은 연금하고, 제가 일주일에 두 번씩 결혼식장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로 그럭저럭 살아갔는데, 그렇게 큰돈이 아버지에게 왜 필요했는지 저는 정말 알 수 없었지요. 당장 그 돈을 갚을 여력도 없었고….

네, 맞아요. 몰랐는데, 아버지가 그해 가을부터 담배를 한 보루 두 보루 사재기를 한 거예요. 그 다음해에 담뱃값이 2000원 오른다니까, 이걸 미리 사 두면 돈이 되겠다… 아들 대학원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겠다 생각해서… 융자를 받아서 석 달 동안 무려 1000보루를…. 그걸 저희 집 지하창고에 아무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아 둔 거였죠.

사실 저는 좀 기가 막혔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벌어진 일이고, 아버지는 은행 융자만 남겼으니 제가 해결을 할 수밖에요. 저는 처음에 그걸 다 팔아 버릴 생각이었어요. 그래도 아버지가 고생해서 사 모은 건데, 500원 정도만 더 붙여서 팔자, 지금 팔면 사재기 단속이다 뭐다 살벌하니까, 잠잠해지면 팔자, 그렇게 생각한 거죠.

한데, 기자 양반. 그거 알아요? 담배 밑면에 제조 연월일 다 적혀 있는 거? ‘41021’ 이런 숫자가 담뱃갑마다 다 적혀 있어요. 그건 그러니까 ‘2014년 10월 21일’에 만든 담배라는 뜻이죠. 이게 제 발목을 잡았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 반년 뒤부터 인터넷을 통해 담배를 팔기 시작했는데, 이게 대부분 선수들인지라 담배 밑면을 보고 아예 사지 않는 거예요. 담배도 한 3개월 지나면 맛이 변한다고 하면서…. 이걸 빨리 팔아서 은행 융자를 해결하고 대학원 등록금도 내야 하는데, 어쩌다가 사려고 나선 작자도 1500원에 주면 사겠다고 퉁치고…. 그래서 속이 타서 그때부터 제가 담배를 한 대 두 대 피우기 시작했죠. 그 전에는 담배 한 대 물어 보지 않던 제가….

그렇게 20년이 지났어요.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저에겐 2000갑도 넘는 담배가 남아 있지요. 담배 맛요? 뭐, 저는 이제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좀 누렇게 변했지만, 그럭저럭 피울 맛이 납니다, 허허.

그 세월 동안 때때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20년이란 세월을 선물했구나…. 저는 지금도 담배를 피울 때마다 아버지 생각을 하거든요.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아버지가 사 준 담배니까요. 담배라는 게 원래 없던 생각까지도 만들어 주는 생각 기계 아닙니까? 하루에 적어도 20번은 아버지 생각을 했지요. 그러면서 또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또 아무도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겠구나. 모두 건강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저는 그냥 이렇게 계속 담배를 피우면서 하루 20번씩 누군가를 헛되게 그리워하면서 살아갈 작정입니다. 그게 아마 인류 최후의 흡연자가 해야 할 몫이겠지요.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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