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하태원]한일관계와 朴대통령에게 쏠린 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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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논설위원
하태원 논설위원
2011년 시작해 3년째 진행 중인 한일 대화 채널이 있다. 양국 외교부 산하인 국제교류재단(한국)과 국제문제연구소(일본)가 주최하는 ‘한일 저널리스트 다이얼로그’다. 중견기자 30여 명이 합숙하며 3박 4일간 오로지 한일관계만 놓고 토론한다. 외부에는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밝히지 않는 규칙 덕분에 ‘박 터지게’ 싸우는 경우도 많다. 기자가 추구해야 할 궁극의 가치는 ‘사실(팩트)’이라고 다짐하지만 서로의 가슴속 깊은 곳에는 결국 태극기와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한다.

구면이 많아 반갑게 악수했지만 긴장감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지난해 서울에서 만났을 때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요구 발언, 올림픽 축구에서의 ‘독도 세리머니’, 한일 외교마찰 등으로 얼굴을 붉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1년 외교 부재의 공백을 슬금슬금 채운 것은 상호불신이었다. 일제강점기 민간인 강제 징용자와 위안부 배상과 관련한 한국 사법부의 판단을 일본 기자들은 ‘1965년 체제’를 깨려는 시도로 믿었다. 야스쿠니 신사에 화염병을 던진 류창을 일본이 아닌 중국으로 보낸 것이나, 쓰시마 섬에서 훔쳐간 불상을 반환하지 말라고 한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대해서는 ‘한국=무법국가’라고 인식했다.

도쿄 올림픽 유치 결정 직전 한국이 후쿠시마산(産) 수산물에 대해 내린 금수 조치도 도마에 올랐다. 일본 기자들은 일본이 잘되는 게 배가 아파 재를 뿌린 것으로 확신하는 듯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주요 당국자들과 만나 일본의 역사인식을 비난한 데 대해서는 “담임선생한테 고자질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중국과 밀월관계에 나선 듯한 한국 정부에 대한 섭섭함도 묻어났다.

아베 신조 정권이 돌이킬 수 없는 우경화 경향을 넘어 군국주의의 부활로 옮아가고 있다는 한국의 지적에는 과민반응이라는 설명이 많았다. “절대로 그렇지 않고 꿈도 꾸지 않는다. 몽상(夢想)이라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아베는 적극적 평화주의자”라고 강변한 참석자도 있었다. 아베 총리에겐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만 있는 게 아니라 친할아버지 아베 간도 있다고 강조했다. 기시가 일본 침략 DNA의 상징이라면 아베 간은 반전과 평화의 편에 섰던 인물이라는 것. 하지만 우리는 아베 총리가 외할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친할아버지가 ‘롤 모델’이란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아베 총리의 숫자정치에 대한 해명도 나왔다. 프로야구 시구 때 입고 나온 등번호 96은 헌법 96조 개정이 아니라 96대 총리를 상징한다는 설명은 그렇다 치자. ‘731’호 훈련기에 탑승한 아베 총리를 두둔한다며 “도쿄대 주소가 7-3-1이다. 도쿄대도 생체실험과 연결지을 것인가”라는 반문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백보 양보해 우연의 일치라고 해도 가장 반인륜적인 부대의 번호가 쓰여 있는 훈련기를 타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린 퍼포먼스는 사려 깊은 행동은 아니다. 일본 측으로부터 조선 왕실에 무단 침입해 국모를 시해한 사건 등은 명백한 침략 행위라는 수긍도 있었지만 “역사 인식은 어떤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일본의 통념으로 보였다.

역사의 진정한 화해를 뒤로 미루고 한일관계 복원의 실리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일본이 무릎 꿇을 때까지 초강경 대일외교를 계속할 것인가…. 논란이 있긴 하지만 최소한 지한파(知韓派) 중에는 박 대통령의 결단이 열쇠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듯했다. ―지바에서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한일#박근혜#독도#아베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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