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상처와 치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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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점점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전에는 어떤 것에 대하여 명확한 답이 있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딱 떨어지는 답을 말하기가 점점 어렵다. 그런데 단짝 친구가 “얘, 요새 나는 무슨 말을 들어도 다 일리가 있어서 큰일이야”라고 말해서 얼마나 반갑던지. 나 역시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어져서 ‘이렇게 물렁해져도 되나?’ 염려되던 참이었다.

내 친구는 유별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느라 녹초가 되었다. 오죽하면 “난 ‘착하다’고 칭찬받는 게 너무 듣기 싫어”라는 말을 했었다. 까다로운 분을 떠맡기고 ‘착한 며느리’라는 말로 때우는 사람들의 속내가 들여다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안타까워서 “너 100점 맞으려고 하지 마라. 그러다 지친다”라는 말을 했었다.

그런 시어머니가 몇 년째 치매증세로 요양원에 계신다. 이제는 거의 모든 기억이 다 지워졌는데도 며느리만 기다린다고 했다. 얼마 전 요양원에 다녀온 친구가 말했다. “나 처음으로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말했어. 그랬더니 ‘에미가 나 사랑해?’라고 재차 물으며 어린애같이 좋아하시더라. 나는 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거든. 그런데 진심으로 그런 마음이 생겨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지 않고 내게 그런 시간을 주신 게 감사했어.”

친구의 말에 눈물이 나올 뻔했다. 비로소 시어머니와 아니, 자기 자신과 화해한 친구, 그것에 이르기까지 이삼십년이 걸렸으니 그동안 내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 친구의 상처가 치유된 것이 기뻐서 나는 친구가 싫어한다는 그 말을 기어이 하고야 말았다.

“역시 넌 정말 착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상처가 생긴다. 사람마다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이 부딪치면 여린 쪽이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고부간이든 친구 간이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다. 그래서 영리한 요즘 사람들은 가까운 관계를 맺는 걸 두려워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가깝게 다가가 깊이 들어가 보지 않고 사람을 안다 할 수 없고, 한평생 살면서 주변에 정말로 좋은 사람 몇 명 없다면 제대로 살았다 할 수 있을까.

수없이 상처받은 긴 세월을 사랑으로 치유한 내 친구. 가장 이해할 수 없던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으니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으며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윤세영 수필가
#시어머니#며느리#치매#상처#치유#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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