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각 국무회의,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했다

  • 동아일보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국무회의에서 “북한이 연일 전쟁을 위협하고 있는 위기 상황인데 안보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는 국가안보실장과 국방부 장관이 공백이고, 국가정보원도 마비 상태”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 닷새 뒤인 3월 2일에야 국정원장을 내정해 놓고 이제 와서 “국정원도 마비 상태”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한순간의 공백도 허용되지 않는 국정원의 정보와 공작 활동이 마비 상태라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는 야당에 대한 압박의 의미도 들어있겠지만 남의 일처럼 말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국정원에 비상을 걸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엄중한 모두(冒頭) 발언 뒤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한 안건은 과다 노출 시 5만 원 범칙금 부과 같은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등 15개 안건뿐이었다. 새 정부 출범 보름 만에 장관 13명만 가까스로 임명한 뒤의 지각 국무회의에서, 그것도 안보라인은 공백이고 국정원까지 마비된 상황에서 처리한 안건치고는 한가한 편이다.

청와대는 “국무회의에서 긴급하게 의결해야 할 안건이 없었다”며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 안정감을 준다고 판단해 임명장 수여 뒤 곧바로 국무회의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보고는 민방위 제도와 훈련을 담당하는 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의 포항 산불 관련 대응 조치 정도였다. 그러나 국민은 불안한 민심을 안심시키기 위한 조치라도 내놓길 기다렸다.

북한이 공언한 남북불가침협정 백지화 시점을 하루 앞둔 그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에는 ‘긴급. 전국 교육청, 북한 도발…전국 초·중·고·대학교 일시적 휴교 및 대응체제 안내’라는 뜬소문이 나돌아 언론사에 문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근거 없는 ‘괴담’을 퍼뜨리는 쪽도 무책임하지만 “사실무근”이라며 가볍게 넘어간 교육당국 역시 안이하다. 안전행정부로 이름이 바뀔 부처는 물론이고 정부 내 어느 누구도 이런 상황에 대한 대응 안내를 해주지 않으니 엉뚱한 괴담이 퍼지는 것이다.

더구나 군은 3년 전 천안함 폭침일(26일)을 ‘국군 치욕의 날’로 명명하며 뼈를 깎는 각오로 전력 보강과 군 개혁을 다짐했지만 주요 대책들은 아예 취소된 상태다. 천안함과 동급인 초계함과 호위함 30여 척의 수중탐지기를 신형 소나로 교체해 북한군의 잠수정 침투나 어뢰 공격에 대비한다던 계획은 기술과 예산 때문에 없던 일이 됐다. 상부지휘구조 개편과 합동성 강화를 뼈대로 한 국방개혁은 군 안팎에서 찬반 논란만 벌이다 자동 폐기됐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지금 북한 동향이 심상치 않은데 연평도 주민과 국민의 안전을 각별히 유의해서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이 지시가 공허하게 들리지 않으려면 정부가 합심해 전력 보강과 군 개혁부터 챙겨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국무회의#국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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