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구]골룸, 반지를 놓으렴

  • 동아일보

이진구 사회부 차장
이진구 사회부 차장
몇 년 전 사업을 하는 한 선배가 ‘오도리’를 먹자고 했다. ‘오도리’가 뭔지 몰랐던 나는 궁금함에 약속 장소인 일식집에 갔다. 그 자리엔 서울지검의 한 고참 검사가 앉아있었다. 알고 보니 선배는 그를 접대하는 데 나를 배석시킨 것이었다. 그날 나는 오도리가 비싼 보리새우의 일본말이라는 것과 사업가들이 검사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처음 알았다.

선배는 검사를 극진히 대접했다. 나이가 어린데도 ‘영감’이라 깍듯이 불렀고, 그가 지방에 있을 때는 제철 음식과 선물을 준비해 내려갔다. 얼마나 도움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업상 ‘잠수’가 빈번했던 선배는 늘 그 검사 자랑을 하며 내려가서 뭘 하고 왔고, 얼마나 친한지를 과시했다.

그때는 그 선배가 유별나 그런 줄 알았다. 그 후 사업 좀 한다는 사람들을 더 알게 되면서 대부분 ‘모시는’ 검사가 한 명쯤은 있다는 것을 아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함께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딴 데 가자”고 해 따라가면 모 지청 부장검사가 혼자 있던 일도 있었다. 갑자기 ‘콜’을 한 그는 이미 취해 있었고 술값은 사업가가 냈다.

그들이 무엇을 주고받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궁금한 것은 그 검사들이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러울까’ 하는 것이었다. 평소 그런 대접에 익숙하지 않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자연스러움…. 그것은 ‘특권’을 가진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행태였다.

이런 일이 예외적인 일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대화 후 ‘검사스럽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됐고 벤츠, 스폰서 검사에 이제는 뇌물, 성 검사까지 나온 걸 보면 결코 일부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특권의식은 조직의 독점적인 무소불위 권력과 이를 인정하는 사회문화에서 나온다.

임용되자마자 5급 사무관인 행시 출신에 비해 15년 이상 빠른 3급 부이사관 대우를 받고, 1800여 명의 검사 중 차관급만 54명이나 되는 조직. 영장청구권, 기소독점권 등 사실상 수사의 모든 것을 가진 조직에서 폐해가 나타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검찰의 특권은 너무 많은 보화를 들고 있는 것과 같다. 무게를 못 이겨 몸에 무리가 가는데도 욕심 때문에 내려놓지 못한다. 결국 몸 이곳저곳에 이상이 나타난다. 최근 일련의 비상식적인 사건들은 검찰 내부가 곪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결국 검찰개혁은 스스로 버리지 못하는 특권을 덜어주는 데 있다. 그 요체는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다. 수사는 경찰이 맡고 검사는 법률전문가로서 수사 결과를 보고 기소만 전담해 서로 견제할 수 있다면 결코 오만한 조직이 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논의가 집중되는 중앙수사부 폐지, 상설 특검 도입,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은 검찰이 건강해지면 필요 없거나 제한적으로만 사용하면 되는 일이다.

‘중수부’가 검찰총장의 직할부대라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면 정도의 차가 있을지언정 형사부, 특수부 등 다른 부서는 독립부서일까. 검찰총장을 대통령이 임명해 문제라면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원은 누가 임명하나. 대통령은 빼고? 검찰이 제 역할을 못해 특검이 생겼는데, 그마저 활용을 못해 공수처를 만들면 공수처가 부실할 때는 또 어떻게 하나. 고공수처?

하지만 검찰은 수사권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절대반지를 빼앗긴 골룸처럼 으르렁거린다. 반지를 놓지 못한 골룸은 결국 어찌 됐는가.

이진구 사회부 차장 sys1201@donga.com
#특권의식#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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