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형준]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7일 03시 00분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대통령 선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번 대선은 여 대 야, 진보 대 보수, 영남 대 호남, 젊은 세대 대 기성 세대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팽팽한 양강(兩强)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역대 대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참으로 희한하고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부동층 30%대 붙잡기 싸움

첫째, 링 위에서 기량을 겨루는 선수들보다 링 밖에서 관전하는 사람이 판을 주도하고 있다. 제1야당 후보가 장외(場外)의 사퇴한 후보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참담한 일도 발생하고 있다. 여야 대선후보들이 강하지 못해 상황을 주도하는 능동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 대선 TV토론에서 지지율이 1%에도 못 미치는 소수당 급진 후보의 무례하고 거칠며 균형 잃은 일방적 주장에 여야 빅2 후보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해괴한 일도 벌어졌다.

둘째, 산 사람보다는 오히려 죽은 사람이 주목받는 ‘유령 대선’이 되고 있다. 여야 후보는 사라지고 ‘박정희 대 노무현’ ‘독재자의 딸 대 노무현의 후계자’라는 비정상적인 구도가 힘을 받고 있다.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미래로 나아가야 할 대선이 ‘과거 대 과거’의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거꾸로 가고 있다. 여야 후보들이 안고 있는 숙명과 운명으로 인해 이런 구도가 만들어진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하지만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가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박 후보는 권위주의에 매몰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명적 약점이었던 민주성을 강화해 ‘민주적 박정희’로 거듭났어야 했다. 반면, 문 후보는 대결의 정치에 앞장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취약했던 포용성을 강화해 ‘합리적 노무현’으로 탈바꿈했어야 했다. 두 후보의 과감한 변신이 없었기 때문에 새 정치를 모태로 하는 ‘안철수 현상’이 소멸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셋째, 유력 대선후보들이 반성하고 무한 책임을 지는 모습보다는 자기모순과 무책임의 구호 정치에 빠져 있다.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MB) 정부도 민생에 실패했다”면서 “과거 정권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과 정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야권이 제기하는 ‘이명박 정부 실패 공동 책임론’에 적절히 대응하고, 의도적으로 MB와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적 고육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박 후보가 그동안 강조했던 원칙의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선거는 본질적으로 심판하는 것이다. 현 정부를 민생 실패 정부로 규정하면 집권당 후보는 당연히 심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만약 야당이 “MB 정부가 민생을 챙기지 못한 근본 이유는 집권당이 허구한 날 친이, 친박으로 나눠져 계파 싸움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공격한다면 어떻게 책임을 면할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박 후보의 주장은 반성과 성찰이 없는 자기중심적 발상이다.

서민 눈물 닦아주는 후보가 승리

문재인 후보는 “새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을 이번 선거의 핵심 구호로 삼고 있다. 만약 여당이 참여정부 실패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이 어떻게 구시대의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아 새 시대의 첫 대통령이 될 수 있는가라고 공격한다면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따라서 스스로 폐족(廢族)이었다고 고백한 친노 세력의 최정점에 있었던 문 후보의 주장은 지극히 편의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

대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심도 기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새누리당 재집권보다는 정권교체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한데도 집권당 후보의 지지율이 야당 후보를 앞서고 있다. 통상 투표일이 가까워 오면 여야 후보의 지지율이 함께 상승하면서 부동층이 줄어든다. 이번에는 투표일이 임박했는데도 여당인 박 후보의 지지율은 거의 변화가 없고 야당인 문 후보의 지지도가 하락하면서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고, 부동층도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한국 대선에서 외연 확대를 결정짓는 40대, 중도, 화이트칼라, 무당파에서 강세를 보이는 후보가 통상 지지율에서도 앞서는데 이번 대선은 예외다. 비록 박근혜 후보가 이들 계층에서는 지지도가 약하지만 자신의 핵심 지지층에서 문재인 후보를 큰 차이로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선거학회 여론조사 결과, 2002년과 2007년 대선에서 투표 1주일 전까지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의 규모가 각각 25.9%와 30.5%였다. 그런데 이들 중 41.6%와 30.1%가 ‘지지 후보를 변경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더욱이 투표일 13일을 남겨두고 안철수가 문재인을 적극 지원하는 활동을 펴기로 함에 따라 판이 한 번 더 요동칠 것 같다. 선거는 아직 끝이 난 것이 아니다. 남은 기간 후보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판세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결국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함께 울어줄 수 있는 후보가 승리할 것이다. 단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웃음을 되찾아 줄 수 있는 후보가 승리할 것이다.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joon57@mju.ac.kr
#대선#대선후보#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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