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 소설]<5>안흥리 조기축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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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소설가
이기호 소설가
강원도 P읍에서 송아지도 기르고 포도도 재배하는 친구 상필이가, 초겨울이 되고부터는 사흘에 한 번꼴로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야, 한번 내려와야지. 못 본 지 벌써 몇 해야?”

가만가만 손가락으로 꼽아보니 햇수로 사 년쯤 된 듯싶다. 고교 때부터 어울렸던 몇몇 친구들과 부부 동반으로 상필이네 집 앞마당에 텐트를 치고 여름휴가를 즐겼던 것이.

그때 상필이네 집 앞마당에 우수수 쏟아지는 별을 보며 친구들은 저마다 “야, 여기서 아예 터 잡고 살고 싶네.” 한 마디씩 던졌다. 그만큼 바람도 좋고, 나무도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바람이 좋다고, 나무가 좋다고 해서 그곳에 자리 잡을 수는 없는 법. 우리에겐 서울에서의 질서가 타이머 다된 전기밥솥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글쎄 말이야, 한번 간다고 하면서도… 이게 말처럼 쉽지 않네. 애들도 주말엔 학원을 간다 하고….”

“그냥 너 혼자 잠깐 왔다 가면 안 돼? 보여줄 것도 있는데….”

나는 상필이의 말에 “그래, 그래, 시간 한번 내볼게”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이내 통화 내용은 깡그리 잊은 채, 금요일까지 제출할 신상품 홍보 전략 기획 워크시트를 작성하느라 분주했다. 별이 다 뭐냐, 부장한테서 깨질 때마다 잠시 허공을 스쳐지나가는 게 별이더냐. 나는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12월 하순쯤이던가, 서울에 사는 고교 동창들과 망년회를 한답시고 모였을 때, 다시 한번 상필이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알고 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 모두 그즈음 계속 상필이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진짜 뭔 일 있는 거 아니야?”

몇몇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궁금해하자, 우리들 중 유일하게 피자 가게를 운영하며 사장님 소리를 듣는 성원이가 손사래를 치며 나섰다.

“일은 젠장… 거, 괜히 쓸데없는 일로 바쁜 사람 불러내고….”

사정을 들어 보니 성원이는 이미 열흘 전, 상필이의 전화에 시달리다 못해 강원도까지 한 번 갔다 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별 희한한 꼴’을 다 보았다는 것이다.

“걔가 보여준다는 게… 그게 자기네 마을 조기축구회더라구.”

“조기축구회? 그게 뭐 대수라고?”

“내 말이 그 말 아니냐? 시골 아저씨들이 조기축구에 미쳐서 애들 초등학교에 인조잔디까지 깔고, 유니폼은 레알 마드리드 거 그대로 갖다 입고….”

우리들은 성원이의 말에 낄낄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무언가 심각한 일인 줄 알았는데, 그냥 모든 게 농담인 것으로 판명 난 느낌이었다.

“거기에 더 가관인 게… 이게 말만 조기축구지, 아침부터 시작해서 점심때까지 계속 끝나지 않는 거야. 세 게임, 네 게임, 계속.”

“아니, 그러면 송아지는 누가 돌보고?”

“송아지도 나와서 구경하고 있더라. 아이들도 아주머니들도 동네 사람들 전부 다.”

성원이의 그 말에 우리는 다시 떠들썩하게 웃을 수 있었다. 이거 우리가 팀을 만들어서 원정시합이라도 한번 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면서 계속 그런 농담을 했을 뿐, 그 마을 사람들이 왜 그토록 열심히 조기축구에 매진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은 게 맞았다. 그저 모두가 ‘레알?’ ‘레알?’거리며 장난처럼 여겼을 뿐.

사정을 조금 더 자세하게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다시 두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니, 아내가 그날 점심 무렵에 받은 전화에 대해서 얘기했다. 포도 주문 때문에 몇 번 통화한 적 있던 상필이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거, 그 마을 사정이 좀 딱한 가봐.”

“딱하긴 무슨…. 맨날 축구만 하는 사람들인데.”

“그게 아니고…그게 다 그 마을 초등학교가 폐교된다고, 그래서….”

“폐교?”

“그래. 그래서 남자들이 돈 걷어서 학교에 잔디도 깔고, 맨날 학교 들썩거리게 운동도 하고 그랬는데…그래도 이사 오는 사람들이 없어서…. 결국 그렇다나 봐.”

“그럼 그게 다 폐교 막으려고 그랬던 거라구?”

“상필 씨는 친구들 중 몇 명이라도 이사를 오지 않을까, 기대한 눈치더라구. 어쩜, 그렇게 순진하지? 거기가 어디라고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를 가? 안 그래?”

나는 아내의 말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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