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저온 경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3일 22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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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西安 8조 투자에 공들인 중국
대통령은 “투자자 업어주라” 하지만
냉기와 공포에 휩싸인 기업현장

甲을 압박했더니 乙은 살아나던가
경제민주화로 창조경제 싹트던가
경제 온도 1, 2도라도 올려보라


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도 150일이 되었다. 이 5개월에 임기 5년의 경제 밑그림은 그려졌는가. 취임사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부흥을 이루고, 국민이 행복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겠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길로 들어서고 있는가. 부흥을 위한 성장, 기적을 위한 신명은 살아나고 있는가. 현실은 안타깝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방중 기간에 베이징에서 1200km 떨어진 산시(陝西) 성 시안(西安)을 방문했다. 중국 서부대개발의 거점인 그곳에 건설되고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도 둘러보았다. 투자 규모 8조 원에, 함께 진출할 협력업체 160여 개를 포함해 예상 일자리 2만 개의 초대형 공장이다.

시안 하이테크개발구 일대에는 ‘삼성과 손잡고 함께 윈윈하자(携手三星 合作共영)’고 쓴 깃발이 많이 펄럭이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신문 런민(人民)일보는 이달 15일 “삼성전자가 완공을 앞두고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고 있다”고 칭찬하는 당국자의 말도 소개하며 공장 건설 상황에 우호적 관심을 보였다. 중국 중앙 및 지방 당국은 삼성의 투자를 확정하기 위해 각종 인프라와 세금 등에서 특별하고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중국은 지난달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미를 계기로 ‘신형 대국(大國)관계’를 제창했다. 세계질서 관리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것인데, 미국 추월을 예고하는 경제력(국내총생산)의 뒷받침 없이는 꿈도 못 꿀 도전이다. 서부대개발에 한국 최고기업을 유치하려고 심혈을 기울인 것도 경제성장 없이는 중국 굴기(굴起·솟아오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경제성장을 멈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다시 별 볼 일 없는 변방국가로 전락하고, 북한의 위협을 감당하기도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국가보다 국민이 먼저”라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성장 없이 나랏빚도 개인 빚도 늘어만 가는 경제라면 국민행복은 허구일 뿐이다. 부도위기에 내몰린 남유럽 국가들이 잘 보여주고 있는 진실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투자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고 했고, 규제 완화도 거듭 강조했다. “이들(기업 투자자들)이 정말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고, 소비도 활성화하며,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들이 기업 활동과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없도록 우리(정부)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은 모범 답안이다.

문제는 정책 현장의 실제 상황이다. 대통령이 회의 때마다, 가는 데마다 바른말을 해도 말에 생명을 불어넣는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경제 부흥도, 한강의 기적도 메아리 없는 구호로 사라질 것이다. 말을 현실로 바꿔내지 못한다면 대통령의 화려한 어록들은 5년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삭제(delete)되고 ‘인터넷 속의 천덕꾸러기’나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150일 전 취임사에서 “경제 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가겠다”고 했고,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했다. 지금쯤 정부는 되돌아봐야 한다. 정녕 국가와 국민의 장래를 위한다면 치열하게 반성적 성찰을 해야 한다.

경제민주화가 창조경제의 꽃망울을 맺게 하고 있는가. 기업들이 이른바 경제민주화법에, 세무조사에, 공정위 과징금과 검찰 고발 공포에 주눅 들어 있는데 창조경제의 홀씨들이 날아다니던가. 사람들을 16도 냉탕에 몰아넣었다가 입술이 새파래지고 신체 마비까지 온 뒤에 40도 온탕에도 들어오라고 손짓하면 금세 화색이 돌고 힘이 펄펄 나겠는가. 기업도 사람과 같다. 인과(因果)를 통찰하지 않는 마구잡이 경제민주화로 잠시 ‘평등 힐링’을 하면 창조경제가 되겠던가. 을(乙)을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갑(甲)을 압박했더니 을은 살아나던가.

정권 초기에는 정치가 강해지고 정책 권력도 힘이 넘친다. 이럴 때는 정치와 정책 권력이 칼 빼기를 최대한 자제해도 기업과 시장은 엎드린다. 국세청 검찰 공정위 감사원 등이 장검·단도·송곳 할 것 없이 꺼내 휘두르면 기업이 혼비백산하고 돈이 숨고 소비도 얼어붙는다. 온기 아닌 냉기가 흐르는 경제로 부흥과 기적을 꿈꾼다면 헛꿈이다. 죄 지은 일이 없으면 세무조사를 한들, 공정위 조사를 한들 겁낼 게 뭐냐고? 만약 이렇게 들이대는 당국자가 있다면 다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경제와 기업과 시장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독선가이거나, 을을 위할 생각은 애당초 없는 위선적 갑이거나….

정부가 할 일은 경제의 복합위기를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난마 같은 위기의 반전 계기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한강의 새 기적까지는 아닐지라도 경제온도를 단 1, 2도라도 올리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할 마음을 살려내고 경제할 사람들이 뛸 수 있도록 북돋워야 한다. 병 주고 약 주는 정부는 나쁘다. “같이 죽지 뭐” 하는 냉소가 계속 퍼진다면 대한민국 경제가 정말 위험하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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