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현진]명품이라 미안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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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산업부 기자
김현진 산업부 기자
이른바 ‘명품’이라 불리는 해외 유명 브랜드에서 근무하는 A 씨는 기자에게 종종 “억울하다”고 했다. 이 업계는 화려하기만 할 것이라는, 그리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허영심이 강할 것이라는 오해 때문이었다.

이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은 A 씨가 온갖 것에 간섭하며 ‘갑(甲)질’을 하는 본사 눈치 보기가 얼마나 곤혹스러운지, 또 본사와 시차를 맞춰 일하느라 별 보며 퇴근하는 일이 얼마나 잦은지 모른다. 그런데도 그가 이렇게 몸 바쳐 일하는 브랜드는 시시때때로 사치를 조장하는 ‘된장녀’ 브랜드로 찍힌다. A 씨는 종종 “명품 업체에서 일해 미안하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기도, “신문들이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써서 대중의 인식이 나빠진 것”이라고 언론 탓을 하기도 했다.

기자도 A 씨에게 “신문도 할 말이 있다”고 항변했다. 명품 업체들은 신제품이나 컬렉션 소식은 다뤄지길 원하면서도, 민감한 뉴스나 비즈니스적인 팩트에 대해선 “브랜드 방침상 밝힐 수 없다”며 싸늘하게 돌아섰다. “희소성이 중요하니 대중매체인 신문은 우리 브랜드에 대해 안 다뤘음 좋겠다”면서 남녀노소가 다 보는 포털사이트에는 배너 광고를 싣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럭셔리 브랜드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기자는 단편적으로나마 명품 업계의 여러 단면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논문을 쓰느라 몇 차례 드나든 루이뷔통 파리 본사의 분위기는 너무나 진지해 명품의 ‘싱크탱크’ 같은 느낌이었다. 파리의 샤넬 매장에서 인턴을 할 때는 “이 핸드백 좀 빨리 가져오지 못해?”를 외치는 ‘진상’ 고객을 노련한 판매원이 재치 있게 응대하는 모습을 봤다. 명품 업계는 화려하기보다는 치열해 보였다.

‘대한민국 명품 30년’을 짚은 기사가 동아일보 주말판 커버스토리로 보도되자마자 A 씨가 기자에게 연락을 해 왔다. 그는 “이제야 명품이 하나의 산업 영역으로 제대로 인정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명품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인식이 생각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곤 조바심도 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소득 수준과 거주 지역을 따지지 않고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70%는 명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명품의 대중화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였다. 30년간 이 업계에 가장 감성적으로 반응하며 과열된 소비 양상을 빚었던 한국인들은 가치 소비 트렌드가 번지면서 이제 가장 이성적으로 돌변하고 있다. 설문에서도 ‘명품이 대단한 존재로 느껴지지 않고 거품이 끼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한 사람이 많았다.

명품 업체가 가장 중시하는 핵심 가치는 ‘소비자를 계속 꿈꾸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성숙한 한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명품의 꿈’은 추앙이라기보다는 존경의 형태로 발전될 것 같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소비문화와 함께해 온 명품 브랜드들이 앞으로 30년 이상 존경받는 브랜드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현진 산업부 기자 bright@donga.com
#명품#소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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