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사흘만 들을 수 있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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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의 책 ‘사흘만 볼 수 있다면’처럼 나도 사흘만 들을 수 있다면, 장사익 선생님의 노래를 꼭 듣고 싶어요.”

친한 분을 통하여 테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진 청각장애인의 편지를 접하게 되었다. 10여 년 전에 그녀는 친구 손에 이끌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장사익 콘서트에 갔는데 비록 소리를 듣지는 못하지만 열창하는 모습에서 “소리를 보았다”고 했다. 그 이후, 사흘만 들을 수 있다면 장 선생님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무시로 장 선생님의 노래를 듣는 나로서는 참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내게는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망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궁리를 했다. 장 선생에게 그 사연을 이야기하고 테레사와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마침내 우리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어렸을 적 그녀의 꿈은 성악가였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장 선생은 그녀에게 노래를 한번 불러볼 수 있겠느냐고 청했다. 그녀는 “열 살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아 아는 노래가 없다”며 사양하다 아주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가며 상기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놀랍게도 50대인 그녀의 목소리는 청각이 멈춘 그때, 열 살 소녀의 목소리 그대로였다. 음정과 박자는 틀려도 동요대회에 나온 초등학생처럼 두 손을 모으고 정성껏 부르는 노래가 얼마나 맑고 순수한지 가슴이 저렸다.

이윽고 장 선생이 화답하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한 발 한 발 마치 노래가 자신을 끌어당기기라도 하는 양 조심스럽게 장 선생에게 다가가더니 갸웃이 귀를 기울이고 서는 게 아닌가. 기쁨에 찬 그 얼굴이 천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천사의 표정 같았다.

그날 그녀는 장 선생과 모임을 주선한 나에게 몇 번이나 행복하다며 감사를 표했지만 정작 감동한 사람은 나였다. 들리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 부르는 노래와 들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성스럽고 간절하게 듣고자 하는 모습은 큰 감동이었다. 200년 전 베토벤도 그랬을까? 말년에 자신의 교향곡을 지휘할 때 그는 귀가 아니라 눈과 마음으로 음악을 들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진정 보려고 하고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간절한 소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세영 수필가
#청각장애인#장사익#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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