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진짜 바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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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군의 한 농장에서 팔자 좋은 개 한 마리를 보았다. 목줄을 매놓지 않아 넓은 농장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무공해 식품을 먹고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상팔자였다. 그러나 이 개 ‘말리’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안내견 학교에서 퇴출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이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다는 게 농장 주인의 말이다. 비록 낙제는 했을망정 원래 우수한 품종(레트리버)인 데다 명문학교 출신이라 말귀도 잘 알아듣고 점잖고 순해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왼발!”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개에게 시험 삼아 말을 건네자 즉각 왼발을 내밀었다. 이를 보고 재미를 붙인 옆 사람이 “오른발!”이라고 명령을 내리자 이번에는 꼼짝도 안 했다. 이래서 낙제를 했나 싶어 주인을 바라보자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얘가 오른쪽으로 누워 있을 때 오른발을 달라고 하거나 왼쪽으로 누워 있을 때 왼발을 달라고 하면 딴청을 피워요. 몸을 일으켜 발을 빼기가 귀찮다 이거죠.”

순간, 사람들 사이에 웃음이 번졌다. 우리 일행은 어쩌면 이 개야말로 진짜 영리한 개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동료들은 지금쯤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고 도시에서 수고하고 있을 텐데 낙제한 덕분에 이 개는 공기 좋은 자연에서 자유를 구가하고 있다. 혹시 일부러 능청을 떨고 낙제한, 알고 보면 진짜 우수한 개가 아닐까?

얼마 전에 ‘사과의 기적’이란 책을 읽었다. 일본의 사과산지로 유명한 아오모리 현에서 무공해 사과농사를 짓는 농부의 이야기였다. 그 책을 읽으며 알았지만 과수농사 가운데 사과 농사는 농약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한 농부가 실패를 거듭하다가 9년 만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공해 사과를 생산하는 불가능의 기적을 이뤘다. 성공의 비결을 물었을 때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보로 살면 돼요. 난 아무것도 한 게 없고 자연이 하는 일을 옆에서 거들었을 뿐입니다.”

결국 사과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사과나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 농부가 진짜 바보일까? 자연 앞에서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겸허해졌을 때 농부는 해답을 얻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사과 한 개도 만들어낼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모르고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더 바보일까? 그 답을 모른다면 그 사람이 진짜 바보일 것이다.

윤세영 수필가
#바보#욕심#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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