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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김재영]가벼워진 ‘열사’ 호칭

입력 2014-01-06 03:00업데이트 2014-01-0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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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무슨 과(科) 의사(醫師)예요?” 유치원생 아들 녀석의 질문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의사(義士)와 열사(烈士)는 법적 용어는 아니지만 독립유공자에게 널리 사용하는 존칭이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의사는 ‘성패와 관계없이 목숨을 걸고 무력으로 적에 대한 거사를 결행한 사람’이다.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대표적이다. 열사는 ‘무력적 행동 대신 강력한 죽음으로 정신적 저항의 뜻을 발현한 사람’이다. 이준 유관순 열사가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 순국선열에게만 열사의 호칭이 부여된 것은 아니다.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맞서 3·15의거 당시 산화한 김주열 열사는 4·19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1970년 서울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노동운동에 불을 붙였다. 1970, 80년대 엄혹한 독재정권하에서 수없는 밤을 고민하며 스스로의 몸을 내던진 분들에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분노와 추모의 뜻을 담아 기꺼이 열사라는 이름을 올렸다.

▷민주화 이후에도 열사는 줄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시위현장의 분신과 자살에 관행적으로 열사 칭호가 붙기 시작했다. 그들이 평소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죽음은 절대화되고, 뭇 사람들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투쟁의 돌파구 역할을 했다. 엉뚱한 열사도 나왔다. 지난해 6월 광화문광장의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제’에는 6·25전쟁 당시 빨치산, 휴전 후 남파 간첩 등이 대거 포함됐다.

▷지난해 12월 31일 서울역 앞 고가도로 위에서 분신한 이남종 씨가 1일 오전 숨졌다. 민족민주열사추모단체와 진보연대, 예수살기 등의 단체들은 “이 씨의 분신은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에 항거한 것”이라며 ‘민주투사 이남종 열사 민주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광주 북구 망월동 민주열사묘역에 안장했다. 죽음에 경중이 있을 수 없고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열사’라는 호칭에는 갸웃거려진다. ‘시민’ ‘노동자’라고 부르면 망자를 모독하는 것인가. 열사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졌다.

김재영 사회부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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