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태원]윤상현의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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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정치부 차장
하태원 정치부 차장
‘박수 칠 때 떠나라’는 금언(金言)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한 사례라 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패색이 짙어 보였던 상황에서 일군 11 대 4의 역전승, 26년 만에 광주·전남지역에서 만들어 낸 감격의 승리, 최대 승부처 수도권 6곳 중 5곳 석권이라는 대박을 터뜨린 뒤 내놓은 ‘쿨’한 성명.

“최선을 다했고 소임을 다했다. 당 혁신에 밀알이 되겠다.”

액면 그대로라면 들고 날 때를 아는 큰 정치인이라 할 수 있겠다. ‘미니총선’이라 불렸던 7·30 재·보궐선거의 개선장군 윤상현은 그렇게 하루 만에 사무총장직(職)을 던졌다. 그러고는 3일 홀연히 출국했다. 8일 복귀하는 그는 “좀 쉬러 갔다”고 한다.

윤상현을 굳이 화두에 올린 것은 그가 보인 일련의 행동에 대해 나오는 다른 해석 때문이다. 5월 중순 황우여 대표 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이완구 원내대표 중심의 비대위 체제가 발족한 뒤 3개월의 ‘임시직’ 사무총장이 된 윤 의원의 사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런데도 선거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보란 듯이 기자들 앞에서 사의를 표명한 것은 무언의 시위 성격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자신이 주도한 공천 과정에서 잡음이 적지 않았고 새누리당의 압승도 야당의 헛발질에 따른 ‘어부지리’라 할 수 있지만 윤상현은 ‘내 기여도를 인정하고 적절한 보상을 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상현은 재선(再選) 의원을 훨씬 뛰어넘는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주목받았다. ‘친박(친박근혜) 핵심’이라는 위치 때문이기도 하다. 숱한 정치인, 고위관료가 박 대통령의 레이저를 맞고 명멸(明滅)할 때도 그는 ‘대통령 누나’와의 끈끈한 관계를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키웠다.

7·14 전당대회에 전격 참석한 박 대통령을 영접하고 중간중간 귀엣말을 나누는 장면을 연출한 것은 윤상현식 ‘친밀도 코스프레’의 극히 일부분이리라. 2012년 대선 승리 직후 박 당선인 사저에 맨 먼저 모습을 드러낸 이도 그였다.

자서전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본 윤상현의 인생은 성공을 쫓아온 뜨거운 욕망 그 자체로 보이기도 한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1985년)에 현직 대통령의 딸과 청와대 영빈관에서 했던 결혼, 차기 대통령이 확실시되던 야당 총재 사위와의 교분 그리고 대선후보 특보 기용, 박 대통령과의 인연 그리고 그 관계를 능가하는 박지만 씨와의 ‘우정’…. 모두 우연이었을까?

‘미국 대학원 유학 시절 인간관계로 신화 창조에 도전하겠다며 20여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유학생들을 집에 데려와 밥을 먹였다’(2005년 저 ‘희망으로 가는 푸른 새벽길’ 중)는 대목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당 출입 기자들보다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이나 사주(社主)를 직접 만나려고 한다니 스스로는 이미 당 대표급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도 ‘비범한’ 윤상현이지만 이번에는 모든 것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돌고 돌아 내심 기대하고 있는 사무총장 자리 제안이 올 수도 있겠지만 고사하는 게 순리라고 본다.

그야 동의하고 싶지 않겠지만 정치인 윤상현 하면 재승박덕(才勝薄德)이란 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새겨야 할 것이다. 번뜩이는 재능으로 많은 성공을 거뒀으니 이제는 믿음을 주는 올곧은 정치인, ‘의리’의 정치인에 도전해 보시라.

지난해 11월 직접 쓴 ‘정치 너머의 세상’이란 책에서 “깨달음에는 때가 있어 그 시기를 놓치면 헛일”이라며 줄탁동기((초+ㅐ,줄)啄同機)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이 그때가 아닐까.

하태원 정치부 차장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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