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헌재소장 빈자리 방치는 헌법 무시

  • 동아일보

박근혜 정부의 주요 인사는 마무리됐지만 헌법재판소장 인선은 감감무소식이다. 지난달 13일 도덕성 문제로 사퇴한 이동흡 전 헌재소장 후보자 이후 후임을 여태 지명하지 않고 있다. 이강국 소장이 올해 1월 21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이후 50일 넘게 헌재소장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다.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송두환 재판관은 22일 퇴임한다. 아직 그의 후임도 정해지지 않고 있다. 송 재판관마저 떠나고 나면 헌재에는 9명의 재판관(소장 포함) 중 7명만 남게 된다. 위헌 결정 같은 중요한 선고를 하려면 재판관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기능 마비 상태에 빠진다. 재판관 2명이 모자라면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각하 여부를 판단하는 제1, 제2 지정재판부 역시 파행이 불가피하다. ‘식물 헌재’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헌재는 이 소장이 퇴임한 뒤 재판관 8인 체제로 운영하던 2월부터 위헌 헌법불합치 한정합헌 한정위헌 같은 결정이 나올 수 있는 중요한 사건들을 뒤로 미뤘다.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선고하는 관례를 깨고 3월 선고일은 송 재판관이 퇴임하기 직전인 셋째 주 목요일(21일)로 앞당겼다. 3월 선고 때도 2월과 마찬가지로 위헌 여부 등 중요하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제외한다고 한다.

헌법은 9명의 재판관으로 헌재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의 임기 만료일 또는 정년 도래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소장 자리를 비워두는 것이나 송 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하지 않는 것은 헌법과 헌법재판소법 위반이다. 정치권의 헌재 경시는 이번만이 아니다. 2006년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 파동 때는 140여 일간 소장 자리가 비어있었고, 2011년 조용환 재판관 후보자 파동 때는 14개월 넘게 재판관 자리가 공석이었다.

헌재는 헌법소원과 위헌심판 청구 등을 통해 국민 기본권을 보장해 주는 기관이다. 지금 헌재에는 휴대전화 번호 010 통합의 위헌 여부, 긴급조치 1호 2호 9호 헌법소원 사건 등 중요 사건들이 산적해 있다. 헌재를 기능 마비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인 동시에 헌법 재판을 무시하는 일이다. 지금 새 헌재소장 후보자와 송 재판관 후임을 지명한다고 해도 국회의 인사청문 절차를 감안하면 정식 임명까지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두 자리 모두 대통령 지명 몫이다. 박 대통령은 후임자 지명을 서둘러 헌재의 정상화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헌법재판소장#인사#이동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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