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마중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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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 아침, 기분 좋은 전화를 받는다. 목요일 아침마다 꼬박꼬박, 빠짐없는 그분의 전화 내용 또한 한결같다.

“오늘 글이 가장 좋아요. 절창이네∼”

글이 좋은지 어쩐지는 솔직히 글 쓰는 본인이 잘 알지만, 그래도 달콤한 칭찬에 기대고 싶어진다. 특히 그분, 소리꾼 장사익 선생의 목소리가 워낙 진정성 있고 호소력이 강해서인지 진짜처럼 들린다.

“이제 그만하셔도 돼요. 전화 안 하셔도 응원해 주시는 거 알아요.”

1년 넘게 계속되는 전화에 고마움을 담아 사양해 보지만 “다음 주 목요일이 기다려져요”라는 넉넉한 답이 돌아온다. 40대 중반에 데뷔한 장 선생도 초기에는 신문에 기사가 나올 때마다 격려전화를 해주시는 분이 있었다고 한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다. 그때 장 선생은 격려전화에 용기백배하면서 ‘나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꼭 이렇게 하리라’라고 결심했었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아, 사는 게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먼 인생길에서 혼자일 때도 있지만 사람들과 손잡고 마음을 나누며 걷기도 한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가 슬그머니 옆길로 새 버리는 사람, 휙 나를 추월해 가는 사람, 넘어뜨리고 가는 사람, 끝까지 동행할 줄 알았는데 서운하게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처럼 한결같기란 그렇게 어렵다. 더구나 요즘같이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늘 그 자리에 있어 주는 사람은 참 귀하다.

마중물이란 말을 처음 알았을 때 그 말이 얼마나 예쁘고 뜻이 깊은지 아름다운 보석을 얻은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 마당에도 펌프가 있어서 물이 잘 안 나올 때는 물 한 바가지 붓고 열심히 펌프질을 했었다. 꾸르륵거리던 펌프에서 이윽고 와르르 물이 쏟아져 나올 때의 그 청량하고 시원한 기분이란! 펌프에 붓는 한 바가지 물이 마중물이라는 것은 아주 나중에 알았다.

지하에 고인 물을 마중하여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마중물. 자신이 받았던 격려와 위안을 잊지 않고 나에게 돌려주는 장사익 선생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배려를 돌려주고 싶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도 또 다른 이에게 릴레이 해 줄 것이고 그렇게 서로서로 끌어올려 준다면 외로운 세상에서도 목마르지 않고 따뜻한 동행은 계속될 것이다. 누군가의 마중물이 되어 준다는 것, 그저 한 바가지의 마음만 있으면 가능하다.

윤세영 수필가
#격려#마중물#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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